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에 기대어 #3> 슬픔이 나를 깨운다

띠우
2023-03-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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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요즘 필사하는 책들

 

필사를 시작한 것은 이태원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오고 두 달 정도 지나서였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게다가 이런 일이 또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

충격으로 멍해져서 한동안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분들이나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섣불리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어제도 유가족들은 울부짖었다.  세상은...  묵묵부답이다.  

슬픔은 여전히 내 옆에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곧 4월...

슬픔이 나를 일으킨다. 슬픔이 필사로 이어진다.

아직 슬픔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할까...

 

댓글 7
  • 2023-03-16 21:23

    어제와 오늘은 많이 아팠다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무엇때문에 이러나...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계약서! 신뢰!
    이거...외상값과 비슷한가 ㅋㅋ

    띠우가 슬프지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

    • 2023-03-16 22:54

      3월에 많이 바쁘실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하던 일을 멈춰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으시다니 걱정이 됩니다.
      오늘 푹 쉬시고 내일은 좀 나아졌다는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 2023-03-17 20:44

      아프시다니 어째요 ㅠㅠ
      신학기 아이들과 적응하려면 힘들죠
      주말동안 푹 쉬고 나아지시길~~~~~

  • 2023-03-17 00:46

    곧 4월...

  • 2023-03-17 20:42

    외상값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군요
    빚을 지고도 그런지도 모르는 염치없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할텐데…….

  • 2023-03-17 20:54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 제목을 곰곰 생각하게 하는 사진...

  • 2023-03-19 23:31

    아... 곰에서 왕으로 읽고 시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띠우님께서 시를 올려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