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밀양에 다녀왔어요

고은
2022-11-1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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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주말에 밀양에 1박 2일로 농활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이후이니 거의 3년만이지요! 인스타그램에서 어진이가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읽고 밀양 갈 생각에 신이 나서 밤을 설친 저.. 결국 총대를 매게되었습니다.

 

  여기저기에 혹시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초반에 모인 인원은 22명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거진 직장인이 다 된 20대 중후반~30대들에게 주말에 밀양에 다녀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특히 연말이니까요. 아픈 사람이 속출하며 한두 명씩 빠지더니 당일날 함께 가게 된 사람들은 15명이었습니다. 밀양에 도착해서 보니 15명이라 얼마나 다행이던지^^ 귀영쌤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15명도 많아서 저는 거의 몸을 접은 상태로 있었으니까요, 1명이라도 더 왔더라면 진짜 튕겨져나갈뻔 했습니다.

 

 

 

 

 

 

 

 

  토요일 밀양역에서 각자 점심을 먹고 2시에 만나기로 합니다. 반가운 얼굴을 많이 만났어요. 오랜만에 머리 짧은 지원과 명식, 광합성도 보았구요. 저번 기후정의 행진 때 꼬신 규문의 건화와 민호, 같이 주역 세미나를 하는 머리 긴 지원씨와 경덕님도 왔지요. 또 비학학 세미나를 함께 한 뒤 종종 연락하는 윤주님과 역시 비학학에서 만난 <들불>의 구구님, 5년 전 밀양을 주제로 다룬 <길위의민주주의>에 참여했던 <우주소년>의 현민이와 수현이도 함께했습니다. 또 알음알음 구구님의 친구와 현민이의 친구도 참여하였어요.

 

  그러나..  밀양역에서 만난 사람 중 제가 가장 반가웠던 건 어진이었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광합성이랑 셋이서 밥을 먹는데 제가 너무 웃어서 밥을 거의 못 먹었어요. 어진이도 저희가 반가웠나봅니다. 웬일로 저녁에 같이 술을 먹고 귀영쌤 집에서 같이 자고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어진이는 항상 술을 먹지 않고 집으로 후딱 귀가하곤 했거든요. 뒤이어 은숙쌤도 밀양역에 도착하셨습니다. 이틀간 저희의 이동을 도와주실 예정이시지요. 

 

 

 

 

 

 

  첫 번째 일정은 송전탑 답사입니다. 원래 계획은 동화전 마을 뒤에 있는 험난한 산을 올라가는 거였다고 해요. 아침 일찍 저희 대신 어진이가 먼저 다녀왔는데, 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찾을 수가 없더랍니다. 한손에는 낫을, 한손에는 네이버 지도를 들고 한참을 헤매다가 내려왔대요. 코로나로 3년이 지나고 송전탑에 가는 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느낌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어떤 풀과 어떤 동물들에게 그곳이 새로운 터전이 되었을테지만, 3년이 어디로 가버린 것처럼 느껴져서 속상하기도 했어요. 

 

  결국 저희는 가장 평탄한 곳에 있는 송전탑으로 향했습니다. 

 

 

 

 

 

 

  밀양의 가을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같이 가는 모두가 감탄을 하니, 어진이는 매일 보던 것이라 아름다운줄 몰랐다고 허풍을 떱니다. 그래도 그와중에 사진 저 어딘가에 송전탑이 계속 찍히기는 했네요.

 

  송전탑을 잠시 지나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신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어진이에게 설명을 듣고 다함께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래 우측 사진은 어진이와 지원이가 걸어가는 모습인데요. 어느새 아저씨들이 되어버린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밀양에 가서 그런지, 여느 때보다도 옛 모습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어진이도 분명 앳된 얼굴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P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밭 한가운데 들어선 송전탑 앞에 서서 어진이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이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처음 밀양에 오신 분들이 어떻게 사태가 이렇게 될 수 있냐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여러 번 질문을 하십니다. 어진이는 원래 자신이 말하는 역할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자기가 자꾸 말을 하고 있다며 투덜거리는 척 하지만~~ 술술술 막힘 없이 밀양에 대한 모든 정보와 사건을 읊는 모습이 멋지기만 합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저녁에 하기로 약속하고 간신히 발길을 다시 돌려 귀영쌤 댁으로 향했습니다.

 

 

 

 

 

 

 

 

 

  귀영쌤 집에서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와 어진이는 필사적으로 밖에서 먹고 들어가려고 노력했는데요.. 어진이도 몇 번이나 퇴짜를 맞고, 저도 밖에서 먹겠다고 고집부리며 통화를 하다가 "그럴거면 너네 밀양 오지 마라!!!!"하고 된통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많이 떼를 써놓아서 그런지(?) 저녁은 카레였습니다. 귀영쌤은 카레 드시지 않는데도, 비건용 카레와 고기가 들어간 카레 두 종을 엄청 많이 끓여주셨습니다. 거기에 가오리회무침(?)까지! 엄청 풍성한 저녁 식사가 되었지요.

 

  저희끼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나니 손쌤과 은숙쌤이 도착하셨습니다. 다함께 술을 한 잔 했는데요. 밀양에 처음 오신 분들이 많이 우셨어요. 밀양의 선생님들도 많이 우셨지요. 한바탕 울고 마지막 순서였던 현민이가 트로트를 한 곡 불렀는데요. 선생님들이 다함께 일어나셔서 춤을 추시고 노래도 부르셨답니다. 울다가 웃다가 엉덩이에 풀이 날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한참 활발하게 써우던 때, 밀양 사랑방에서 봤던 풍경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5시쯤 밥을 먹기 시작해서 거의 5~6시간을 다함께 달린 술자리가 끝나고, 다함께 귀영쌤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여자들은 1층에서 남자들은 2층에서요. 그런데,, 귀영쌤네집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ㅜㅜ 2층 남자들이 무척 추울까봐 2층에 이불과 히터를 올려보냈는데요. 남자친구들은 아주 따땃하게 잤다고 하네요. 대신 1층 거실에서 잔 여자친구들 몹시 춥게 잤다는.. 다녀와서 지독한 감기에 걸린 친구도 생겼다는.. 그런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귀영쌤은 어쩔줄 몰라하시면서 다음에 다시 꼭 오라고, 그때는 따뜻하게 데워두시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지요.

 

 

 

 

 

 

  다음날 아침, 8시에 감을 따러 출발했습니다. 아침을 귀영쌤집에서 카레와 누룽지로 든든하게 먹고요! 아침 먹고 정리하고 하느라 사진을 못 찍었네요ㅎㅎ

 

  감은 상동마을에 가서 땄습니다. 마을에서 합의를 하지 않으시면서 마음 고생이 많으셨다는 부부 어르신의 집이었는데요. 두 분 다 몸이 좋지 않으셔서 감을 따지 못하고 계신대요. 다른 집들은 다 땄는데, 유일하게 마을에서 어르신 집만 감이 남아있다고요. 11월 초는 조금 늦으니 다음엔 10월 중순이나 말에 오라고 하시네요ㅎㅎ

 

  밀양 11월초 아침은 꽤나 춥습니다. 여자친구들은 특히 다들 춥게 자서 그런지, 꽤나 추워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감을 따고 어떤 친구들은 감의 꼭다리를 땁니다. 너무 익어서 먹을 수 있게 된 감은 상품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먹었습니다ㅎㅎ 여기 저기서 이야기 장이 열렸습니다. 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서 몰랐는데, 이런 저런 관계가 이 안에서 또 생겼던 것 같더라고요! 

 

  어진이는 감따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을 좀 돕는듯 하더니만 저를 엄청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언제 다 따겠냐, 일을 왜 이렇게 못하냐... 저를 구박함으로써 전체의 일하는 속도를 올리려는 의도였다고 해요. 실제로 속도가 엄청 빨라졌습니다. 어진이의 일한 짬밥이 어디 가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너무나도 어진이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었습니다^-^

 

 

 

 

 

 

 

  어진이는 귀영쌤 집으로 잠시 떠나고 저희끼리 어르신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네다섯가지 반찬에 국도 두 종류.. 점심을 엄청 잘 얻어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덕분인지, 해가 땅을 덥혀놓은 덕분인지 더이상 춥지 않았습니다. 다들 외투를 벗고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어요. 일이 점점 손에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이게 자신의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너무나도 이 풍경과 잘 어울려서, 이곳에 정착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점심을 먹고 또 일을 했어요. 4시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거의 감 밭 3개를 아작냈다고나 할까요?^^ 사람 손이 무섭구나 싶었습니다. 사람이 이리 많으니 일이 어렵지 않게 금방 끝나더라고요. 

 

 

 

 

 

 

 

 

 

  일을 마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선생님들이 주신 한약도 잘 받으셨고, 또 자누리 비누도 잘 전달해드렸답니다.

 

 

 

 

 

 

 

  올라오는 길에 제가 가장 빠른 5시 기차를 탔는데요. 제 뒤로 온 기차들은 탈선으로 줄줄이 연착되었다고 해요. 대부분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고 하네요.

 

  너무 즐겁고, 너무 반갑고, 너무 행복한 농활이었습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제 인스타그램 게시글 주소를 덧붙입니다. 이곳에서 짧은 동영상을 확인해보세요(클릭))

 

 

 

댓글 2
  • 2022-11-14 08:02

    아, 그리운 풍경과 그리운 얼굴들.
    싸움은 끝나지 않았는데,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그 싸움에서 아주 쉽게 쏙 빠져나와 있네요.
    그래도 밀양에서 해마다 보내주신 감과 이런 농활이, 우리의 그런 상태(밀양 싸움이 어떤 형태든 지속되고 있고, 여전히 고통받는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를 환기해줍니다.
    하여, 감따기 농활 갔다 오신 청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22-11-14 08:51

    울다가 웃다가 했다는 내용에 가슴이 찡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