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도라지
2023-04-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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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같이 사진을 찍은 게. 아마 대학 졸업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지만 더 늦기 전에 아빠랑 사진 한장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4월 12일 아빠 정기검진 때 병원 엘리베이터에 비친 아빠와 나의 모습.   휠체어에 앉아 내 말을 잘 듣는, 머리가 허연 내 아빠가 귀엽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안 찍을 걸 그랬다.  그런 마음.  안하던 짓해서 뭔가 우주의 기운이 바뀐 그런 찜찜함.

아빠는 4월 17일 집에서 넘어지셨고. 현재 요추 골절로 입원중이시다.

아빠의 치매는 진행중이었다.  말기 치매 증세를 보이고 계셨지만 그래도 엄마와 나는 잘 알아보셨다.  아니 몇번은 나를 보고 "누구슈?" 하긴 하셨었다.

그런데 입원 이후로 치매 증상이 급격히 안좋아지셨다. 

가족을 아주 못 알아보고  본인 손으로 식사도 못하시게 되는 날이,  언젠간 올 거라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일리치 약국 '자미보약' 먹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잠 안오면 책을 더 보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겪어보니 알겠더라. 잠이 안온다는 건. 책도 안읽힌다는 것과  같다는  걸.  둘은 비슷한 마음을 겪고 있다는 걸. 

요며칠 깜깜한 밤에 혼자 깨어 명상을 하고.  고양이 자세를 하다가.  옆으로 누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전자책을 봤다. 별 걸 다하며 혼자 끙끙거렸다.  그러면서 나에게 수없이 물었다.

 

"지금 부처님이 네 옆에 있다면 너한테 뭐라고 하실 거 같아?"

 

오늘 아침 간병인께서는 아빠가 식사도 잘하시고 잠도 잘 주무셨다고 하셨다.

 

이제 나는 치매환우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모으고.  방문 간병도 알아보고.  친정 근처 요양병원의 일대 방문상담에 나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아침에 문탁으로 향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구나! 라고.  산다는 건 기쁘고 슬프고 웃고 울고.  그런 거.  그 감정들에 충실하게 할 일들을 해나가기로 한다.

 

 

언젠가 기쁘고 즐거운 날. 문탁 공부방 땜빵한 방충망 아래 책상에서 책을 읽을 거다.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 졸다가... 그래야겠다.

 

댓글 8
  • 2023-04-22 17:44

    .

    기도.jpg

  • 2023-04-22 20:31

    그러잖아도 아버지 입원하신다고 해서 섬망이 심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래도 밥도 잘드시고 잠도 잘주무신다니 다행이에요.
    도라지도 잘 먹고 잘 자야할텐데...()...

  • 2023-04-22 22:00

    샘, 한 주 동안 많은 일이 있으셨군요ㅠ
    아버님, 도라지샘 일상이 편안해지길요🙏

  • 2023-04-22 23:42

    저도 가만히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도라지도, 아버님도, 잠 잘 자고 식사 잘 하시길...

  • 2023-04-23 06:48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 졸다가 산책도 갑시다

  • 2023-04-24 12:32

    아버님이 빨리 쾌유하시길 빕니다.
    먼 길 오고가야 하는 도라지샘도 몸 조심하시구요~

  • 2023-04-24 13:12

    도라지에게 별일없는 일상이 어여 돌아오길....별일 있어도 짬짬이 쉬어갈 시간이 나기를! 모두에게 다가오는 일들이 도라지에게 지금 닥쳐왔구나 싶네. 잘 지나갈거야.

  • 2023-04-24 15:36

    그 옆자리에서 도라지쌤을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