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잡(1장~4장)첫 시간 후기

달팽이
2023-06-05 23:17
222

‘불쉿잡’ 도대체 뭔 뜻일까?

불쉿(bullshit)은 허튼 소리, 개소리, 엿같은, 젠장, 엉터리 뭐 대략 이런 뜻을 가진 속어라 한다.

그레이버는 불쉿+잡을 유급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형태,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해야하는 의무를 느끼는 직업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의미와 필요를 누가 있다 없다 할 수 있을까 논란이 될 수 있는데 그레이버는 일을 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를 둔다.

그레이버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점점 일의 성격이 불쉿화되어간다고 말한다. 쓸모 없는 이메일 처리나 소모적인 회의, 서류작업 등등 불쉿요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쓸모없는 일들이 없다면 충분한 여가를 누리는 사회, 주 20시간 노동을 제도화할 수 있을텐데 어쩌다 우리는 일 같지 않은 일을 하는 척 하느라 회사에 붙들려 자신을 갉아먹는 사회를 만들게 되었을까?

이는 인간의 시간이 타인에게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산업혁명 이후 생겨나게 되면서부터 만들어진 사고방식 때문이다. 이때부터 빈민들은 시간규율이 없어 가난해진 것으로 여겨졌고,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시간당 임금이나 하루 여덟시간 근무 등 시간개념으로 따지게 되었다. 모두가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구매한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시간을 판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할 일이 없더라도, 무의미한 일이더라도 일하는 시간만큼은 열심히 일하는 척이라도 해야한다.

그레이버는 조사과정에서 만난 자신의 직업을 불쉿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에릭의 예는 극적이다.

어느 대형 디자인 회사의 ‘인터 페이스 관리자’로 취직한 에릭은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파트너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기 위한 임시 땜질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실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해고되고 싶어 지각, 조퇴, 결근, 음주근무 등등 온갖 짓을 했는데 회사는 파트너 간 갈등을 드러내지 않게 위해 계속 급여를 올려주며 그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 안정된 급여와 일의 의미 사이에서 고민하던 에릭은 결국 일을 그만두고 빈 주택을 점거하여 토마토를 기르며 살게 되었다는 해피인지 아닌지 살짝 헷갈리는 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스스로가 원인이 되어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인데 불쉿직업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사람을 비참함에 빠지게 한다. 더구나 자신의 일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쉿 직업에서 오는 비참함을 다른 활동을 통해 보상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대인들 대부분이 취미활동이나 여행 등에 미친 듯 에너지를 쏟거나 시들시들 우울모드로 살아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을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시간이 판매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불쉿화 되어가는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 나만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회 전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보자는 것일 듯하다.

4장까지는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답답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뒷장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쌈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찬찬히 읽으면서 우리들만의 작은 해결책들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 5
  • 2023-06-06 21:21

    불쉿잡 첫 시간이 조금은 답답했는데 천천히 읽어나가면 달라지리라는 기대로 갖고 메모 남깁니다.

    p 336 하지만 물질적 이기심과 이타적 이상주의, 즉 '가치'와 '가치들' 사이에 절대적인 방벽을 세우려는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양쪽은 언제나 서로에게 침투하는 결과를 낳았다.

    시즌 1 "천사, 유니콘과는 일할 수 없다!?"라는 에세이를 쓰며 천사와 유니콘을 믿는 사람인 초보 직원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그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생각으로 연휴가 편치 않았다.
    연휴 시작을 앞둔 금요일 아침 , 그는 톡으로 다른 직원과 왜 수당이 차이가 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난 성과에 따라 차등을 지급한 것이었지만, 그는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금요일 바쁜 일정으로 고참 직원에게 우선 물어보라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른 퇴근을 했다. 계획에 없던 월요일 출근을 하고 고참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니, MZ세대에 대한 무서움?과 이해불가함을 토로했다. (그는 고참직원에게 노동법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나는 왜 진즉 저성과자인 그를 자르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고참 직원들이 분명하게 우리 일과 맞지 않다고 했음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터지만 이타적 이상주의, '가치들'도 추구하고 싶었고 그도 물질적 이기심, '가치'도 함께 추구했을 것이다. 가치와 가치들은 서로 침투하고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건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나는 오히려 공부의 여파(?)로 불편한 상황에 직면했고 공부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 2023-06-07 04:39

    p340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그 대가로 받는 금액의 반비례 관계 - 며칠 전 어린이 도서관에서 연락을 받고 담당자를 만나 자원봉사를 해 줄 것을 요청 받았다.
    그 동안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이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로 사회 공동체에서 이로운 일이며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년을 지속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자기 만족을 위한 활동으로, 담당 행정가는 시간이 남아서 또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노동력을
    가져다 쓸 수 있는 시선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시선이 차이가 있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생각하며 요청을 수락해야 하나?
    사회적 가치를 더 많이 만들수록, 그에 대해 보수를 받을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고 하지만 이 일은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 2023-06-07 06:07

    불쉿잡 후반부 요약 올립니다

  • 2023-06-07 07:27

    메모 올려요

  • 2023-06-07 09:28

    “다른 기업들을 사들이면서 그 기업들에 무자비한 규모 축소와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빚을 떠안기는 무자비함을 자랑 삼는 임원급들…이런 임원급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직원들을 자랑스러워 한다. … 그것은 일련의 봉건적 수행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행원들은 각각 영주 같은 임원에게 업무를 보고한다.”(291)
    저자는 금융산업이 불쉿 직업 창출의 핵심 패러다임이라고 지목한다. 김종철선생님도 은행의 신용창출이 산업사회에서 많은 문제점들의 원인이라고 보았던 부분과 겹쳐지면서 다시 한번 화폐문제, 금융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일의 절반이 지워져도 전체 생산성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왜 나머지 절반의 일을 재분배해서 모든 사람이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만큼 작업을 느긋하게 배치하는 방향은? 왜 전 세계의 작업기계를 정지시키려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319)
    “미덕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 (에픽테토스, 340)
    저자는 2011년의 월가점령운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회적 가치가 높은 직업이 그 대가로 낮은 보수를 받게 되는 부당한 사태”에 있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를 “돌봄계급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미덕 자체가 보상이라는 스토아철학자의 금언이, 자본주의적 기업에서 적용되고 있는 현실은 어이없다. 이것은 현 체제가 스스로는 ‘고도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우선시 하는 체제’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전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쾌적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편하게 살도록 하는 일(그런 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일이다) 에 낮은 보수가 주어지는 것에 사람들이 (인지하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고 더 나아가 당연히 여긴다는 데 있다. 무엇이 가치있는 일이며 의미있는 노력인지 조차 전도된 주장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수학문제를 정해진 시간안에 풀어내는 능력이 제일 중요한 이상한 수학교육도 떠오른다. 그런 불쉿인 고생을 하면서 학벌을 얻었으니 당연히 높은 보수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세상이다.
    불쉿 직업 현상이 드러내 보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약탈물을 재분배하는 경영봉건주의 시스템이다, 라는 그레이버의 분석에 매우 수긍이 간다. 조폭, 마피아 소재물들(을 싫어하지만)이 인기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레이버는 이 지점에서, 서구 전통에 있어서 노동에 관한 관념과 가치에 관한 관념의 변화과정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서 고찰한다.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가장 합리적인 해법인 보편적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근거 아닐까 싶었다.
    “대개의 경우 일은 사물을 관리 유지하고 재배치하는 문제다. …… 커피잔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그것을 한 번 ‘생산’한다. 그리고 천 번은 더 ‘씻는다’. …… 우리가 생각하는 ‘생산’ 개념, 그리고 일이 그 ‘생산성’에 따라 규정된다는 가정이 본질적으로 신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대-기독교의 신은 무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이런 생각 자체가 좀 특이하다. 대부분의 신은 기존의 재료를 써서 작업하니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돌봄을 무시해왔는지생산이 가장 가치있다는 생각에서 전환하게 해주는 좋은 구절이었다. 새로 생산하지 않고 잘 돌보고 오래동안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데 생산지상주의에 매몰되어온 그 기원이 기독교 신학의 전통에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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