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으로 공생자되기 3회차 후기

담쟁이
2023-03-2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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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행위자는 언제나 남성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언제나 여성과 남성 간의 정치가 아니라 남성과 남성의 정치로 환원된다. 제주도 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으로, 정신대나 기지촌 여성 문제는 식민지와 제국주의의 갈등으로 간주되는 식이다.

남성과 남성의 갈등은 당연히 정치이고 역사라고 여겨진다.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폭력, 미국의 이라크 침략 등 남성이 남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억압이고 이에 대한 저항은 투쟁이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개인적 문제이거나 집안일, 혹은 기껏해야 ‘격렬한 로맨스’로 간주된다. 여성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 피해자가 여성일 때, 피해는 언제나 사소화된다. 여성폭력은 ‘남편이 총을 쏘면 신고하라’는 말처럼, 피해의 심각성이 가시화되어야만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다. 가정폭력은 해결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면 할수록 사건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여성운동이 활발할수록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폭력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익숙한 렌즈, 즉 남성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가정폭력의 극단적인 사례만이 재현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이 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맞아라, 우리는 이 정도라야 믿는다.”라는 사회의 메시지인 것이다. 가정폭력은 피해가 명백히 가시화되어야만 ‘진실’이 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피해 이후에 논의된다. 여성운동가들이 가정폭력이 사회적 문제임을 주장하기 위해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당하는 폭력은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므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피해가 끔찍하고 심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성격장애나 빈곤, 스트레스, 알코올 문제 등 ‘특수한’ 부부 관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폭력을 당한 아내의 고통은 한국 사회 구조에서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매 맞은’ 아내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들의 고통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가부장제 가족 제도의 효율적 작동을 위협한다. 그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안식처 가족’의 신화, ‘보호자 남성’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고통 경험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존경받지만,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더럽다’고 추방되고 낙인 찍힌다. 가정폭력은 인정되지 않는 고통, 믿을 수 없는 고통이다. 정치적이고 공적인 장에서 인정되는 고통과 달리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p 133~134)

댓글 5
  • 2023-03-29 07:33

    여성 폭력은 사회적 문제라는 메세지군요.
    담쟁이쌤 잘들었어요.
    아침에 들으니 좋네요

  • 2023-03-29 09:26

    지난주 <월하의 공동묘지> 보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이 이 글 속에 있네요

    이번주는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아, 그러고보니 내일도~
    담쟁이님 목소리를 듣는 일주일ㅎㅎ
    잘 들었습니다~~^^

  • 2023-03-29 09:33

    낭송 듣다보니
    <더 글로리>에서 동은과 현남(이모님)이 연대하지만, 그들은 사적 복수 밖에 할수 없었던게 생각나네요.

    당쟁이님
    드디어 여기서 만나니 무지 반가워요~ㅎ

  • 2023-03-29 20:58

    "재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타자의 고통"
    이번주 읽은 내용들은 무겁고 어두운 현실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읽는 내내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 책을 쓸 때의 현실보다는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 2023-04-03 09:19

    무거운 내용이라 글로 읽기 부담스러운데, 담쟁이쌤이 차분히 읽어주시니 마음에 잘 들어옵니다.
    눈으로 읽기 힘든 사람은 들을 수 있고, 듣기 힘든 사람은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코너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