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10일차> 시간을 불러세우며 _르꾸

관리쟈
2022-12-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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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문탁의 문을 두드립니다.

비록 일상에 허덕이느라 문탁 발걸음을 못하고 있지만 보고픈 얼굴도, 함께 하고 싶은 공부모임도 언제나 넘쳐나는 곳입니다. 가장 아침 일찍 울리는 카톡 소리는 그나마 제가 문탁과 연결되어 있는 끈이기도 합니다.

 

‘감사를 전하는 이벤트’라고 전달받았는데 당황스럽게도 확 떠오른 이가 없었습니다. 저 잘못 살은 건가요?? 절 분노케 한 인간들은 바로 떠오르는데 말입니다:). 올 한해 전 무엇을 새롭게 맞딱드렸나를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모든 게 마음 먹은 때로 딱딱 되지 않고 계획 했던 일의 70%도 해내지 못하고 마감은 늘 어기고 제 몸도 마음도 모두 ‘제가 아닌 것 같은’ 다중적 주체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이듦’에 대해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세대들의 시대적 숙명같은 건지 몰라도 부모와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자 무던히 애썼던 시간 속에 그 자리를 메꾸었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정서적 분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한 친구가 암판정을 받고 몹시 힘든 시간을 버티며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른 곳으로 전이가 발생해 새로운 암과 ‘씩씩하게’ 잘 싸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로 인해 올 한해 가장 새롭게 깨달은 것은 그 친구 곁에 있는 맑은 공기,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초록초록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었습니다.

 

 

제겐 냥이 두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저희 가족과 2009년 프랑스에서 만나, 도버해협을 같이 건너 영국에서도, 지금 한국에서의 삶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냥이는 제게 ‘헤어짐’에 대해서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꾸만 시간을 불러 세우고 싶습니다. 함께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임을 알게 해준 나의 친구와 냥이, 살아 숨쉬는 모든 자연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별을 넣어 준 문탁의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댓글 8
  • 2022-12-10 08:43

    저 잘못 살은건가요? 에서 빵 터졌어요.
    그리고 르꾸님 표정도 생생해지구요 ㅎㅎ
    르꾸쌤, 그리운 사람들 보러 오세요.
    공부 아니어도 되니 기냥 바람쐬러 가끔 나오세요^^ (자누리)

  • 2022-12-10 10:20

    샘이 쓴 글에 깊이 감정이입하며 읽다 보니 올 초 르꾸샘과 줌으로 같이 세미나했던 게 생각납니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같이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읽었지요.(저는 그랬습니다만..ㅎ)
    하나가 떠오르면 기억은 왜 이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걸까요?
    뭔가 아련한 추억처럼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읽을 때 르꾸샘을 처음 만난 기억도 나요.
    책에서 읽은 건 다 잊었지만 샘이 오신 덕분에 소수 인원의 세미나에 몽글몽글 활력이 생겨났던 건 잊히지가 않네요..(정말 감사했어요~)
    내년에도 또 어디선가 반갑게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2-12-10 20:22

    지난 겨울 “레비스트로스” 같이 읽었었는데
    벌써 한 해 보내고 다시 겨울이네요
    해러웨이 읽으러 안오시나요?
    겨울마다 만나면 그것도 또 좋을듯
    샘의 냥이와 친구님
    그리고 더불어 샘 평화로우시길~~~

  • 2022-12-10 21:15

    르꾸님 반가워요~~
    올려주신 사진 한 장 한 장 보게 되네요
    이번달 공생자행성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궁금한 분들 소식을 전해주시니ㅎㅎ

  • 2022-12-10 21:33

    르꾸님. 재미난 이야기와 감동적인 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 내셔서 문탁에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ㅋㅋ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어요

  • 2022-12-11 14:26

    르꾸님^^ 일리치약국에 들르세요~~ 따끈한 쌍화탕 한 봉 대접할게요~~~ 힘 나시게^^

  • 2022-12-11 15:44

    영국노동자계급의 형성과 돈의 철학, 야생의 사고.. 벽돌책과 머리아픈 책을 읽을 때 늘 곁에 르꾸쌤이 계셨던 인연이~있지요.
    벽돌책만 깨느라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또 다른 벽돌책 깰? 함께 시간이 오겠지요?

  • 2022-12-13 08:55

    앗, 르꾸쌤이다.
    생각해보니 올해는 르꾸샘을 거의 못 뵌 듯.
    보고싶습니다. 좀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