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에 기대어 #2> 그래서 주제가 뭐냐고?

띠우
2023-03-0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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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자행성’ 주제가 뭐냐고요?

 

1980년대 국민학교 시절, 우리 네 자매 중에서 유독 나는 여름 방학 때마다 시골에 내려갔었다. 당시 전라도에서도 끄트머리에 있는 벌교에서 더 들어간 곳에 외가도, 친가도 있었다. 서울역에서 완행열차를 타면 자도자도 도착하지 않는 멀고 먼 길, 그 지루한 시간 동안 열차칸에 옆으로 누워 팔걸이에 다리를 걸고 잠을 자곤 했다. 삶은 달걀을 싫어했던 나는 진미오징어를 먹으려고 떼를 쓰곤 했었다. 광주역이나 순천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갔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도 3,40분을 걸어 들어가면 논길 너머로 마을 입구가 보였다. 외가는 금성, 친가는 금산이라는 마을명이었는데, 차가 끊어지면 대여섯 시간을 걸었던 기억도 있다.

 

 

-산밑집의 아궁이(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해에 찍은 사진)

 

신작로가 끝나고 흙길이 나오면 여기저기서 아는 체를 해왔다.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컸고 사투리는 재미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방문은 온 마을이 알게 되었다. 어느 집에나 소 우리와 닭장, 재래화장실은 돼지우리 옆에 붙어있었고 날벌레들은 밤마다 모여들었다. 어떤 때에는 쥐들이 천장에서 단거리 달리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산밑집’이다 보니 바로 이어진 뒷산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몇 미터 불길을 잠재우려 뛰어다닌 기억도 있다. 앞머리가 불길에 타서 냄새가 나는 것도 모르고 겨우 불을 껐을 때 느꼈던 안도감도 생생하다. 뒷산으로 오르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 불었고, 경운기 소리가 하루종일 이어졌고, 바지락을 캐는 어른들에게 새참을 날랐다. 동네 언니 오빠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의 시골행은 뜸해졌다.

30여 년이 흘러서 어느 결혼식장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렀다. 00야~ 어찌나 낯선 목소리든지 우선 몸이 긴장을 하고 형식적으로 인사를 했다. 안부를 묻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한참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고...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어린 시절 나를 반기던 언니오빠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그 시간으로 바로 건너가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에도 없고)모르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한참 이어졌는데, 급기야 언제 얼굴이나 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 복잡미묘하였다. 끊어내는 마음이 익숙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뭘 쓰자는 거야? 실뜨기요~~ㅋ

 

오늘 토용님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주제로 ‘공생자행성’을 하는 거냐고? 뭔 이야기가 이렇게 길까 싶겠지만, ‘공생자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관계맺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이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말이다. 사실 생태는 나를 괴롭히는 주제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읽는 책들은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 철학자들 이야기는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가 어려운데, 이놈의 책들은 나를 자꾸 돌아보게 만들어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냥 피하고 싶다.

 

이것은 생태학의 문제다. 모든 것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우리로서는 생태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세상을 복잡한 전체가 아닌 개별적인 부분들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을 개인이라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존재간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잊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서로를 돌보며 관계맺는 삶에 대해 이제야 관심을 갖는다(고 착각하고 사는 중이다). 사람과도 어려웠던 그것들은 오히려 전제 자체를 바꾸면 수월해질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중이다). 공생자행성을 쓸 시간이 어느 틈에 와있다. 천천히 들여다봐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들을 멈출 시간도 없이 살아가다보니 추궁하듯 떠올린다. 나누기 좋아하고 분명한 걸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이지만, 없는 시간에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는 보일 것이다.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손작업을 하는 시간도 필요하듯이 서로의 삶을 돌보는 시간도 필요해보인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인데도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雲垈里)’의 기억은 아직도 많은 것이 생생하다. 스토리가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발길이 닿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갈 것이다. 그래서 ‘공생자행성’ 뭐 갖고 쓰는 거냐고? 이름하여 ‘존재간의 관계에 주의 기울이기’라고 하련다. 이건 아무래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나와 관계맺는 존재들과의 스토리 속에는 온갖 것들이 잡다하게 섞일테니 말이다. 아, 나 지금 뭐라는 건가... (아아아아!!!!! 혼자 있고 싶다~~~)

 

토용님, 바람~님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댓글 11
  • 2023-03-09 21:41

    띠우님이 날 보고 유난히 반가워하는 날은 재빨리 도망가야 한다.
    분명 한 번이었는데 어느새 한 달에 한 번이 되어 있었다.
    ‘존재간의 관계에 주의 기울이기’
    음.... 일단 우선은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 2023-03-11 12:47

      아랏, 전 늘 반가운데ㅋㅋ

  • 2023-03-09 21:45

    바토라니 ㅎㅎㅎ
    기댈수 있는 존재도 아니건만 기대어준다니...
    기꺼이 어깨를 디밀어드릴게요^^

    고흥 끄트머리에 띠우의 뿌리가 있었다니...
    곧 결혼할 큰조카가 얼마전에 발령난 곳입니다.
    신혼부터 주말부부 한다고 안쓰럽더니...
    조카랑 아무관계 없을지도 모를 띠우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조카 결혼식을 볼거 같네요 ㅎㅎ

    '존재간의 관계에 주의 기울이기'...
    멀어지려는 사람 끌어들이는 물귀신작전 아니고? ㅋㅋ
    음...주의를 기울여볼게요...(다소곳)

    • 2023-03-09 21:49

      역시 친절하셔~ ㅋㅋㅋ

    • 2023-03-11 12:56

      💚

  • 2023-03-10 20:19

    존재간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기.
    기억해 두겠습니다!!!
    근데..
    띠우샘은 자신을 낯가림 있는 사람이라고, 아싸인것처럼 표현하지만 제 눈에 띠우샘은 (은근, 아니 완전) 사람들을 살피시고 손 내미는 스타일 이십니다요. ㅎㅎ

    • 2023-03-11 12:45

      저에게 먼저 손내미는 토토로님 덕분이쥬 ㅎㅎㅎ

  • 2023-03-11 17:38

    앞머리 태운 띠우의 어린 얼굴이 떠오를듯 말듯 ㅋㅋ
    우리집 뒷집 옆집에 사시던 외할머니 모습도 떠오르네요
    우리 할머니 비쩍 마른 어깨에 바구니 매고 호미 들고 잰 걸음으로 밭에 가시는 뒷모습
    외갓집이 바로 지척이어도 친정 갈 때도 들러보지 않아요 이제 거의 폐허가 다 되어버린 그곳
    담에가면 한번 들러봐야겠네요

  • 2023-03-14 13:51

    끊어내기가 익숙한 ...
    어쩌면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 2023-03-15 08:59

    바토 뜻을 이제야 이해하다니 ㅠ

    충분히 바토에 기대어도 될듯
    바토의 댓글을 읽는 재미도 꽤 있네요 ㅋㅋ

  • 2023-03-16 08:31

    아 노라 댓글보고 바토가 뭔지 아는사람, 저요!
    바토띠의 합창곡, 기다려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