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세상의 모든 님들과 함께...『향모를 땋으며』

봄날
2023-03-13 10:12
352

세상의 모든 님들과 함께

 

이 책의 제목 『향모를 땋으며』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가장 가치없다고 치부되는 일들의 총합이다. 향모는 값을 매겨 팔거나 살 수 없으니 무가치한 것이고, 더구나 향모를 땋는 일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따지면 힘 낭비, 시간 낭비이다. 아니, 향모의 존재 자체는 ‘소비’가 미덕인 현대 자본주의에 커다란 위협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서로 주고받는 사이에 오고가는 부(富)가 커지기 때문이다. 인풋없이 아웃풋이 커지는 세계는, 끝없이 소비를 갈망하는 불나방같은 소비심리를 먹고 사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적이다. 식물학자이며 북미 인디언 포타와토미 부족의 일원인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를 따라가다 보면, 당황한 자본주의와, 지금의 세태를 비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하면서 슬그머니 그 흐름에 편승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확히 그 지점에서 키머러는 과학과 지혜가 결합된 말로 우리를 맞으며 이렇게 말한다. 향모를 땋는 행위야말로 사라져버린 이 세계의 호혜성을 살리는 일이라고.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이 책이 두 개의 세계, 즉 영적인 세계와 과학의 세계를 너무나 섬세하고 정확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키머러 자신이 식물학자이자 포타와토미 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두 세계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여, 이 두 세계가 교차하면서 읽는 사람들 모두를 강렬한 감동으로 이끌어낸다. 하늘여인으로부터 시작된 세계의 탄생신화를 그대로 간직한 인디언이자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겸손한 태도를 지닌 과학자, 두 딸들을 위해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엄마. 그러면서 스스로 숲속의 ‘나무인간’ ‘풀인간’ ‘벌레인간’들과 똑같이 ‘호혜성’의 고리 안에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그녀의 글은 즐거움, 기쁨, 성찰, 힐링, 희망의 감정과 함께 묵직한 실천의 마음가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식물에서 배우는 호혜성

이 책의 주제어를 하나만 꼽는다면 그것은 ‘호혜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주고받는 것을 뜻하는 이 단어는 언뜻 감성의 문제, 마음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키머러는 책의 많은 부분을 ‘과학’에 할애하면서 그 속에서 빛나는 식물들의 ‘호혜성’을 이야기한다.

 

식물학자로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상식을 뒤집어놓는다. 대규모 플랜테이션은 물론이고, 우리는 텃밭에서조차 나란히 줄을 맞춰서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콩은 콩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따로따로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천년동안 멕시코에서 여자들은 이 세가지 식물의 씨앗을 한데 심었다고 키머러는 전한다. 그리고 ‘세자매’라 불리는 이 세 종류의 식물을 한데 심는 것은 매우 ‘과학적’이라고 말한다. 5월에 축축한 흙에 심는 옥수수는 가장 빨리 싹을 틔우고 햇빛을 찾아 위로 성장한다. 콩은 흙속의 물을 마시면서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려보내 뿌리가 단단히 자리잡고 나서 싹을 틔운다. 셋 중에 가장 느림보 자매인 호박은 두 자매가 싹을 틔우고도 한참이 지나 싹을 낸다. 혹수수가 빨리 줄기를 위로 뻗는 것은 콩이 자라면서 휘감을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콩은 이파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넝쿨을 뻗는데 옥수수가 빨리 자라지 않으면 그 넝쿨에 질식했을 것이다. 한편 호박은 바닥으로 넓게 넓게 뻗어간다. 잎과 넝쿨에 빳빳하고 촘촘한 솜털이 있는 것은 애벌레가 뜯어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호박은 옥수수와 콩 밑동의 흙을 덮어 다른 식물을 접근을 막는다. 땅위에서는 물론이고 땅속에서도 세 자매는 서로 돕는다. 땅위에서 세 자매가 햋빛을 골고루 낭비없이 나누듯이 땅속에서는 빗물을 공유한다. 멀리까지 줄기를 뻗는 호박은 필요한 물을 충분할만큼 끌어들여 다른 자매들과 나눈다. 뿌리에 매달린 뿌리혹균을 통해 콩은 세 자매 모두에게 필요한 질소를 만들어낸다. 이때 드러나는 호혜성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개별성이 중시되고 장려되는 것은 전체가 번성하려면 각자가 굳건히 서서 자신의 선물을 당당히 가져가 남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자매를 보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선물을 이해하고 공유할 때 공동체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호혜성은 우리의 배뿐 아니라 마음도 채운다.”(199p)

 

상식을 뒤집는 사례는 또 있다. 바구니를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인 검은물푸레나무 개체수가 감소하는 현상에 대해 지나친 남벌이 원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바구니장인들이 사는 마을근처에 오히려 어린나무가 무성했다. 키머러는 남벌이 아니라 과벌이 원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바구니장인들이 많아서 다 자란 검은물푸레나무를 베면 햇빛이 아기나무에 도달하게 되어 어린나무들이 숲지붕까지 자랄 수 있었다. “검은물푸레나무와 바구니장인은 수확하는 존재와 수확되는 존재로서 공생하는 동반자다. 검은물푸레나무는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은 검은물푸레나무에 기댄다. 둘의 운명은 서로 이어져있다.”(221p)

 

바위에 붙어사는 석이버섯같은 지의류는 또 어떤가. 지의류는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이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내는 독립영양생물이지만 에너지에 필요한 당 이외의 무기질을 찾지 못한다. 습기가 있어야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도 제약인데, 몸이 마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다. 반면 균사로 조류의 표면을 감싸 수분을 유지해주는 균류는 스스로 영양소를 만들지 못하는 종속영양생물이지만 물질을 분해해서 무기질을 만드는 솜씨는 훌륭하다. 공생 덕분에 조류와 균류는 당과 무기질을 호혜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 “이렇게 생겨난 유기체는 하나의 기계처럼 행동하며 이름도 하나다.”(399p) 이들의 결합은 아무 조건에서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원이 심하게 모자랄 때 비로소 서로를 돌아본다.

 

윈디고의 습격

이렇듯 삶이 팍팍할수록 식물들은 서로 돕는다. 사람들은 어떤가. 아니사나베 부족의 전설에 ‘윈디고’라는 괴물이 있다. 얼음심장을 지닌 윈디고는 끝없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그러나 결코 허기가 채워지는 적이 없다. 먹으면 먹을수록 굶주림에 시달린다. 먹을수록 더욱 허기를 느끼는 윈디고는 끝없이 소비를 추동하는 현대 소비경제사회의 모습과 싱크로율 백퍼센트이다. 원래 윈디고 신화의 목적은 양의 되먹임, 즉 끝없는 섭취량 증가가 아니라 음의 되먹임, 즉 섭취가 허기의 감소를 이끌어 균형과 지속의 가능성을 알리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윈디고적인 본성이 있으며 우리는 스스로 탐욕스러운 본성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을 염두에 두라고 말했다. 어둠을 직시하고 그 힘을 인정하되 양분을 주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기심을 이겨내는 것이 자연에게서 받기만 하는 인간들이 해야할 임무였다. 오늘날 윈디고는 내면과 외부에 전면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커머러는 말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내면의 윈디고뿐 아니라....세상이 뒤집혀 어두운 면이 밝은 면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방종한 이기심은 한때 끔찍한 것으로 지탄받았으나 이제는 성공의 비결로 찬양받는다. 우리 부족은 탐욕을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여겼으나 지금의 우리는 탐욕을 존중하라고 요구받는다. 소비중심의 사고방식은 ‘삶의 질’을 내걸지만 실은 우리를 속으로부터 파먹는다. 마치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식탁에 놓인 음식이 허기만 북돋우는 꼴이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위장의 블랙홀. 우리는 괴물을 풀어놓았다.”(451p)

 

향모를 땋는다는 것은

이 책이 결정적으로 감동적인 것은 윈디고의 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또한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의 메시지는 의외로 9개의 슈퍼펀드 부지로 주목받으면서, 한때는 북미지역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 중 하나였던 오논다가호에서 시작됐다. 반세기 만에 오논다가호는 수많은 식물, 동물이 넘치던 곳에서 악취나는 쓰레기로 덮인 불모지로 변했다. 거대 다국적 화학기업들은 수백만톤의 산업폐기물을 호수에 쏟아부었고 도시도 하수를 버려 고통을 더했다. 일찍이 평화를 약속한 다섯 개 부족이 심은 평화의 나무는 사라졌고, 끈적끈적한 슬러지가 쌓여 물고기도 나무도, 풀도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1880년대 흰 연어를 잡아 소금물에 삶은 감자를 곁들여 먹고 누구가 호숫물에 뛰어들어 수영하던 오논다가호였다. 20미터가 넘게 쌓인 쓰레기 퇴적물은 더 이상 생명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백인들은 땅만 못쓰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오논다가호 주변에 살던 수만 명의 네이션 사람들은 조지 워싱턴의 명령 하나로 쫒겨나고 죽임을 당하면서 불과 몇 백명으로 줄었다. 아이들은 붙잡혀 칼라일로 가서 오논다가 문화를 말살하는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인디언 언어를 쓰는 것도 그들의 ‘감사연설’을 말하는 것도 금지됐다. 롱하우스의 제의도 법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오논다가 네이션은 수 세대의 침체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힘을 잃지 않고 땅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키머러의 말처럼 “대지에 손을 얹고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온전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사람들보다 먼저 나무‘님’들이 시작했다. 자작나무님과 오리나무님, 참취님과 미국질경이님, 부들님, 이끼님들이다. 질소고정 식물인 콩과 토끼풀들이 분투하는 풀밭은 그녀의 말처럼 “최초의 복원생태학자”가 되어 자신의 선물로 땅을 치유하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땅의 안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좌절하고 호혜적 관계에 ‘출입금지’표시판을 달 때, 식물은 바로 폐허에서 치유의 방법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키머러는 환경운동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세상이 파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보의 홍수에 둘러싸여 있으나, 세상에 어떻게 양분을 공급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다. 환경주의가 암울한 예언과 무력감의 동의어가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옳은 일을 하려는 우리의 타고난 성정이 억눌리면, 행동을 촉발하기는커녕 절망을 낳게 된다.”(490p)

 

키머러는 우리에게 ‘향모를 땋는’ 역할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향모를 땋는다는 것은 향모드림이 가진 선물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것이고, 숲의 모든 사물들과 선물을 주고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없어진 줄 알았던 향모는 오논다가호 주변에서 자라고 있었다. “부서진 것은 땅이 아니라 우리가 땅과 맺고 있던 관계”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윈디고와 산업쓰레기의 습격으로 정신을 잃고 호혜성의 원환에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인간만이 튕켜나간 호혜성의 원환안에서 식물은 빛과 물을 가지고 식량을 만드는 법을 알고, 스스로를 먹이고 나머지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린다. 사람들은 그들에 기대어 먹고 살며, 그들의 풍요로운 번식을 돕는다. 향모를 심고 기르고 보살피고 땋는 것은 인간들이 호혜성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겸손하게 나무님, 풀님, 벌레님, 세상의 모든 님들과 함께 호혜적 관계를 이어간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향모 한다발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라, 취하기 전에 허락을 구할 것, 첫 번째 향모는 지나칠 것, 절반만 취할 것, 자신을 받드는 이들을 떠받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 6
  • 2023-03-13 11:09

    문탁의 필독서가 된 <향모를 땋으며>! 일찌감치 책꽂이에 꽂아놓고 못읽고 있는데
    봄날샘의 글로 또 다시 읽은 것 같은 착각이 한 스푼 늘어납니다.ㅎㅎㅎ
    언젠가 아직 못읽은 사람들 모아서 번개세미나라도 해야 할까봐요.^^

  • 2023-03-13 13:59

    저도 있어요~ 아직 못 읽고 있는 <향모를 땋으며>

    • 2023-03-15 09:33

      저도요~ 책 첨 나왔을 떄부터 맘에 찜꽁해뒀는데, 쌤 1234 글을 통해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넘 좋았어요ㅎㅎ

  • 2023-03-13 16:22

    4번의 1234가 다 끝나고나서 그 중 몇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세미나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셈한기에요.

  • 2023-03-14 01:30

    이건 좀 웃긴 이야기지만 저는 <향모를 땋으며>가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을 때 '양모를 땋는다고? 무슨 실 만드는 이야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나아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산업혁명과 인클로저, 면방직과 모직산업... 등등도 떠올렸고요. 아... 제가 그랬습니다... 양모를 땋으며.... 앞부분 좀 읽다가 그만뒀는데 이 스케쥴 폭풍이 좀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2023-03-14 07:00

      양모... ㅋㅋ 향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사진을 올려주셨네요. 땡큐~ 봄날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