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위한 정의> 세 번째 시간 후기

띠우
2024-05-30 12:09
99

 

이번 주는 <동물을 위한 정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9장은 역량접근법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공생적 (말도 많고 탈도 많은)번영을 기반으로 비대칭적인 관계를 돌아본다. 공생은 개별구성원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며, 비대칭적으로 의존적이더라도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반려동물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 인간도 반드시 양보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공생 역량의 증진을 위해 우리가 보호해야 할 역량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예를 드는 것들을 읽다보니, 결국 인간이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이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은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것에 대해 분명 책임질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배움이 그것을 다 해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일까.

 

10장에서 저자는 야생과 자연을 서구에서 낭만주의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과 함께 인간의 책임회피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저자는 다종사회와 동물을 우리의 동료시민으로 보는 사상을 옹호하며 이 사상을 어떻게 확장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낭만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저자의 전제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이에 대해서는 자누리샘의 메모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물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지식의 목록을 늘리면 해결의 방식도 도출된다고 하기에는 그 지식의 목록을 만드는 사람들과 지식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이성은 스스로 지양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면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지점이 아닌가? 결국 누수바움이 제시하는 모든 방책에서 이성과 지식 중심의 늪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앞으로만 나갈뿐 뒤로 돌아가는 법에는 눈을 두지 않는다. 혹시 야생의 자연이라는 낭만주의적 사고나 원주민의 문화 속 포식에 관한 사유가 듣도 보도 못한 해결책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수바움은 애써 외면한다.”

 

11장에서는 우정의 역량에 대해 논한다. 인간-동물 우정의 패러다임(반려동물)과 동물-인간 우정의 패러다임(야생동물)이나 감금동물들과의 우정도 다루면서 인간역량의 확장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마지막 12장은 법의 역할을 가져온다. 현재의 법과 법 실무 상황, 특히 어그개그법에서 인상적인 진전을 저자는 포착한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은 도시의 길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길고양이들이 정부의 해당기관에 의해 포획되어 중성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기반을 뒤흔드는 선택을 할 때, 윤리적이라는 판단으로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할 수 있다. 나와 이웃이 된 길고양이를 위해 까치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세미나에서도 나왔지만, 동물들에게 포식을 금하기 위해 배양육을 던져 준다는 것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 역시 먹는 것을 위해서라면 배양육을 더 넓혀 나가야 한다. 그럼 그 관리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하게 될까. 저자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배양육과 관련되어서 녹평의 글과 한겨레의 글을 보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에서 벌어지는 과정이나 자본과의 결탁등이 이야기되었다. 인공육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나서 사람들은 배양육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고보면 현재의 문제 해결에 대한 초점을 배양육이나 전기자동차같은 것이 아니라 덜 먹고 덜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야생은 없다, 그래서? 배양육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태도에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궁시렁대면서 읽었지만, 구체적인 상황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저자에게 질문하기 위해서는 그 구체적인 상황을 내 앞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걸 회피하고 싶기에 읽는 일이 쉽지 않았구나라는 자각이 온다.

 

 

날씨가 좋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야외 세미나를 했다. 멀리는 못 가고 느티나무 도서관 지하에서였지만, 하늘을 보며 공기를 느끼며 모두가 5월 29일의 햇살을 즐겼다. 함께 못한 자누리, 노라님의 자리를 충분히 느끼면서...

 

다음 주에는 영화를 본다. 영화 제목은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당나귀EO>다.

 

 

안녕~~~

 

“동물의 눈으로 본 세상은 신비로운 곳이다. 우울한 눈빛의 회색 당나귀인 ‘EO’는 삶의 여정 속에서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만나고,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행운을 재앙으로, 절망을 예상치 못한 행복으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굴레를 겪는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 <당나귀 EO> 시놉시스 소개

 

84세의 노장 감독이 로베르 브레송이 만든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1966)>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또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는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백치'의 주인공 미슈킨 공을 당나귀로 각색한 영화였다. 원작 소설에서 선량한 미슈킨 공은 선천성 뇌전증 환자로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 성인으로 보이지만, 실은 불가사의한 통찰력을 가진 고결한 인물로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적 위선을 꿰뚫어 본다. 영화는 어떠한 동물 시점의 해석이나 나레이션 없이, 관찰자 시점의 영상 외에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1인칭 시점의 영상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의도적으로 단절하여 플롯을 알 수 없게 만든 특징이 있다.

 

따라서 발제나 메모는 없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6월 5일 수요일에 함께 봐도 좋을 듯하다.

댓글 2
  • 2024-05-31 23:28

    마사 누스바움의 <동물을 위한 정의>
    논란도 많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발을 붙인 이야기라서 무조건 거부할 수 없는 책이었네요
    불편함을 멀리하면 마음은 편하지만 삶은 늘 그 자리겠죠
    그래도 이 책 끝내서 홀가분한 건 사실입니다~~

  • 2024-06-02 13:04

    저는 책에서 기쁨과 통찰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보고 알았어요. 공부는 현실적일수록 괴롭다는걸요. 이번 시즌 읽는 책들이 다 그렇더군요. 혼종되기를 시도한 시즌이라, 혼종이 이렇게 어렵구나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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