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3 <루쉰 혁명의 문학> 2회차 후기

2023-09-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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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간에는 [외침]의 후반부 글들을 읽고 소중한 7명이 만났습니다. 

저는 루쉰과의 첫 만남이면서도 지난 시간에 참여하지를 못해서 더 많이 헤맸지요. 그런데도 바람에 흔들리듯 우연히 하게 된 세미나라 그런지 오히려 기묘한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띄엄띄엄하고 느슨하겠지만 2023년 9월을 비추어 우리가 왜 루쉰를 읽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더듬거리며 찾아보려고요. 우선 이번 후기는 루쉰의 글 [외침] 속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계몽’과 ‘희망’에 대한 관계, 그 얽힘에 대해 어렴풋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무릇 누군가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 되면 전진을 추구하게 되고 반대에 부딪히면 분발심을 촉구하게 된다. 그런데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볼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 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이 적막은 나날이 자라 큰 독사차럼 내 영혼을 칭칭 감았다. 허나 까닭 모를 슬픔이 있었지만 분노로 속을 끊일지는 않았다. 이 경험이 나를 반성케 했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팔을 들어 외치면 호응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영웅은 결코 아니였던 것이다.- [외침] 서문 p13

 

루쉰이 감당해야 했던 긴 ‘적막’의 터널을 감히 짐작해봅니다. 응답 없는 외침의 그 지난한 슬픔을요. 그러나 그 ‘적막’의 시간이 오히려 자신을 깊이 응시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해혁명세대의 실패는 루쉰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상처와 그림자를 담은 '루쉰 읽기'는 그래서 여전히 현재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루쉰은 아주 예리하게 사회 변혁의 시기에 일종의 ‘이중 관념’(노신평전 중에서)이 존재함을 발견합니다.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기장(騎墻)주의와 개인의 이익만을 취하는 기회주의처럼 겉으로는 조화와 절충을 중시하는 척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현재의 도살자’로 군림하는 태도입니다. ‘그게 그거 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단오절]의 팡쉬안춰로 대표되는 지식인의 이중성이 그렇습니다. 후스의 <상시집>을 읽으며 거들먹거리며 배우지 못한 부인을 함부로 대합니다. 루쉰은 여기서 -인간은 딱하게도 ‘자기를 아는 지혜’가 부재하는 존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루쉰 자신도 그런 이중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자각하는 부분이겠죠. 루쉰이 말하는 계몽은 ‘나를 따르라’의 영웅적 계몽이 아니라 끝없는 자각과 성찰을 염두에 둔 실천적 계몽이 아닐까요?

 

-하늘은 바다처럼 푸르렀다. 뜬구름은 누군가가 물에 붓을 씻어낸 듯 하늘거렸다. 달은 천스청을 향해 냉랭한 빛을 쏟아붓고 있었다. 처음엔 방금 닦아낸 쇠거울 같았는게, 신기하게 천스청의 전신을 투사하더니 이내 무쇠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흰빛] 중에서

 

[흰빛]은 섬뜩하고도 아름다운 단편영화 한편을 본 듯 강렬한 이미지를 남깁니다. 흰빛은 달빛이 비친 뼈조각의 반사빛 같기도 하고, 지옥불을 연상시키는 유황불의 희푸른 빛같기도 합니다. 그 광기 어린 빛은 천스청의 전신을 통과하고 천스청 자신을 삼켜버립니다. 시대의 변화를 감내하지 못하는 천스청은 무쇠같은 자신의 병리적 증상을 미쳐 깨닫지 못한 채 죽음의 그림자에 집어 삼켜집니다. -공포 어린 희망의 비명이 여명 속 서문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떨리고 있었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현실에 대한 패배감이 희망과 절망으로 뒤섞인 천스청의 병리적 증상들이 환각과 환청의 입체적인 감각으로 써내려져 긴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열 손가락 밑에 강바닥 진흙이 잔뜩 끼어있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건조하게 그저 현상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에드가 앨렌포의 차가운 단편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아Q정전에서 더 자세히 묘사되는 < 지배계급의 가학성과 민중적 자해, 아Q 자신의 어리석음>은 대체로 [외침]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오버랩 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흰빛]의 천스청의 모습은 조금 더 특별한 지점이 있어요. 그것은 신자유주의 경쟁의 폭력으로 물든 현대사회에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과 우울입니다. 루쉰 읽기가 현재진행형인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에게는 치열한 혁명의 경험은 없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촛불은 실패했고 2023년의 촛불은 아직 타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밤, 응답 없는 적막, 개인화된 투쟁의 재만 남습니다. 특히 요사이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한 나와 마주합니다. 부질없는 희망을 믿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절망에 붙들려 있고 싶지도 않습니다. 공동체를 벗어나 집에 오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럴때면 책을 펼치기도 하고 팟캐스트를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웃음과 따스한 감촉에 파고들죠. 아이들의 냄새에서 희망을 닮은 무언가가 피어나다 금새 사라집니다. [고향]에서 ‘나’는 룬투의 아이와 조카가 더이상 고통에 시달리며 살지 않기를, 모두에게 틈이 생기기 않기를, 새로운 삶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전장연의 박경석 선생님께서는 시민들의 무반응보다는 차라리 욕을 먹는게 좋다고 하셨었죠. 긴 시간 장애인 운동은 유리 벽에 갇힌 듯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시민들과 분리되어 있었는데 출근길 투쟁이 시작되면서 마침내 그 외침들이 일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출근길 투쟁은 400일이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있다고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그놈의 희망. 지난 월요일, 저는 그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그놈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 「광인일기」의 광인 묘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각성한 계몽가가 아니라 아직 각성이 충분하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 계몽해야 하는 미성숙한 주체다. 작가는 이 미성숙한 주체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동화시킨다. 작가가 자신도 아직 계몽 주체를 완성하지 못했고 미성숙 상태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동일시와 동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미성숙 상태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역사적 시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광기 이후 루쉰의 실천 내용이다.- [비판적 계몽의 루쉰] 전형준. 2023.

 

[외침] 속에서 ‘계몽’과 ‘희망’의 실타래를 풀어볼까 했는데,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네요. 힘을 남겨 놓고 [외침]에 이은 [방황] 속에서 친구들과의 탐구를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메모는 축복-유, 술집- 블랙, 행복- 느티나무, 조리돌림- 새봄, 비누- 참, 장명등- 봉옥으로 나누어 적어옵니다. 다음 시간에 보아요~

댓글 5
  • 2023-09-03 18:24

    "그렇다고 마냥 절망에 붙들려 있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참님은 루쉰을 읽고. 자누리 비누를 만들고
    꼴랩에서 그림을 그리고. 크게 웃고 ㅋㅋ
    그러시는군요.

    다음 모임에는 <방황>을 읽고 루쉰을 만나보아요.
    정성스러운 후기! 늦지않은 후기!
    감사합니다

  • 2023-09-03 19:25

    와~~첫시간에 빠진데다 책도 다 못읽었다고 했던 참샘. 벌써 다 따라오셨네요.
    후기가 좋습니다.
    100년전 스토리로 끝니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참샘에게도 여전히 영감을 주는 루쉰의 글. 좋아요!

  • 2023-09-03 23:59

    정말 후기가 너무 멋지고 좋습니다.
    루쉰의 글들을,.. 계몽, 혁명, 희망, 철장속 외침들을 .. 어떻게 풀어야할지 감은 안오고… 읽고만있는데…
    루쉰의 적막과 더불어 참샘의 … 무기력과 절망 하지만 희망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싶네요
    정성스런 후기 감사합니다^^
    치열하지 못한 지금의 저가 부끄럽네요.
    루쉰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지금은 어떻게 읽고있는지..
    방황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ㅎㅎ
    다음주 뵙겠습니다

  • 2023-09-04 17:47

    "자신의 살과 피에 들어가지 못하는 혁명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저는 이번에 <단오절>과 <아Q정전> 을 읽으면서 좀 소름이 끼쳤습니다.
    1920년대의 글이지만
    2020년대에도 여전히
    양다리 걸치는 기장주의와 기회주의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의
    '실질적으로 무수한 아Q들의 집단'.....

  • 2023-09-05 16:00

    참님. 정성스런 후기 감사해요.
    루쉰은 넘 먼 사람인 것 만 같은데, 참님의 후기로 지금의 우리 삶과 연결되어지는 지점이 있네요.
    출근길 투쟁,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놈의 희망이 잠시 머물다 갔다니...찡하고
    저도 함께 그곳에 있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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