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컬처로 지구와 연결되기> #4 최강의 노동과 '농사짓는 여성들' 행사

블랙커피
2023-05-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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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을 뛰어넘는 고강도 노동의 날

 

5월13일에 있었던 PDC 5회차는 이론 수업은 하지 않고, 하루종일 밭에서 일을 했다.

오전에 모두 모이자 마자 부랴부랴 밭으로 나가, 3조로 나누어 크기가 다른 허브 스파이럴 2개와 키홀더 텃밭을 만들었다.

(기능성 텃밭인 허브 스파이럴과 키홀더 텃밭의 특징은 지난 글에 있답니다^^)

내가 속한 조는 조금 큰 허브 스파이럴을 만들었는데, 크기가 큰 만큼 돌과 흙이 많이 필요했다.

다행이 밭 주변에 큰돌들이 꽤 있어 4명이 부지런히 모아서, 스파이럴 안쪽부터 남향을 시작점으로 잡아 축대 쌓는 느낌으로 아래로 돌을 쌓아나갔다.

스파이럴 맨 위는 돌을 꽤 높이 쌓고 주변 흙을 퍼서 돌 주변에 올려 주면서 스파이럴의 모양을 예쁘게 잡아나갔다.

 

 

약 1시간 정도의 작업을 하고 나니 꽤 큰 허브 스파이럴이 그럴싸하게 완성!!

이렇게 오전에 기능성 텃만 만들기로 몸을 푼 우리는 오후에 최강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뭔가 하나 완성했다는 기쁨에 해맑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ㅎㅎㅎㅎㅎ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고랑 피복작업에 들어갔다.

첫 번째로 고랑 흙을 신문지로 덮고, 그 위에 박스를 깔아주었다.

그 다음으로는 박스 위에 폐현수막을 깔아주었고, 그 위에 마지막으로 제초매트를 덮고 망치로 고정핀을 박아주었다.

 

 

신문지->박스->현수막->제초매트, 이렇게 4중의 고랑 피복작업을 해서 고랑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했다.

소란샘은 PDC 참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만 밭에 모이기 때문, 이렇게 꼼꼼히 잡초방지 피복을 하지 않으면 매번 모였을 때 잡초를 제거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고랑 피복작업 후 휴식시간에 누군가가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하자 소란샘이 도시농업의 장점은 배달이 아니겠냐며 팥빙수를 배달시켜주셨다.

이에 유성희샘도 커피 배달을 쏘셨고, 우리는 달달하고 시원한 간식으로 잠시 행복했었는데....

얼마후 우리는 볏단을 나르며 팥빙수는 소란샘의 빅픽처였음을 깨달았다. ㅋㅋㅋㅋ

 

고랑 피복작업 후에는 본격적인 식재에 들어갔다.

식재 디자인은 아직 이론 수업을 하지 않았지만, 이날까지 식재까지의 밭만들기가 완성되어야 했기에 소란샘이 일단 식재 리스트를 주셨고, 기영샘이 모종을 구입했다.

다년생 허브류인 커먼세이지, 마쉬말로우, 차이브, 타라곤, 베르가못, 라벤더, 백리향, 히숍, 탄지, 펜넬 등과 1년생 허브류 이탈리안 파슬리, 카렌듈라, 한련화, 바질 등, 그리고 다년생 나물류인 곤드레, 참취, 곰취, 아스파라거스, 눈개승마 등이 준비되었다. 엘더베리, 앵두, 보리수, 골담초, 구즈베리 등의 작은 나무(관목)도 준비되었고, 1년생 작물인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수박, 참외, 호박, 땅콩 수세미 모종 등도 준비했다.

소란샘이 모종 심는 위치를 일일이 잡아주셨고, 우리는 호미로 모종 크기의 3배로 땅을 파서 모종을 올려 둔 후, 그곳에 물을 흠뻑 주고 마지막으로 흙을 덮어주었다.

 

 

 

이렇게 식재를 마치자 시간은 어느덧 5시 30분.

그러나 아직 한가지 작업이 남았으니... 볏짚멀칭!!!

흔히 마쉬멜로라 부르는 볏짚을 단단히 뭉쳐놓은 커다란 뭉치를 쇠갈퀴로 헤집어 볏짚을 밭으로 옮긴 후 두둑과 고랑에 깔아주는 작업.

단단히 뭉쳐있는 볏짚을 쇠갈퀴로 헤집는 작업부터 쉽지가 않았다.

또 일일이 박스에 담아 150평 되는 밭에 고루 나르다 보니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땅이 드러나지 않게 볏짚을 두둑과 고랑에 뿌리고, 뿌리고, 또 뿌리고...

또 한쪽에서는 가벼운 볏짚이 날아가지 않게 물을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작업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7시가 다 되어서야 끝마칠 수 있었다.

얼굴은 발갛게 익고, 옷은 땀에 젖고, 몸은 천근만근.

다들 입을 모아서 오늘 작업이 지난번 삽질을 뛰어넘는 최고강도 노동임을 얘기 했다.

삽질은 단순하면서 짧고 강렬했다면, 오늘은 그야말로 실로 다양한(돌 나르고, 쌓고, 흙 파고, 신문지 등을 깔고, 고정핀 박고, 모종심고, 물주고, 흙 덮어주고, 볏짚 나르고 뿌리고..) 작업들이 하루종일 이어진 날이었다.

 

 

역시나 이날 노동 이후 삽질 때보다 더한 강도로 며칠을 끙끙 앓았다는...

후에 들은 소식은 소란샘은 우리랑 작업한 날을 전후로 해서 나흘을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셨다고 한다.

소란샘~~~ 리스펙!!!!!

 

 

'농사짓는 여성들' 행사에 다녀오다

5월 25일에는 전환마을 은평에서 주최한 <농사짓는 여성들> 행사에 참여하러 서울혁신파크(불광동)에 다녀왔다.

 

 

수락텃밭에서 진행되어온 3년간의 여정을 수락텃밭 참여자 중 한 분인 유선님이 인류학논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하는 행사였다.

먼저 혁신파크에 조성된 퍼머컬처 텃밭 투어가 있었다.

 

 

 

이곳은 2년 전에 내가 퍼머컬처를 처음으로 접하고 배운 곳인지라,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고 정겨웠다.

PDC 용인 19기인 선생님들(기영샘, 이경자샘, 황보순자샘)도 만나 수락텃밭의 먹거리들로 이루어진 장터에서 브리또와 떡 등을 사서 맛있게 함께 먹었다.

 

본행사 전에 ‘라스플라미아’라는 무용단의 플라맹코 공연이 있었다.

너무나 멋진 솔로 노래부터 시작된 이 날 공연은, 그야말로 압도적 무대였다.

플라맹코!!! 정말 엄청난 마성의 춤이다.

 

격정적인 플라맹코 공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시작된 본행사 1부.

유선(도토리)님이 인류학 석사 논문으로 쓴 ‘퍼머컬처 단체 <수락>의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적 노동’이라는 글을 요약해서 발표했다.

 

 

유선님에게 2019년은 보통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길과 다른 걸 원했던 시기였고, 그해 비건 실천과 함께 퍼머컬처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유선님은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기업에 고용되어 주5일제 근무를 하는 월급쟁이가 아닌 대안적 노동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속에서 2020년 <수락>퍼머컬처 공동체가 시작될 때 공동체 멤버가 되었고, 그때 대학원도 진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락>에서 초보농부가 되어 농사를 지으며 ‘밭을 중심으로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선님이 심층 인터뷰한 <수락>의 기후농부들도 자본주의와 그 안에서의 노동에 대한 비판이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한다. <수락> 공동체원들은 사회 초년생 때 직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에너지의 근본적 상실을 느꼈다고 얘기한다.

나를 깎아내며 갈아내며 일한다는 느낌.

물질적 보상은 얻지만 정신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노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나 도구가 되는 경험들.

이러한 노동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기후농부들은 삶의 변화와 전환을 농사에서 찾고자 모여들었다.

상품 생산과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 자급을 위한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일단 지난 자본주의 체체 안의 노동과 달리 나의 효능감을 높인다.(여기서 생산한다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요소들을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함)

 

그런데 왜 퍼머컬처였을까?

이는 기후생태위기에 대한 대응 의지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수락> 공동체원들은 제로웨이스트나 비거니즘 실천을 거쳐 오는 경우가 많다.

퍼머컬처는 단순히 농사기법이라고만 할 수 없고, 흙을 살려 탄소를 흡수 저장하며, 소농과 지역, 자급에 중점을 두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또 퍼머컬처는 농업과 그와 관련된 삶의 영역을 산업화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수라>의 기후농부들은 농촌으로 이주를 최종적으로 바라나?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농촌으로 간다고 해서 무조건 생태적 삶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현재 사는 도시에서 자급적 농사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선님은 무엇보다 <수락>의 기후농부들은 전통적인 공동체는 피하고 싶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원한다고 얘기한다.

 

퍼머컬처 공동체가 짓는 농사는 여가인가?

다음으로 가장 핫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수락>이 짓는 농사는 여가 혹은 취미인가?

이에 대해 유선님은 이윤을 창출하거나 임금을 받는 노동만이 생산적 노동이고 가치가 있는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무임금이나 저임금, 여성의 살림이나 돌봄 노동, 비인간 자연의 노동은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하다고 인식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바꾸어야 하지 않냐고 얘기한다.

에코 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가 얘기하는 것처럼 자연-인간, 여성-남성, 노동-비노동 등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노동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선님은 대안적 노동의 개념을 다음의 세 가지에서 가지고 올 수 있지 않냐고 제안한다.

1) 노동과 여가의 이원론적 개념을 거부하자

2) 분리된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좁히고, 결합하자

3) 자연과 접하고 관계맺자

 

수락의 기후농부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퇴사를 하고 이사를 하는 등 농사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에너지와 마음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밭에서 충만감을 느낀다. 자연의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면서, 나역시 밭생명과 순환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여 이들의 <수락>에서의 노동은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과 다른 어떤 ‘노동’이 되고 있다.

이날 유선님의 발표는 “퍼머컬처는 가느닝으로 위장된 혁명이다”라는 빌 모리슨(퍼머컬처 창시자)의 말로 끝을 맺었다.

 

2부는 에코 페미니즘 연구자인 장우주님의 사회로 <수락>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네 명(도토리, 하밤, 유이, 해견)의 토크쇼가 있었다.

2부 토크쇼에서는 왜 퍼머컬처 공동체에는 남성이 적을까?(거의 10분의 1수준), 멧돼지나 고라니 등과의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기후위기 대응으로 스마트팜이 얘기되고 있는데, 퍼머컬처는 이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등이 질문되었고 네 명의 패널을 중심으로 상당히 흥미진진한 얘기가 오갔다.

 

 

장우주님이 토크쇼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것처럼 <농사짓는 여성들>이라는 자리에서 자본주의, 기후대응, 퍼머컬처, 대안 노동 등등의 얘기를 하는 것도 의미있고 재미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다르게 살고자하는 네 명의 기후농부 존재 자체가 감동이었던 시간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퍼머컬처와 이런저런 연을 맺고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네 명의 기후농부로부터 뿌려진 그 ‘어떤’ 씨앗을 가슴 한 켠에 고이 심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댓글 7
  • 2023-05-31 17:56

    씨앗이 어떻게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묵찌빠가 될지ㅋㅋ
    기대하고 있을게요~~
    날 더워지는데 네 분께 생맥산 한잔씩 돌려야겠네요~
    제 이름 달고 한잔씩 드세요ㅋ

    • 2023-05-31 20:20

      오~ 땡큐요~♡

  • 2023-05-31 18:26

    아ㅡㅡ 플라맹고 배우고 싶다는 블랙의 말이 빈말이 아니군요 ㅋㅋ
    여기저기 신출귀몰 하고 있는 우리 블랙!
    화이팅

  • 2023-05-31 19:00

    블랙샘 멋짐~~
    글도 농사도 차곡차곡 샘의 방식으로
    쌓아가시는 거 같아 근사합니다~

  • 2023-06-01 08:58

    와, 블랙샘, 퍼머컬처에 정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집니다.ㅎ
    글고.. 플라멩고, 언젠가 청송의 여름캠프에 다녀온 문탁여인들이 푹 빠졌던 춤 아닌가요?ㅎㅎㅎ

  • 2023-06-05 08:32

    저도 네분께 생맥산 선물합니다~ 퍼머컬처 정말 흥미롭네요. 블랙샘을 통해 듣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 2023-06-07 14:18

    퍼머컬쳐 언젠가 실험해보고, 실현하고 싶은 제 꿈이에요~^^
    재미있고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