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당나귀 EO> 후기

띠우
2024-06-05 22:17
128

존중과 우정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의 삶과 활동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인간-동물 관계에는 이런 존중이 결핍되어 있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이런 존중이 특히 부족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도 진정한 존중이 부족할 수 있다. 존중만이 아니라 우정에는 더 많은 것이 수반된다. 활동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서로의 곁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보통 우정은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는 일을 필요로 한다. 우정에는 신뢰가 필요하며, 신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이며, 당나귀 EO의 순수한 시선이 돋보인다는 평만 보고 마주한 영화는 좀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많았다. 붉은 화면으로 꿈인지 환상인지 추상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과 함께 인간들과 만나는 매 에피소드도 말이다. 동물의 시선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감독의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인간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까지, 영화 중반까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여전히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판단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존중’에 방점이 찍힌 사고실험이랄까. 인간적 사고가 나타나면 불편해하는 것도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존중에 머물기 때문이다. 관계 안에서는 더 치열한 마주함이 있는데 말이다. 말이나 상상속에서만의 존중이 아니라 실제 마주하는 경험. 타자, 비인간과 관계맺음으로써 사소한 것으로도 오가는 우정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경험이 미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는 준비과정이나 마무리까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당나귀를 마주했을 감독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댓글 6
  • 2024-06-10 01:20

    일인칭 당나귀 관점

    "우리는 동물을 발견하고 동물을 바라보지만 동물도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는 보통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시선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인간을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 그 의미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그렇지만 대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많은 종족들에게 동물이라는 인간과 다른 부류의 존재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일은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었다. … (중략) … 여기서 본다는 것은 표상하는 것, 아는 것, 나아가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그 모든 행위는 “인간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이처럼 동물의 시점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동물을 자기 시점을 가진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중.

    영화는 당나귀의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대사도 적고, EO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단편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이질감도 있다. 전반적으로 고요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EO의 귀여운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좀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당나귀도 하나의 시점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도 당나귀 EO를 바라보지만, EO 역시 자신의 시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물론 인간이 만드는 영화이니, 이것 또한 인간적 시점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동물도 자기 시점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나는 보는 동시에 보이는 존재'라는 것을 유의미하게 조명한다는 점은 분명 새롭다. 당나귀의 시점으로 본 인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로 가득차있고 인간-동물의 관계는 일방향적이며 비대칭적이다. 그래서 EO의 여정은 슬플 수밖에 없다. 인간들과 함께하는 순간마다 바라본 그의 가련한 눈망울이 기억에 남는다.

  • 2024-06-10 15:01

    이 메모가 남아있는걸 깜박하고 책을 반납한터라, 다른 책을 집어들고 보니, 70년대 이후 동물윤리 운동의 역사를 이렇게 보고 있다.
    "1970년대 동물윤리학 창시자들은 감수성을 기준으로 삼았고 1990년에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 또는 차별주의 철학을 문제 삼았다. 세 번째는 현재로 동물 문제의 정치화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동물 문제를 통해 인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
    첫째 단계를 동물 권리라고 한다면 현재는 동물 정의를 말한다. 누수바움이 쓴 동물을 위한 정의는 현재 동물에 관한 논의 지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의는 권리보다 훨씬 합리성의 영역인 듯하다. 정의는 법과 제도의 영역을 깊숙하게 건드리는데, 정의를 위해서는 동시에 인간 비인간의 행동양식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게 된다.
    당나귀 이오가 방랑하는 여정을 보면 이오가 당하는 불행은 반드시 자본주의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는 이오가 겪는 사건들의 인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이오의 시선을 좇는 의도를 짐작케 한다. 이오가 보는 인간들은 일관적이지 않다. 이오에게는 인간이 타자일터인데, 타자에게서 일관성의 크기가 작을수록 가까이 하기는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이오는 인간이 타자를 처음 만날 때 그러하듯 끊임없이 관찰한다. 카산드라와 같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서커스단이 해체되면서 시작된 이오의 달아나고 잡히는 긴 여정이 도살장에 자기 발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고, 그것으로 영화도 끝나는 점은 인간사회의 동물보호운동이 실제로 동물들에게 실효성이 있는지를 묻는것도 같다.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은 문제라는 듯이.
    권리에서 정의로 이어지는 담론의 변화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결국은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정의의 관점에서 법과 제도를 말할 때 그것이 동물법이나 동물복지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한 듯하다.

  • 2024-06-11 08:34

    당나귀 이오

    1. 사이키조명아래 선 것처럼
    시선은 끊어지고 그로인해 숨통이 조인다.
    음향과 시각이 시시각각 분절되고
    화면을 가득 메운 붉음의 불안과 불편함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2. 그 불안과 불편은 이동의 부자유와 불평등 그리고 끝없는 새겨지는 위계의 세계에 진입하는 통과의례다.

    3. 영화적 세계에서 사람들(인간+비인간 모두를 사람들로 보자)은 모두 위계화되어 있고 자신의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4. 유일하게 가슴이 펴지고 무언가 뭉클해지는 장면은 다양한 앵글속 광활한 대자연과 함께하는 이오의 모습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유형

    사람1))카산드라
    왠지 모르게 항상 남자들과 함께 하지만 매번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게다가 카산드라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대체로 참을성이 없고 화가 나 있는것 같다.

    사람2))늑대와 여우
    인간사람에 의해 늑대는 자신의 서식지에서 총에 맞아 죽고
    여우는 도축장같은 공간에 잡아다 놓고 인간사람의 필요에 따라 바로 살해한다.

    사람3))운반 트럭을 모는 운전자
    언어와 음식으로 배고픈 약자를 유혹하고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금방 살해된다.

    사람4)) 파면된 신부
    도박으로 인해 정직처분이 된것 같은 이 사람은 부유한 신분으로 묘사되고 형식적으로 엄마인 사람과 욕망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관계는 매우 위태롭다.

    사람5)) 이오
    유일하게 자신을 아끼는 카산드라와 헤어진 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야할 가축으로서의 멍에를 벗고 길을 나설 만큼 당당하고 여우를 살해하는 사람을 걷어찰 정도로 부정의에 저항한다.

    사람6)) 백마
    자신의 생리대로 살수 없음에 신경쇠약상태가 된 사람으로 보인다. 인간사람들의 착취로 삶을 포기할수 밖에 없는 극한의 지경으로 몰린다.

    …영화속 세계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이동의 불편함과 성별, 계급화된 불평등, 개별존재 방식 각각의 삶의 형태를 빼앗긴 착취의 형태를 볼수 있다. 게다가 존재의 위계값과 위치에 따라 더 쉽게 착취되고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된다. 인간들도 경제력과 성별, 지위에 따라 달라지고, 동물들도 야생이냐 가축이냐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경제적 가치가 높냐 낮냐에 따라 다르다. 영화속 세계에서 그런 위치성에서 그나마 자유로와 보이는 존재는 이오밖에 안 보인다. 그러나 이오의 마지막 길도 이동이 자유롭지는 못하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의 길이 교차하고 맞닿아 있듯
    인간-비인간이 뒤섞인 사람해방의 길 또한 다른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제노사이드와 에코사이드, 인간 홀로코스트와 동물 홀로코스트의 작동방식이 다르지 않듯이.

  • 2024-06-12 00:54

    이오는 당나귀다.
    어쩌면 나는 당나귀를 의인화하여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인간 중심적 사고를 통해 그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일지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경험을 통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영화 속 이오를 보면서 나는 이오의 입장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온전히 이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인간이 그를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 이오 앞에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인간,
    이오를 도와 주거나 아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쩌면 다만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었다.
    당나귀 이오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간?
    아니다. 불가능하다.
    그냥 모두 인간의 시점이고 인간의 해석이다.

  • 2024-06-12 08:16

    서커스단에서 카산드라와 함께 커플쇼를 보여주던 '당나귀 이오'는 동물단체의 개입으로 서커스단이 해체되면서 경주마 사육장, 당나귀체험농장, 축구장, 모피농장, 몰락한 저택 등으로 삶터를 옮겨가며 여러 가지 곤란한 일들을 겪는다. 어디를 가든 이오는 카산드라를 잊지 못하고 늘 카산드라를 찾아 떠난다는 설정이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당나귀 일인칭 시점은 새롭게 다가온다. 당나귀는 '가축계의 강아지"라 불릴 정도로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라 한다. 기원전 4000년 전 이집트에서부터 인간의 농경과 노동을 도왔다. 어리석고 고집이 센 동물이라고 흔히 그려지지만, 오랜 시간 인간과 지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과의 교감이 잘 되는 동물이라는 뜻이겠다.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보며 교감한 당나귀가 주인공이어서 인간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해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겠다. 이오의 이야기는 이오의 눈을 통해 본 인간의 이야기, 결국 휴먼드라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뭘 기대했었는지 가축 당나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그랬는지 자연다큐 같은 걸 기대했는지 조금 아쉬웠다. 이오의 마지막 여정은 여전히 강렬하게 슬픈 인상으로 남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눈망울 외엔 희미해진다. 영화 찍느라 엄청 고생했을 여섯명의 이오 미안해~~

  • 2024-06-12 09:12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당나귀를 만난다는 것.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혹은 의인화하여 당나귀의 내면을 표현한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와 다른 신체인 당나귀의 관점에 우리가 결코 가 닿을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주관을 통과하여 당나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
    나는 영화 보는 내내 이오의 능동적 결단들에 눈길이 갔다.
    이오는 편안한 우리를 박차고 나왔고, 스스로 동행을 선택했고 또 죽음을 향해 갔다. 그것을 의인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나귀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을까...사랑을 느끼고 그 안에서 선을 발견하고 추구할 수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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