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들> 9-11장 후기

뚜버기
2023-07-19 04:05
302

이번 책에서 제일 많이 배운 것은 아나키즘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된 점이다.

아나키는 무정부주의이고 그래서 조직도 없고 뒤죽박죽에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평등한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가장 깊이 고민하는 윤리적 실천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누구도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조직 과정에 있어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안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제안하고 수정하는 합의과정을 거친다고 그레이버는 말한다.

반면에 학계의 급진적인 지식인들이 사소한 이론상의 차이를 마치 도덕적 결함을 지닌 무슨무슨 주의자인양 비판하는 방식의 논쟁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그레이버는 안타까워한다. 

아나키즘의 태도가 학계에 접목되어 아나키스트 결정과정과 유사하게, "통약불가능한 관점의 다양성을 조직해 낼 수 있는 이론체"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그레이버는 제안하고 있다. 

 

보통 전위라고 하면  계급 투쟁에 있어서 억압받는 다수에 앞서 사회혁명의 방향을 선도하는 급진적 지식인들을 의미한다.  

그레이버는 전위주의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원래부터 전위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전위주의는 예술의 아방가르드 운동과 함께 근대 사회이론에서 출발했다. 이때 소외되지 않는 창조적 행위 경험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런 경험이 세상을 전복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스 이래로 가장 억압받는 자들이 혁명의 주체라는 점이 더 부각되었고 전위의 성격 역시 바뀌게 되었다. 

띠우님은 소외되지 않은 자들이 전위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니 전위라는 것이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노마디스트들 같은 이들이 이 시대의 전위주의가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었다. 오늘님 또한 9장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한다.

 

보헤이아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스스로 자본주의를 이탈한 자들과 자본주의에서 가장 억압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보헤미아에서 그레이버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연대의 이미지를 상상한다.

토착민들은 가장 소외되지 않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자 억압받는 존재들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항거하는 토착민들의 투쟁에 그레이버는 주목한다.

특히 그레이버는 이런 토착민의 싸움으로 사파티스타의 투쟁을 매우 중요하게 언급한다.

2014년쯤인가 문탁 인문학 축제 때 사파티스타의 반지구화 투쟁을 공부한 적이 있다. 달팽이도 메모에 썼지만 그 때 문탁사람들도 무척 열광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기사로 접하는 일도 드물어지면서 많이 잊고 있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가 츅발한 전지구적 봉기는 지금도 곳곳에서 게릴라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파티스타는 이후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등지에서 일어났던 대중적인 직접행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직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지도자 없는 조직을 구성하는 경험을 성공적으로 해 냈으며 그 결과로 공동체를 설립하기도 했다고 그레이버는 평가한다.

요사이 우리가 참여하는 데모의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데도 이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나키즘은 "수단이 목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면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도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파티스타를 비롯한 직접행동 투쟁들이 예시적 자율공간들을 창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고 이들의 예시적 공간들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준다. 

 

유님은 공동육아를 할 때 사교육 관련 논쟁이 떠올랐다고 했다. 이미 결론은 사교육은 안 된다로 내려 놓고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의문은 살면서 많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아나키즘과  매우 비슷하다고 그레이버는 말한다. 이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며, 뚜렷하게 다수를 점하는 입장도 없다는 것이다.

세간의 통념은 다수결에 따른 결정과 대표를 뽑아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것(대의제)이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우세하다. 또한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발명된 서구전통의 것이라고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그레이버는 그것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민주적 실천을 평등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특정 문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등주의적 공동체는 인간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해 왔고 이 공동체들은 중요한 사항에 대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들은 민주적이라고 인정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투표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하는 공동체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투표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투표는 누군가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표는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모욕이나 원한, 증오를 만들어 내기에 적합한 제도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합의 과정은 수많은 수준의 비동의를 포함한다.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관점이 완전히 무시되었다고 느끼며 나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래서 집단이 나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기꺼이 수동적으로 묵인하게 되는 것이다.

문탁도 이런 직접 민주주의를 조직 원리로 채택한 공동체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의가 길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게 하게 되었다. 워크숍, 토론회와 같은 담론 형성의 장도 코로나시국을 통과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 자기 조직화의 실천에 힘을 덜 쓰고 있지 않나 돌아볼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비단 조직공간 뿐 아니라, 친구관계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와 대화를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태극기부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니키즘적 태도라면 민주적 실천의 윤리를 체화한다면,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통약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공통적인 것들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해야 할텐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그런데 메모가 누락되어 있고 기억도 나질 않는 것을 보면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나보다.

그 외에 국가와 자율성이 양립할 수 없다면 오늘의 기후생태위기 상황은 국가적 수준의 해법들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그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아나키즘적 태도를 견지할 때 억압장치로서의 국가에 대한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수긍이 갔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가 아닌 조직체계도 구성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댓글 1
  • 2023-08-02 23:41

    민주적이라는 말이 늘 양면적으로 다가와요. 독재보다 나은 시스템이라고 만족할 수 있는 체제인가... 늘 동의하지 않는 49%가 있을 수 있는.. 투표가 민주주의 전부인 것 같이 되어버리고 .. 그러다보니 민주주의라는 말에 속고 있는것 아닌가 싶어요. 독재도 싫지만 민주주의도 뭔가 한참 부족한것 같아요. 억업이 없고, 평등함을 원칙으로 .. 49%를 배제하지 않을 수 있는 .. consensus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공동체든 어떤 조직이든 자잘하고 다양한 의사결정을 하는 장면 장면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것 같습니다. 비판이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문제, 연습하면서 변주가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저는 몇 가지 삶의 도구, 거버넌스를 돕는 도구들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또 도구에 의지해버리고 둔해질 수 있어서 여러 위치에서 현실을 보는 다른 친구들의 존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보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인생은 어떨까요... 평생 운동할 맛이 날것 같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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