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즌 5회차 <허니랜드> 후기 "당신에게 필요하듯 나에게도 필요해요"

뚜버기
2022-11-20 18:59
565

5회차 일정은 다큐 영화 <허니랜드> 보기였다. 모처럼 읽기 숙제도, 밑줄메모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모였다. 처음엔 가볍게 수다를 떨면서 보기 시작한 영상이었지만 어느새 주인공 아티제의 일상 속으로 조용히 빠져 들었다.

다큐review]허니랜드, 여인의 소박한 일생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티제가 벌집을 열고 꿀을 채취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연기를 피우기는 하지만 그가 벌을 대하는 태도에는 '존중'이 담겨있다.  세심한 손길로 교감하며 때로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벌은 아티제에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티제의 태도는 이웃인 후세인의 양봉과 대비되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후세인에게 벌은 그저 수단이고 대상이다.  어떻게든 더 많은 꿀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절대로 벌집에서 꿀을 반 이상 채취해서는 안 된다”는 아티제의 충고를 무시하고 만다. 그 여파는 아티제의 양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후세인 가족의 생활에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가하게 된다. 벌들이 떼죽음 당하고 소들이 원인모를 전염병으로 차례차례 죽어갔다. 

 

후세인과 그의 식구들이 소를 대하는 모습도 좀 심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큐를 보는 동안 아티제에게 감정이입되어 후세인을 비난하게 되지만, 그의 행동은 호모이코노미쿠스로서는 평범하다. 그를 부추기는 양봉업자에 비하면 순박할 정도다. 자연이 자원이되고 가축과 벌은 식량 이나 노동력으로서만 취급되는 일은 오늘날 흔한 일 아닌가.  

 

갑작스런 벌들의 죽음에 아티제가 수심에 잠겼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벌들을 위한 꿀을 절반 남기지 않은 후세인을 질타하는 아티제에게 후세인은 자신의 삶의 고단함을 호소한다. 그런 그에게 아티제는 말한다.

“당신에게 필요하듯 나에게도 필요해요.”

다큐review]허니랜드, 여인의 소박한 일생

나에게 필요하듯 더 낮은 곳에 있는 여러 생명들에게 필요하다. 어제보다 더 편리하고 더 풍요롭기를 바라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자연과 직접 교감하면서 사는 이들을 수심에 잠기게 할 것이다. 그들을 생존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아티제의 표정이 떠오를 것 같다. 다행히도 후세인 식구가 이사를 가면서 아티제의 일상은 회복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위기의 시대 그녀의 삶이 과연 무사할까 조마조마하다.

 

어쨌든 아티제는 다시 벌집을 되살리고 어머니와 단둘만의 고요한 생활로 돌아간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그녀. 외로워서 어떻게 살아갈까. 감정이입된 마음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어머니의 묘소를 다듬고 ‘다시’ 암벽을 올라 벌을 채취하는 그녀의 뒤엔 재키(멍멍이)가 따르고 있다. 그곳엔 벌들이 있고, 개가 있고 고양이가 있고 새들이 있고 나무가 있고 온갖 생명이 그곳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자꾸 까먹는다)  

 

<허니랜드>는 두명의 감독(타마라 코테브스카, 루보미르 스테파노브)이 2015년부터 3년간 북마케도니아 브레갈니카 강 지역에서 찍은 400여시간의 필름에서 압축한 영상이다. 이야기가 드라마틱해서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다큐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사람들은 참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아티제나 후세인 가족(특히 어린이들)의 노동은 고된 것인가 아닌가, 소들이 죽은 것은 동물성 사료 때문 아니었을까 이런 이야기들도 오고갔다. 

 

<허니랜드>가 시즌 주제인 SF에 맞나?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띠우쌤 은 다음 책인 <잔류인구>의 주제와의 연결성을 고려하여 이 작품을 선정하고 요 타임에 배치했다고 한다.  행성에 혼자 남겨진 한 사람 그것도 나이든 여성을 상상하기에 앞서 보기 좋은 다큐였음은 분명하다. 

허니랜드 (2019) :: 볼 수 있는 곳

 

댓글 7
  • 2022-11-20 19:09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잊고 자꾸만 아티제와 후세인의 갈등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영화였어요. 갈등은 항상 한쪽면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제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관쪽으로 자꾸만 감정을 이입해서 편들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다시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ㅎㅎ

  • 2022-11-20 19:23

    “절대로 벌집에서 꿀을 반 이상 채취해서는 안 된다”.. 반은 그들 것, 반은 내 것.. 향모를 땋으며도 생각나고 책..지구의 절반도 생각나더라구요. 벌들은 나눔의 원리를 실천하네요. 반 이하로 가져가는 사람은 쏘지 않는..
    그리고 "어제보다 더 편리하고 더 풍요롭기를 바라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자연과 직접 교감하면서 사는 이들을 수심에 잠기게 할 것이다.".. 정말 아티제의 수심에 잠긴 얼굴이 다시 보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
    저는 돼지 새벽이 소식을 새벽이가 어렸을 때부터 전해들으면서 랜선 이모같은 친구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비건지향 실천하는데 큰 힘이 되었거든요.
    아티제같은 친구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 문득 생각했어요. 그때 그때 소식을 알고, 얼굴에 수심을 읽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친구..
    그런데 내가 얼마나 끼리 끼리 어울리는것이 편한지... 고민스럽네요. 농활을 다녀온 청년들이 생각나네요..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였고..실천은... 더 진보한 실천은.. 우리가 바라는 우리가 덜 착취하고 공평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은 샘들과 함께 계속되겠지요?

  • 2022-11-20 23:25

    하…아티제는 자본의 중심에 있는 빵집이름이기도 하네요.
    나에게도 균형을 잡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죠.
    친구 없이 혼자서는 할수 없을거 같아요.
    후기를 읽으니 날아갈뻔 했던 감상들이 돌아왔어요.
    뚜 선생님, 감사합니다.

  • 2022-11-21 07:36

    반은 내꺼
    반은 네꺼

    난 10년전까지
    왜 다 가져가지 않고 남겨둘까 의아해 했던 1인 입니다ㅠ

    이제는 알겠어요.
    같이 사는 데 필요한 법칙이라는 것을...

  • 2022-11-21 15:10

    허니랜드의 포스터가 새삼 새롭게 느껴지네요. 왠지 혼자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할까요? ㅎㅎ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저 역시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 (것처럼 보이는) 아티제가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의 '아티제'라면 그런 게 문제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닐테고... 어떤 상황이든 그녀답게 잘 풀어갈텐데 싶어요. 무한 신뢰가 드는 인물이랄까... 참 멋있어요.

  • 2022-11-22 16:22

    왓차에 신규 가입하고 허니랜드를 봤습니다.
    결석해서 돈이 나갔다는 슬픈 사실ㅠㅠ
    더 슬픈 건 아티제의 반은 네 것으로 남겨두는 모습에서 제 모습이...
    맥락은 다르지만, 지난 주말 김장체험에서 모든 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이기심이 떠올라 괴로웠어요.
    후기 올려주신 뚜버기샘 감사해요~

  • 2022-11-22 16:49

    밝고 흥겨운 아티제의 노래와 덩실거리는 춤이 먼저 이미지로 떠오르네요
    바람과 흙과 나무와 새와 고양이와 개와 꿀벌과 다정히 지내는 아티제
    그 고요함과 단단함... 배워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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