<감사합니다 15일차> 이제와서 뒷북이야 _재하

관리쟈
2022-12-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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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타이밍을 놓치는 때가 많다. 그건 아마도 내가 매번 무언가가 그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막상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중요함을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말했듯, 나는 무언가에 대해서 제대로 감사하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감사합니다’라는 말 자체는 습관적으로 하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데 있어서는 늦거나 그 중요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편이 많다. 그건 어쩌면 내가 평소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에 와서 숨 돌릴 새도 없이 벌써 정신 없이 세 달이 흘러간 지금, 나에게 날아온 문자 한 통 덕분에 내가 영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지냈던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 연락 한 번 먼저 드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짧은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은 달려가고 있던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것들의 부제에서부터 되려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돌아본다”는 말보다도 나도 모르게 그 중요함들을 느끼게 되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시말해, 공백을 통해 느끼는 소중함이 나에게는 많았던 듯하다. 문탁에 계시는 분들께도,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예상대로, 그리고 내가 감수하겠다고 했던 바와 같이, 영국에서의 학교 생활도 결국에는 여타 다른 학교를 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에는 학교였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면에서 다른 부분이야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결과적으로 특정 형태를 띌 수 밖에 없는 학교 시스템에 실망을 적잖이 감출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문탁에서 그동안 내가 공부했었던 세미나들, 내가 썼었던 에세이들 - 그리고 에세이들에 대해서 받았던 불호령 같은 조언들도 - 이 자주 떠올랐었던 것 같다. 내가 가기 전 홈스쿨링과 함께 시작해 문탁에서 공부했었던 3년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 아니 느껴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서투르게나마라도 미처 감사했다고 말씀드리지 못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내게 좋은 말씀, 조언들을 건네주시며 초행길에 용기를 실어다주시던 샘들께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먼저 전해드리고 싶다. 덕분에 가서도 참 많이 의지가 됐었던 말씀들이 정말 많았었다. 아렘 샘, 떠날 때 주셨던 노트는 아직도 잘 간직해서 쓰고 있어요. 이스텔라 샘, 주셨던 시집은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읽는 중이에요. 감사합니다. 여울아 샘이 해주셨던 말씀들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스스로 서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됐었어요. 감사합니다. 미르 샘, 매번 딴지를 거시면서도 진심어린 조언 해주신 것들, 감사했습니다. 비록 말씀하셨던처럼 ‘방학처럼’ 즐기지는 못해도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과학세미나에 계시던 샘들 말고도 가기 전에 뵙었던 영화인문학 샘들 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띠우 샘, 매번 챙겨주시고 먼저 손 내밀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문탁에서 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말장난(?)을 하시던 청량리 샘도 제가 문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영화인문학에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 샘, 비록 띠우 샘이나 청량리 샘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화인문학에서 같이 하며 여러 말씀 주신 거 감사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단순히 영국으로 떠날 때뿐만이 아니라 처음 시작했었던 홈스쿨링을 하며 옆에서 항상 함께 해주시던, 내가 그동안 했었던 세미나들에서 뵙었던 모든 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떠나고 나서도 연락주시던 문탁 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먼저 연락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바쁘다는 말은 아마도 면책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일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옆에 있어주던 가족들의 소중함을 이제서야 그 공백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순간들도 참 많은 듯하다. 물론 영상통화로야 만날 수는 있다만, 직접 맞대고 마주 앉아 얘기하던 시간이 사라지니 그만큼 그 시간들이 중요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곧 있으면 만날테지만, 엄마, 항상 응원해주고 흔들릴 때마다 함께 해줘서, 그리고 피곤할텐데도 매일 밤늦게까지 나하고 영상통화하려고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아빠, 아빠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도와주려 해서 고마워. 내가 영국오고 나서 자꾸 바쁘다고만 했었는데도 둘 다 나의 여유없음을 받아줘서 고맙고, 미안해. 만나기만 하면 매번 싸우던 동생들도 옆에 없으니까 너네 생각 나더라. 매번 통화할 때마다 웃는 얼굴로 맞아줘서 고맙고, 곧 보자.

 

무언가 반응하는데 있어 늦는 사람을 가리켜 항상 뒷북친다고 한다. 아마 내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것도 ‘뒷북치고 있는’ 셈일테다. 그래도, 늦게나마, 내가 감사를 표하고 있는 이들이, 나의 감사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자주, 공백을 느끼기 전에 그 무언가가 내 앞에 있을 때 감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뒷북치지 않기…힘들겠지만 앞으로 노력해봐야 될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감사하는 것만큼이나 나 스스로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하야 3년 동안 홈스쿨링하면서 게을었지만 또 꾸준히 해줘서 고마워.

 

댓글 14
  • 2022-12-15 08:51

    재하야, 밝은 모습 보기 좋다.
    바쁜 와중에도 글 남겨줘서 고마워.
    곧 방학이니 얼굴 볼 수 있겠네~^^

  • 2022-12-15 10:40

    와, 재하다! 장하다!
    요즘 영국 감자칩 사 먹으며
    재하 생각하고 있어요 크하하하
    소식, 고마워요!

  • 2022-12-15 11:57

    재하군~ 반가워요 ^^
    영국 학교도 결국 학교라는 이야기가 무거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그 한계를 잘 겪고 돌아오길

    맘껏 잘해주지 못해서 갑자기 미안함이 올라오네

  • 2022-12-15 13:00

    "매번 말장난(?)을 하시던 청량리 샘.." ㅋㅋ

    재하! 얼굴보니 좋군. 가끔씩 이렇게 소식을 좀 전해주세요^^

  • 2022-12-15 17:54

    하이! 재하~
    잘 지내나? 가기전 송별회에 못나가서 미안했어.
    가끔은 널 생각은 했지.
    (영국 뉴스 나올때 특히.)

    .
    문탁의 샘들께 받은 '불호령 같은 조언들'이라...
    ㅋㅋㅋ
    좀 그랬지.
    다시 널 만날때는 다들 따뜻한 말로 하실거야.
    담에 오면 꼭 보자~~건강하고.

  • 2022-12-15 19:55

    마스크 안 쓴 재하군얼굴^^
    사진으로 실컷 보네요😁
    감사하고 흐뭇해지는 글, 웃음 지으며 읽었습니다!

  • 2022-12-16 09:42

    영국에서의 생활도 화이팅이에요!

  • 2022-12-16 11:00

    사진으로 봐서는^^ 또래들 사이에 있어도 진지한 재하~ ㅋㅋㅋㅋ 잘 지낸다니~~ 좋네요~~

  • 2022-12-16 15:22

    재하^^ 반가워요
    학교다니는 재하 좀 낯설긴하네요 ㅋㅋ

  • 2022-12-16 15:36

    재하 소식을 이렇게 들으니
    반가와요ㅡㅡㅡ
    쑥쑥 자라나세요 ㅋㅋ

  • 2022-12-17 01:05

    어우 재하샘 덕분에 노트가 영국 구경을 해요 ㅎㅎ
    '아빠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아빠 나름의 방식으로 도와주려 해서 고마워.' 라는 말을 보며 좀 웃었어요...
    이제 정말 다 컸네...ㅎㅎㅎ

  • 2022-12-17 12:04

    재하샘 반가움이 앞서요. 재하샘의 진지한 질문과 글들이 조금 그립네요.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또 봐요!

  • 2022-12-17 13:08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재하님이 풍경과도, 친구들과도 잘 녹아 있다 느껴져요. 옆에는 아이작 뉴턴을 닮은 친구도 있네요.^^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재하님을 볼 때마다 재하님 어머님이 부러웠어요. 복받으셨네요, 하는 생각!
    *

    우선 이 글을 아보가드로 수의 역수 만큼의 확률로 볼지도 모르는 제 딸 아이들이 두려워 한 마디하고 넘어가자면 저는 물론 근본없이(남편은 딸들 예쁘단 칭찬 들으면 모두 자기 닮아서라고 뻔뻔한 소리를 하지만 개소…뤼?) 예쁘게 태어나줘서 고맙고 진취적이고 당찬 딸들에게 아주 많이 감사하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가뭄에 콩나듯해요. 큰 아이와는 주로 맛집 이야기를 하게 되고, 둘째는 가냘픈 걸그룹 외모와는 달리 근본적으로 폭발성 물체라서 매우 조심해야 하는 존재.
    *
    그런데 재하님은 우리 같은(?) 사람들과 우리 딸들 기준으로는 쉽게 읽지 않을 책을 함께 읽고 얘기 나누어주어 무척 행복했어요. 딸들과의 전쟁같은 날들을 보냈던 저로서는 전쟁이 끝난 여운 속에 맞은 선물 같은 평화였다고나.
    *
    그러니 글을 읽으면 도무지 나이가 보이지 않는 재하님!
    자신이 느끼는 의문들이 근본적으로 틀리지 않다는 걸 늘 스스로에게 믿어주며 그 곳에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시길 기원합니다.

  • 2022-12-20 13:45

    와~~ 재하다
    잘 지낸다니 반갑네요
    가끔 소식들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고 한국 들어오면 들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