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크리에이티브 주역> 인터뷰:『주역』도 크리에이티브 할 수가 있나?

고은
2023-01-1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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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네트워크>의 2023년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이크스튜디오>가 나섰다. 우현이가 홍보 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내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첫 타겟은 『주역』 세미나다. 2023년 ‘주역 세미나’의 이름은 <크리에이티브 『주역』>이다. 2021년에 소처럼 읽고(<『주역』 소처럼 읽기>, 이하 <소 주역>) 2022년에는 호랑이처럼 읽더니(<『주역』, 호랑이처럼 읽기>, 이하 <호랑이 주역>), 2023년에 토끼는 어디로 가고 ‘크리에이티브’가 떡하니 『주역』에 붙었다. 『주역』은 한국의 단군시대 마냥 아득하게 느껴지는 중국의 주나라 때 쓰인 역술서다. 그렇게 오래된 점서가 오늘날 읽히는 것도 놀라운데, 그게 ‘크리에이티브’까지 할 수 있다니 정말인가 싶다.

 

 

▲ 순서대로 2021 <소 주역>, 2022 <호랑이 주역>, 2023 <크리에이티브 『주역』>

 

 

     경덕 님도 2023년 <크리에이티브 『주역』>을 신청했다. 경덕 님은 2021년 내가 <길드다>에서 열었던 세미나 <동물을 퀴어링!>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문탁네트워크>에서 같이 공부하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 ‘크리에이티브’라는 수식어가 유독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2022년 하반기만 보더라도 경덕 님이 얼마나 ‘크리에이티브’ 한지 알 수 있다. <동물을 퀴어링!>에서 다루었던 구조된 돼지들의 보금자리 <새벽이생추어리>에서 2022년 하반기에 돼지를 돌보는 활동을 하더니, 그 경험을 가지고 희극을 써서 <미학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발표 당일, 또 다른 돌봄 활동가인 나를 비롯한 몇몇을 배우로 즉석 섭외하고, 모든 좌석에 소품인 낙엽과 돼지 똥이라는 장치를 설치해 연극 관람객 모두를 연극의 행위자로 만들었다. 그리곤 충무로에 있는 인문학 공간 <사이재>에서 장편 연극의 주연배우로 무대에 오르며 2022년 12월 31일을 마무리했다. 

 

     30대인 경덕 님은 어쩌다 청년이 접근하기 어려운 동양 고전, 그중에서도 『주역』을 만나게 됐을까? 이곳저곳을 종횡무진하며 ‘크리에이티브’한 삶을 살고 있는 경덕 님은 왜 ‘주역 세미나’를 2년 연속 신청했을까? 정말 『주역』이 ‘크리에이티브’ 할 수 있을까? 

 

 

 

고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경덕      저는 이제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한 지 1년 갓 넘은 권경덕이라고 하고요. 작년에 고은 님과 같이 한 <동물을 퀴어링!> 세미나로 처음 접속했고, 그리고 <문탁네트워크> 청년들과 같이 작년에 재미난 활동을 하면서 <호랑이 주역>에서 『주역』 공부를 했어요. 올해도 이어갈 생각입니다.

고은       혹시 그 얘기 한 번 더 해줄 수 있어요? 운명처럼 『주역』과 엮였던 일화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경덕      한 10년 전부터 인문학 공동체의 존재는 알고 있어요. 홈페이지를 구경하다 보면 어딜 가도 『주역』을 공부하더라고요. ‘『주역』이 동양고전 중에 하나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나 전이려나…. 한 5~6년 전? 자주 가던 교보문고 동양 고전 코너에 들렀다가 『주역』 텍스트를 보게 된 거예요. 그때 중년의 여성분이 "이거 공부하시는 분이신가 봐요. 처음 공부하려면 뭐부터 봐야 돼요?" 물어보셨어요. 제가 엄청 당황해서 "저도 잘 몰라요. 그냥 한번 본 거예요.” 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제대로 『주역』과 관련된 텍스트를 본 건 <호랑이 주역>에서 였죠.

 

 

▲ 줌으로 인터뷰 중인 경덕과 고은

 

 

 

 

 

귀가 트이는 『주역』 리스닝 세미나 

 

고은      저랑 했던 <동물을 퀴어링!> 세미나 말고는 <문탁>에 접속한 게 <호랑이 주역>이 처음이었어요?

경덕      자누리 쌤이랑 했던 4회짜리 기초 주역 강의가 처음이에요. 딱 이맘 때 2월에 했어요. 자누리 쌤께서 이거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직접 카톡을 주셔서 냉큼 신청했죠. 엄청 재밌었어요. 효가 뭔지 괘가 뭔지,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셨거든요. 『주역』을 처음 하는 청년들끼리 모여서 하다 보니까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고은      ‘경덕 님은 『주역』을 왜 할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인터뷰를 준비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까 경덕 님과 『주역』 사이에 나름의 역사가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네요. 5~6년 전 운명처럼 만났고, 2년 전 기초 과정을 밟은 뒤 <호랑이 주역>으로 이어졌으니까요.

경덕      시간상으로 따지면 길긴 한데. [웃음] <호랑이 주역>은 강의가 아니라 세미나고, 또 전년도 <소 주역>을 같이 하시던 선생님들이 이어서 하는 세미나이니까 선생님들끼리의 케미가 이미 있었어요. 그 케미가 엄청 뜨거워서 세미나 두 시간 반 동안 오디오가 비지 않았죠. 대화를 주고받으시는 게 마치 여럿이서 하는 대담같이 느껴져서 저는 초반에 거의 끼어들지 못했어요. 근데 귀동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듣다 보니까 귀가 좀 열린다고 해야 되나? 반복되는 단어들이 들어오니까 그런 효과를 체감했던 것 같아요.

고은      영어 리스닝이랑 비슷하네요.

경덕      그렇죠. 누가 하나하나 알려주는 게 아니라, 대화가 오가는 현장에 접속해서 그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귀가 조금씩 트이는 공부법이라서요.

고은      언제 귀가 좀 트였다는 걸 느꼈어요?

경덕      첫 발제를 하고요. 사실 발제 할 때는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싶긴 했어요. 사실 <호랑이 주역>에서 『주역』이 아니라 『계사전』부터 공부했으니까 더 걱정됐죠. 그래도 알려주신 사이트에 번역이 다 나와 있고, 한자의 음도 뜻도 잘 모르지만 요즘은 검색해서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걸 참고하면서 내 나름 느낀 거, 생기는 질문을 섞어서 발제를 했어요. 그때 기억나는 게, 제가 제 나름대로 발제를 해오니까 구름 쌤이 약간 기특하다는 듯이 보셨나 봐요. 저는 시선을 못 느꼈는데 제 옆에 있던 동은 님이 구름 쌤을 보고 빵 터졌어요. 잘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발제를 한 걸 좋게 봐주시는 그 느낌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사실 <마이동풍>이 엄청 도움이 됐죠.

 

 

▲ <마이동풍>에서 처음으로 점 치기 전, 수영장에서 목욕재계 한 모습

 

 

<마이동풍>은 <청년 책의 해>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주역』 세미나를 하는 청년 다섯이서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세미나다. 『주역』과 『계사전』를 통해 청년들의 문제의식인 ‘젠더 혐오’, ‘연애 문제’ 등을 살펴봤다. <마이동풍>의 결과물은 유투브 <이크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은      <마이동풍>은 어떤 도움이 됐나요?

경덕      초반에는 거의 고은 님, 동은 님, 우현 님이 준비를 해와서 지원 님이랑 저는 미리 공유해주신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오면 되니까, 그 안에서 좀 더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끼리 야외 활동도 많이 했잖아요. 수영장 가서 목욕 재개하고 카페에 가서 산가지로 점을 치는 구성도 너무 재밌었어요. 자연스럽게 놀이처럼 『주역』을 공부할 수 있었어요.

고은      사전에 기초 수업을 듣고, <호랑이 주역>에서 『계사전』 같은 『주역』 서브 텍스트를 읽으면서 동시에 『주역』을 가지고 또래들끼리 놀아보는 활동까지, 『주역』을 나름 탄탄하게 공부했네요.

경덕      그러네요. 아주 알찬 1년을 보냈어요. 

 

 

 

 

확장성 있는 『주역』과 『주역』 세미나

 

고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경덕      한자를 잘 모르기도 했고, 『주역』으로 동양 고전을 처음 접하기도 해서 공부하는 게 어렵긴 했는데요. 근데 사실 그건 진짜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주역』을 왜 공부해야 되지?’ 하는 의문을 가진 채 공부했어요. <동물을 퀴어링!> 세미나 마지막 시간에 고은 님이 저를 잘 낚고 저도 잘 낚여서 호기심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서요. 공부를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작년에는 ‘관계’가 컸던 것 같아요. <문탁네트워크> 청년들과의 관계, 그리고 선생님들과 만나면서 접한 새로운 문화 같은 거요. 그 문화 안에 동양 고전을 공부하는 태도도 포함되어 있죠. 여러 가지 것들이 다 낯설지만 새롭고 자극이 됐어요.

             2023년에도 『주역』을 공부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를 고민하면서 <호랑이 주역> 에세이를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 『주역』이 단순히 점치려고 공부하는 텍스트도 아니고, 다른 서양철학이나 다른 동양 고전과 같이 사상이 적힌 텍스트도 아니구나.’ 아직 『주역』이 어떤 텍스트라고 설명은 못 하겠지만 이 안에 확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하는 사람마다 달리 활용할 수 있겠다 싶고 저 역시도 『주역』 공부와 다른 공부에 접점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2023년에도 공부하게 되었어요.

고은      어떤 순간에 그런 것들을 느꼈어요?

경덕      에세이에서 산천대축괘를 가지고 저의 이야기를 썼어요. 정식으로 점을 쳐서 뽑은 괘는 아니지만, 그 괘가 2022년의 저를 잘 설명해준다고 느껴져서요. 이런 식으로 괘와 삶을 연결을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했고요. 또 『주역』 안에 나오는 음양과 서양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이분법은 어떻게 다른지 탐구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어떤 괘사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신체 부위마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상징으로 보는 게 재밌다고 느껴졌어요. 『주역』 안에 신화적인 것, 인류학적인 것이 다 있는 것 같다, 아주 막연하지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 <호랑이 주역> 마지막 시간에 에세이를 보고 있는 경덕

 

 

고은      십이지신 대신에 ‘크리에이티브’가 붙은 2023년 『주역』 세미나 커리큘럼은 어떠셨어요?

경덕      ‘작년에는 소였고 올해는 호랑이였으니까 내년에는 토끼로 하겠구나. 나는 토끼띠니까 잘 맞아떨어지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컨셉을 바꾸셨더라고요. 세미나이면서도 강의인데, 참가자들은 크리에이티브하게 표현해볼 수 있는 커리큘럼 같아요. <호랑이 주역> 첫 시간에 봄날 쌤이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서 좀 당황스럽다는 말씀을 하신 게 기억이 나네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청년들과 같이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으니,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확장성 있게 커리큘럼을 구성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결과물도 예술 작업, 에세이, 암송 중에 택할 수 있다는 걸 보면서 혁신적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고은      경덕 님은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해보고 싶으세요?

경덕      작년에도 느낀 건데 세미나 밖에서의 활동이 제 공부에 엄청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올해는 『주역』을 공부하고, <불교 세미나>와 <돌봄 양생 프로젝트>를 등록했고, <새벽이생추어리> 돌봄활동을 계속하게 되었어요.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무언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괘를 해석한 책이 아니라 괘 자체를 보잖아요. 괘 자체, 괘사 그리고 효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거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무언가가 나올 것 같습니다.

 

 

 

 

고은      마지막으로 이 세미나에 접속하기를 망설이고 있으실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경덕      고민하고 계시고, 이 인터뷰 글을 읽고 계신다면 무조건 등록하시라. 왜냐하면 제가 있기 때문에.

고은      어머.

경덕      처음 동양 고전, 특히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의 심정을 저는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처음부터 동양 고전 공부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오시면 제가 옆자리에 앉아서, 아 부담스러우시면 좀 떨어져 앉아서 잘 살필 수 있어요. 그리고 처음에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도 같이 의논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주역』 자체가 갖는 확장성, 그 안에 재밌는 얘기가 많은 것 같아요. 그걸 탐구하면서 같이 재밌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5~6년 전 교보문고에서 “『주역』을 처음 공부하는데 뭐부터 하면 되나요?” 하는 질문을 받았던 가짜 『주역』 학도는 2년 사이에 『주역』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는 진짜 『주역』 학도가 되었다. 종횡무진하는 『주역』 학도 경덕 님이 2023년에 『주역』으로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크리에이티브 『주역』>을 신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진짜 『주역』 학도가 되어, 경덕 님 옆자리에 앉아 ‘크리에이티브’한 『주역』을 만날 수 있다. >신청하러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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