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정원>을 만들다

느티나무
2024-06-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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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간의 재점유

 

  분해의 정원 세미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하다. 늘 한 발 앞서 생각하고 자신의 정원을 알뜰히 가꾸는 자, 무엇이든 뚝딱뚝딱 해체하고 만들고 고치는 맥가이버 같은 자, 집안 가득 식물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고 모든 폐품을 재활하는 자, 엠지세대의 시선으로 386세대를 아우르며 세상을 디자인 하는 자, 꼼꼼한 정리와 체크로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자... 이 정도만으로도 이 세미나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땅을 얻지 못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침 파지사유는 경사로 공사를 하게 되었고 데크에 놓인 화분들을 정리해야 했다. 우리의 능력이 발휘될 순간이다. 먼저 나무로 만들어진 화분 중에서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재사용하기로 하고 어디에 우리의 정원을 위치시킬 것인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입구 계단 옆 비어있는 공간에 줄지어 화분을 놓기로 했다. 화분의 흙을 퍼서 근처 산자락에 가져다 버리고 큰 화분을 가장 위쪽에 옮겨 놓고 차례로 계단을 따라 늘어놓았다. 처음엔 가능할까 싶었는데 막상 해놓고 나니 제법 모양이 갖춰졌다.

 

  다음은 식재다. 이럴때는 달팽이와 오늘이 나설 때다. 그들의 집 화분과 정원에서 바질, 민트류들, 베르가못, 달맞이꽃, 더덕, 들깨,아스타국화, 참나물, 취나무, 상추, 토마토, 라일락, 황매화가 이사를 왔다. 그리고 나머지는 화훼농원에서 모종을 심을 흙과 거름을 사고 분해의 정원 남은 공간에 어울릴 모종들을 사서 심었다. 식물의 특징과 다양성에 따라 위치를 정하고 색과 크기를 맞춰 식재를 했다.

분해의 정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의 다양성이 발휘되는 시간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읽고 있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에서 옥타비아 버틀러는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자신의 분해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생성해 낼 수 있다. 우리는 분해의 정원에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분해의 정원은 모두의 정원이 되었다. 파지사유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 번씩 정원의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손길로 어루만진다. 누군가는 매일 빠지지 않고 물을 주고 누군가는 집에서 키운 바질을 가져다 심고 옆의 한련화가 너무 무성해지는 것을 걱정하고, 또 누군가는 쑥 자란 상추와 바질을 따다 요리를 한다. 예쁜 꽃이 피고 열매도 열렸다. 토마토가 방울방울 매달리기 시작했고 고추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삭막한 쓰레기장 옆 공간의 재점유. 아름다운 분해의 정원이다.

 

 

댓글 7
  • 2024-06-26 22:29

    오늘 들여다보니 방토가 주렁주렁, 고추도 실하고, 가지는 꽃을 피우고, 각종 허브들...
    진짜 알차고 옹골진 미니 텃밭이더군요.
    한참 들여다 보며 생태감성 끌어 올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6-27 09:33

    분해의 정원 덕분에 우리동네가 달라졌어요~
    매일 들여다보면서 누가누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평소에 보지 못한 식물들도 많고 섞여서 심겨진 모습이 신기했는데
    그 안에 버틀러의 "씨앗..우화"의 감수성이 담겨있었군요~~
    분해의 정원팀 멋져요^^

  • 2024-06-27 23:44

    파지 가까이 갈 때부터 이전과 달라지는 기분~
    분해의 정원 덕분이죠^^

  • 2024-06-28 07:57

    나..첨에 쫌 걱정했는데... (집주인과 입주자들이 모라모라 할까봐)
    이제 걱정 싹~~ 가셨어요.
    좋더라구요^^

  • 2024-06-30 12:46

    한 사람만 정원을 구경해도 금세 삼삼오오 모여서
    오랜시간 머무는 모습이 참 좋더라구여
    저는 식물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쉽지 않지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어요!!!!

  • 2024-07-01 09:41

    동네 여기저기 흙만 보이면 꽃심는다는 게릴라 가드닝 부러워한 적 있었는데..
    어쩌면 분해의 정원도 게릴라 가드닝!^^

  • 2024-07-06 11:35

    카센터 골목의 생기 담당, 분해의 정원! 매일매일 번창하는 식물들이 놀라워요. 금손들이 관리하시니까 확실히 다른 거 같더라구요 (제 텃밭은 잘 안 되던데... 여긴 너무 잘됨!) 어제는 정원에 기웃 거리다가 바질잎을 좀 얻어왔어요 그래서 더---욱 애정이 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