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14일차> 아부지 _스르륵

관리쟈
2022-12-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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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진짜 오랜만이지?
내가 정말 무심했다.
그냥 출가외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줘.
추운데 잘지내시지?
아니 이젠 추위를안타시나~

 

다름이 아니고,
내가 다니는 문탁이라는 곳에서 송구영신 의례를 한다며 감사하고픈 사람에게 간단한 글을 쓰라지 모야.
근데 아부지 알지? 내가 대범한 구석이라곤 없고 무모하거나 아님 소심하거나 좀 극단적이란거ᆢ
이 나이되도록 아직 그래서 여하튼 이 작은 부탁 하나에도 며칠을 쫌 서성였지 모야.
누구에게 감사인사를 해야하나 하며ᆢ
근데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평소 감사인사를 제대로 하고 살지 못해서 인지 그 누구에게도 감사인사를 못하겠더라구.

 

그래도 장서방이 젤 먼저 떠오르긴 했지.
아부지 사위.
꽃같던 아부지 사위는 벌써 탈모니 퇴직이 몇년 남았느니 이런 말을 입에 올릴 나이가 됐어.
장서방을 볼때 마다 한번씩 아부지 생각이 나던때가 있었지.
쫌 닮기도 했나봐.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볼까도 했어.
아부진 한번도 못봐서 모르겠지만 이십대가 되었는데도 을메나 아직 구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라(내가 식상이 쫌 많아).
작은 놈은 날 안닮아서 야무지고, 큰놈은 아부지 닮아서(지금 생각해보니 그래) 고뇌가 많은 피곤한 스탈이야.

 

이제 아부지 보다 내가 더 늙은 후 생각해보니 아부지가 그렇게 서둘러 가신 것도 다 이유가 있겠더라구.
요즘 엠비티아이로 치면 극I형이 자나 아부지.
을메나 직장이니 식솔들이니 장남이니 힘들었겠어.
아들없는 나는 아들가진 엄마들 맴에 감정이입이 잘안되었는데 이제 나보다 어린 아부지를 생각하니 그게 뭔지도 알것도 같아.

 

참 엄마도 만나면 못알아볼 정도로 늙으셨다~
우리가 헤어진지 벌써 사십년이 되었으니 당연하지머.
우린 다들 그럭저럭 잘 지내.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ᆢ
포항갈때 마다 아부지 보러 가는데도 뭔가 아부지 생각을 수십년 동안 한적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 미안해 나 살기 바빴나봐. 어릴땐 포항집 옥상에 올라가 아부지 생각하며 많이도 울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많이 추워졌어.
오늘 아침엔 첫눈도 왔네. 우린 늘 그렇듯 잘지낼께. 이젠 아부지 생각이 좀 자주 나려나? 눈 침침해서 더이상 못쓰겠다. 아부지 올 한해도 감사했어. 아니 오십년동안 늘 마니마니 감사했어.
건강해라곤 쓸수 없지만 어디선가 꼭 잘있어야해 알지? 알지? 꼭이다!
나도 잘 지낼게.

 

 

댓글 13
  • 2022-12-14 08:36

    아, 저 사진 속 누가 '아부지'세요?
    혹시 선생님?
    동그라미좀 쳐 주시지..

    • 2022-12-14 13:26

      사진속 가장 장신?^^

  • 2022-12-14 09:21

    스쌤과 닮은 분이 계신 것 같아요. 사진 속에.
    눈이 침침하다는 게 중의적이군요. 지금 제 눈도 침침했어요.
    포항집 옥상에서 울던 어린 스쌤 생각 잠깐 했거든요.

    아버님... 딸이 꽤 잘 컸어요.
    제가 잘 알아요. 최근에 많이 봤거든요.
    아버님이 어디선가 빛깔로 향기로 존재해 계신 거 알아요. 앞으로도
    아버님 딸이랑 같이 공부하고 울고 웃고 잘 지내겠습니다.
    아버님도 계속 곁에 함께 해주세요.

    저도 감사합니다~

  • 2022-12-14 09:26

    아부지께 띄우는 편지를 우리들에게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음이 일렁일렁 거리다가
    눈물이 맺혔어요.
    (저.....아들 군대갈때도 울지 않은 엄만데 말입니다.
    딸만 둘이라 경험해보신 적 없으실텐데^^;;;;
    많이들 운다고 하대요.)

    • 2022-12-14 16:53

      딸만 둘이어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안심하고 계시다가 우셨거든요^^;;

  • 2022-12-14 11:37

    저도 최근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많이 나던데..
    제 마음을 대신한 편지네요.
    저도 제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해보렵니다...

  • 2022-12-14 15:35

    스르륵이 10살 무렵에 떠나신 아버님을 떠올리는 이즈음의 마음이 떠오르네요.... 나도 아버지 생각 쪼금^^ 한 해가 가고 있군요~~

  • 2022-12-14 17:12

    지금의 스르륵님보다 훨씬 젊은 아버지를 사진으로 뵈었습니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비록 처음 뵈었지만.. 스르륵 안에 아버님이 계시다는 걸 단번에 알겠습니다.
    이젠 스르륵을 만나면 아버님이 같이 떠오를 것 같아요.
    아버님의 귀한 딸 스르륵이 자라서 우리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 인사 드립니다.

  • 2022-12-15 08:57

    처음 받았을 때도 마음이 울컥했지만...
    가끔은 감정을 들춰 들여다보는 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매순간을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일년에 몇 번 정도...
    글 고맙습니다

  • 2022-12-16 15:23

    스륵님의 아버님 이런 편지 받으시니 흐뭇하실듯

  • 2022-12-16 15:38

    눈물이 핑 돌았네요 ㅠ
    스르륵님 ㅡㅡ

  • 2022-12-17 09:38

    스르륵샘 아버님, 스르륵샘은 항상 따스하게 인사해주시는 분입니다 안부도 매번 물어봐주시고 재밌게 웃겨주시며 긴장을 풀어주십니다 저에겐 존재가 감사한 쌤입니다
    스르륵샘 제가 알려드렸으니 걱정 없으실 거에요 🙂

    • 2022-12-20 23:48

      아이쿠 새은아 느무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