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감성기르기 프로젝트 #6 <분해 담당자-지렁이, 개미>

토토로
2023-05-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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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떠다니던 꽃가루와 미세먼지가 좀 누그러졌다. 가렵고 쓰라렸던 내 눈도 어느 정도 나아졌다. 지난 연휴엔 마치 여름처럼 비가 많이 왔다. 비 때문에 긴 연휴 동안 거의 집에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가뭄에 큰 도움이 될 걸 생각하니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심이 됐다.

 

<분해의 철학>.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만들고, 쌓고, 더하고, 산출하라는 말에 익숙한 세상에서 이 책은 빼고, 분해하고, 나누고, 부패하며 썩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음...그러고 보니 썩지 못하는 것, 썩지도 않는 걸 자꾸 만들어 내는 것, 그래서 세상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거리를 걷다가 지렁이를 발견했다.

 

아! 다윈은 지렁이를 '위대한 경작자'라고 표현했다지! 예전 같으면 지렁이를 보고 움찔하거나 피해갔을테지만 이번엔 반가웠다.

 

그런데  그 위대한 지렁이가 딱딱한 보도블록 위에서 길을 잃은 듯 보였다. 아스팔트와 블록으로 매끈하게 덮인 길은 지렁이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어쩌면 그 지렁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차마  안전하게 흙 위로 옮겨주진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갖질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곰곰샘이랑 참샘은 보도블록에서 길 잃은 지렁이를 만나면 나뭇가지로  살짝 옮겨준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유독  죽은 지렁이들이 눈에 띠었다.  비 온 뒤에 밖으로 나왔던 지렁이들이 다시 되돌아 갈 흙을 찾지 못한 채  블록위에 오래 머물렀을 테고, 햇빛은 강렬했으니 말라 죽었으리라.

짠한 마음에 죽은 지렁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전에는 흉측하고 꺼림칙하다 여기며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사실 흉측하다던지, 꺼림칙하다는 느낌도 다 인간적인 내 감정일 뿐 아닐까. 

지렁이에 꽂혀서 그런가. 길 위를 유심히 살펴서 그런가. 자꾸  죽은 지렁이들이 보였다.

 

 

 

 

그리고...엊그제는 정말 강렬한 현장을 목격했다. 죽은 지렁이와 그 지렁이를 열심히 분해하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개미 떼를 본 것이다.

 

 

개미들은 너무나도 분주하게 죽은 지렁이 몸과 주변을 옮겨다니며 양분을 구하고 있었다. 죽어있는 지렁이와 와글와글 살아가려는 개미들. 이런 생생한 장면을 한참을  바라보면서 놀라긴 했지만  지렁이가 안스럽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혐오스럽다 든지 차마 못보겠다는 마음도  갖지  않겠다. 분해되지 않고 썩지 않는 게 문제이지, 이건 아주 자연스런 현장 아니던가!

 

원래 순환이나 지속가능성이라는 불리는 현상은, 그러니까 분해의 현장은

"거칠고 누덕누덕하며 껍질은 벗겨지고 알맹이는 튀어나와 대단히 가혹하고 마구 북적이며 악취가 풍기는 현상이다.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는 것임과 동시에 미생물과 곤충 같은 작은 분해자들이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고집스레, 그리고 부리나케 해내는 바지런함의 정수같은 것이다."  라는 책의 구절이 머릿 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댓글 9
  • 2023-05-13 21:27

    예전에 본 로드킬 다큐에서 말하길, 도로 위에서 죽은 동물은 자연스러운 분해 과정을 겪지 못해 그냥 먼지가 될 뿐, 결국 의미없는 죽음이 된다며 안타까워 했는데... 그래도 개미를 만난 지렁이 사체는 다시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다행인거죠?

    그런데 지난 비 많이 오는 주말, 저는 친정집 앞에서 뱀을 보았지 뭐에요 사진 찍어 뱀조심하라 문자 남겼더니 “여기 뱀 많다”는 무시무시한(?) 대답만...ㅋ 이건 차마 흙으로 못 옮겨주고 왔네요 --;

    IMG_5699.jpeg

  • 2023-05-13 23:43

    와 진짜 사진이 너무 그로테스크하네요^^
    전 비온 뒤 자전거로 탄천을 지날때 바닥을 유심히 봐요. 지렁이 밟을까봐서요. 제가 유독 못보는게 지렁이랑 송충이예요. 저 지렁이 무서워서 피해요 ㅎㅎ

  • 2023-05-16 16:57

    관심을 가진다면 저런 순간도 포착하게 되는군요.
    분해의 주인공 지렁이는 귀한 몸인데
    비 온뒤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위에서 말라있는 사체를 종종 보게되는데
    저도 안타깝더라구요.
    관심은 생태맹을 눈뜨게 한다.

  • 2023-05-16 19:48

    맞아요
    썩지않고 분해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흉측한 것이죠
    분해는 자연스럽운 삶 자체인 거죠
    분해를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사뢰가 야만적이죠
    근데 이 야만적인 사회에 넘 익숙하니 참 문제 ㅠㅠ

  • 2023-05-16 20:45

    분해, 라고 하면 저는 균류(곰팡이, 버섯)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다른 존재들을 분해하며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가 균류죠.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을 분해하는 균류도 발견되었다고 하더라고요.ㅎ

  • 2023-05-16 23:31

    저는 지렁이 무서워해요
    중학교때 비온 뒤 학교가는 산 옆길에는 지렁이가 제법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굵기가 뻥 좀 쳐서 손가락 굵기~
    보면 두 눈을 질끈 감게 되었고..
    지금도 마당에 나타나면 식은땀이 흘러요.
    분해자로 중요하단걸 아는 것과 친해지는 것 사이의 간극은 어찌할까요? ㅎㅎ

  • 2023-05-17 14:05

    와 강렬한 현장이네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
    순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분해의 철학이ㅜ생생하게 와닿는 사진입니다.

  • 2023-05-17 19:46

    우와 <분해의 철학>이라니. 새로운 관점에서 죽음과 삶이 펼쳐지고 있군요. 진짜 미세한 곤충의 세계를 관찰하면 너무 신기하네요.

  • 2023-05-22 22:50

    이이잉… 읽으려고 했는데 아직 펴보지도 못한 책
    덕분에 분위기 살짝 파악해봅니다ㅎㅎ
    그나저나 언제 다 읽을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