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22일차> 엄 마 에 게 _바다

관리쟈
2022-12-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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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니 오늘도 역시나 무척 바쁘시다. 오늘이 사진 전시회 마지막 날인데다 저녁엔 송년회에 참석하셔야 한다니 딸인 나보다 스케쥴이 빡빡하시다. 사진작가로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하모니카 연주와 댄스 그리고 성악까지, 하루에 두세 개 일정을 소화하셔야 해서 우리 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끼니를 잘 챙겨 드시도록 먹거리를 보내드리는 정도일 뿐이다.

 

 

얼핏 들으면 팔자 좋은 할머니의 멋진 노년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 83세이신데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사시기 시작한 것은 나이 70이 넘어서부터이다. 23살 때 사업하는 어벌싸한 집안에 시집와 그 어린 나이부터 친정살이하는 큰 시누의 아이들에다가 시부모와 7남매의 장남인 남편의 동생들, 그리고 더부살이하는 친척들과 직원들, 객식구들을 모두 보살펴야 했다. 게다가 맏이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엔 지역신문에 기사가 나올 정도로 집안이 쫄딱 망했다. 가업을 잃고 좌절한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열심히 내조하며 시동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나니 우리 사남매가 줄줄이 그 뒤를 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동안의 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설상가상으로 엄마 나이 46살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투병하시다 6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만 했다. 한창 공부 뒷바라지해야 하는 자식들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는데 물려받은 사업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버셨다. 하지만 우리가 공부를 끝낼 때쯤 거래처의 부도로 큰돈을 잃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젠 편해지나 싶었지만 자식들 결혼시키고 나니 줄줄이 사탕으로 손자들이 기다리고 있어 무려 다섯 명의 손자들을 키워주셨다.

 

그렇게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편해진 나이가 70이 넘어서이다. 처음엔 평생대학에서 사진을 배우시더니 그 다음엔 컴퓨터, 하모니카, 댄스, 이젠 성악까지.

출사와 전시회, 연습과 대회와 버스킹에 연주회까지 마치 13년 동안 80년을 사시는 것처럼 충만하게 사신다.

이런 엄마에게 이번 기회에 무뚝뚝한 큰딸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엄마! 숱한 역경을 이겨내며 우리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렇게 쫄딱 망한 집안에서도 어떻게든 우리가 결핍을 느끼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는지 마치 기적 같아요. 풍파를 온 몸으로 막아주신 엄마 덕분에 우린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자랄 수 있었답니다.

 

엄마! 우리가 기억하는 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식구들 뒷바라지와 부침을 거듭한 사업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느꼈을 텐데 우리 앞에선 항상 좋은 말과 편안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셨죠. 엄마 입에서 안 좋은 말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우리는 그 발치라도 따라가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엄마가 그 긴 세월 동안 우리에게 신세 한탄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부담 될세라 혼자서 견디시게 한 시간이 너무 후회되고 죄송합니다.

 

엄마! 무엇보다도 늦게나마 엄마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잘 보살피고 돌보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식들은 자기 새끼들 키우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연락이 뜸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도리어 더 바쁘게 사시니 우린 노년의 롤모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지요. 연세가 높아 안 아픈 데가 없지만 자식뻘 되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해야 하니 끼니 잘 챙겨 드시고 진통제로 버티시면서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꾸려 나가셔서 감사해요. 나이가 들어가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자신을 잘 보살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도 엄마의 뜻을 이어받아 자신을 잘 보살필께요.

부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있게 사시길, 그리고 조금만 아프시길 빕니다.

 

 

댓글 7
  • 2022-12-22 09:14

    아, 완전 멋진 엄마시네요! 사진들도 어머니께서 찍으신 거겠지요?^^
    엄마에 대한 이야기 속에 바다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 거두고 보살피는 넓은 품이 엄마를 똑같이 닮으셨네요.ㅎ
    부디 바다님 어머니께서 지금처럼 충만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바다님 곁에 오래도록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2-12-22 16:10

    바다님 반가워요~
    궁금했는데 이렇게 뵙네요.
    제일 위에 사진은 혹시 고성 라벤다 농장 아닌가요? (괜히 아는척~! )

    어머님의 건강한 삶의 태도에서 많이 배우시겠어요. 부럽습니다!^^
    바다님도 이제 활기차게 공부에 복귀하실 때가 된 것 같군요! ㅎㅎㅎ
    문탁에서 곧 뵙게 되기를 기다릴게요~~~

  • 2022-12-22 16:40

    아, 바다님 어머님은 이런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좋네유~~

  • 2022-12-23 07:52

    어머니 멋지세요
    바다님의 감사함을 같이 감사하게 되네요
    건강하게 감성가득 사진 계속 찍어주세요, 어머니!!

  • 2022-12-23 09:47

    사진 정말 좋네요.
    바다님 감사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과 행복한 겨울 되시길..

  • 2022-12-24 11:49

    글과 함께 제가 사랑하는 울엄마 얼굴도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무심한 딸임에도 뭐 하나 요구하는 것이 없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라도 해야겠어요.. 글 고맙습니다^^

  • 2022-12-26 12:56

    멋진 어머니시네요^^
    바다님도 건강시고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