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술을 그만 마셔야 해요.

도라지
2023-05-3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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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문스탁 당번일은 매달 22일입니다. 그만 빵꾸를 냈고. 오늘 그 빵꾸를 때웁니다~)

 

내일 모레가 6월이란다. 

4월과 5월이 통으로 날아간 느낌이다.  친정집 아파트 입구에 겹벗꽃 폈을 때부터 시작된 간병이 이팝에서 아카시아로. 다시 찔레와 쥐똥나무로 이어지고 있다. 아카시아 때는 아빠의 배설물 냄새와 달큰한 꽃 향기가 겹쳐서 한동안 밥대신 맥주만 벌컥거렸다. 지금은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시니 핑계댈 것도 없다만. 음... 한번 술에 손을 댔으니. 어쩐다. 오늘도 낮부터 맥주를 마셨다.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벌써 2주를 보내셨고. 다행히 뇌압은 서서히 낮아지고 있는 중이다. 곧 퇴원 이야기가 나올텐데. 모친은 더이상 아빠 간병이 버겁고 두려우시다고 하시니. 요양병원을 다시 알아보는 수밖에. 샌들을 신고 발품 팔다 보니 만보를 걸었다. 어디를 가도 요양병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정집 인근 요양병원을 몇군데 돌았고 발은 아프고.  속은 상하고. 마트에서 맥주랑 먹태를 샀다. 안주를 야무지게 잘 고른 듯.

 

 

 

치매환우 카페, 뇌질환 환자 모임, 욕창의 모든 것, 재활 상담소.

요즘 주로 보고 있는 네이버 카페 목록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미리 봐둔다고 이제 와서 아빠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때론 미리 알아서 두려움이 커지기도 한다.  

 

 

내가 말술은 아니지만 애주가이긴 한 모양이다. 공부하는 동안 술을 잘 안마신 건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 마신다. 때론 책을 옆에 놓고 마시고. 때론 책을 펼치다 말고 마시고. 때론 책 위에 멸치를 올리고 마신다. 

 

(위 사진은 수년 전에 찍은 겁니다. 요즘은 테라 마셔요~)

 

이제 술을 그만 마셔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하니까. 문탁으로 갈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반갑지도 좋지도 않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신 동안은 매일 얼굴을 만져보고. 손을 잡아보고.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아빠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매일 술을 마시는 것과. 매일 공부를 하는 것. 

공부보다는 술이 좋은 것 같다.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나.

"저 곧 갑니다~~~"

 

 

 

댓글 12
  • 2023-05-31 08:44

    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 2023-05-31 09:40

    그래도 아버님이 중환자실에서 나오시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도라지가 애주가인줄 몰랐네요 ㅎ
    좋은 술 아껴놨다 줘야겠네~~

  • 2023-05-31 10:48

    뇌압이 낮아지고 계시다니 다행이에요.
    도라지가 공부보다 술을 좋아한다는 건 금시초문이에요.
    우리 좀 더 서로를 알아가야겠어요. 얼른 와요.^^

  • 2023-05-31 11:35

    샌들신고 만보라니ᆢ ㅜㅜ

  • 2023-05-31 12:05

    샌들신고 한낮에 만보라니....ㅜㅜ
    애주가였군요. 언제 같이...

  • 2023-06-01 07:06

    나랑 마시자.

  • 2023-06-01 07:51

    애주가였구나... ^^

  • 2023-06-02 00:21

    도라지님~
    언젠가 술집에서 맥주 마시다
    새우깡을 사오라고 땡깡을 부려서
    몰래 사갔던 흐릿한 기억이..

    글이 참 슬퍼요
    아버지도 도라지도 덜 아프고 슬펐으면

    • 2023-06-02 09:50

      아…쌤 앞에서 그런 주접을… ㅋ

  • 2023-06-02 22:23

    ㅜㅜ...

  • 2023-06-03 10:52

    같이 마셔요

  • 2023-06-07 07:46

    나도 술맛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