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첫시간 과제

달팽이
2022-07-0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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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엄마의 일 (달팽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로빈 윌 키머러는 딸들이 원하는 나무요새, 헛간, 연못이 있는 집을 구했다. 8000평 대지에는 송어연못이 있었는데, 부영양화로 녹색 영양염류가 가득 차 있어 제거해야만 했다. 그녀는 학교에서는 생태학을 교육하면서, 토요일 오후 아이들이 친구네 집에 놀러간 틈에는 생태학을 실천(연못청소)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녀는 진흙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진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진흙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연못 청소부는 올챙이 구조원 역할도 해야 했는데 원생동물들까지 살려낼 방법은 없었으므로 그들의 죽음이 더 큰 선에 이바지할 거라고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못가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 줄기도 잘라야 했는데 그러다 아메리카 솔새의 보금자리를 망가뜨릴 뻔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느라 다른 어미의 보금자리를 위태롭게 했던 것이다.

그녀는 해마다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 오후 고요한 연못에서 일했는데, 일은 끝나지 않았고 작업은 계속 되었다. 연못은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는데 그 균형은 움직이는 표적이어서 계속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균형은 수동적인 안식처가 아니라 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갈퀴질해서 긁어내는 것과 넣어주는 것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녀가 600평짜리 호수를 정화하느라 애쓰는 동안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호수 오논다가호 정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다. 자신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돌보는 법을 자녀에게 가르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딸들에게 텃밭을 일구고, 사과나무 가지 치는 법을 가르친다.

<빛의 할머니들>을 인용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을 보면 키머러가 말하려는 엄마의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부모의 보호 아래 경험을 쌓는 ‘딸의 길’을 걸어, 자신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배우는 자립의 시기를 거치고, 영적인 지식과 가치가 자녀를 위해 송두리째 요청되는 ‘어머니의 길’을 지나, 자녀보다 더 넓은 원, 즉 공동체의 안녕에 힘을 쏟는 시기를 보내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젊은 여인들의 본보기가 되고 자신과 가족, 인류 공동체를 넘어 지구를 끌어안고 대지를 보살피는 ‘선생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키머러는 연못으로부터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은 엄마의 전부가 아님을 배웠다. 뭇 생명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 때까지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새끼 개구리, 새끼 새, 아기 나무 홀씨를 돌봐야 한다.

댓글 15
  • 2022-07-05 15:38

     

    1. 4. 바침 - 모든 것에 앞서는 말, "타하와스의 신들께 바칩니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와 행위는 대부분 아빠가 호숫가에서 행한 바침으로 감싸여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감사의 말 ‘타하와스의 신들께 바칩니다’로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생태학자, 작가, 엄마, 과학지식과 토박이지식을 넘나드는 여행자로서의 그녀의 임무는 이 축문에서 자라난다. 이 축문은 우리가 누구인지 떠올리게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받은 선물과 이 선물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떠올리게 한다. 제의(의례)는 속함의 매체다. 우리가 가족에게, 부족(공동체)에게, 땅에 속해 있음을 일깨워주는.

    제의가 어디서 왔냐는 저자의 질문에 아버지의 처음 대답은 ‘그냥’이었다. 그리고 몇 주 후 다시 돌아온 대답은 ‘주둥이를 뚫으려고 하던 것이 일종의 존중, 일종의 감사’가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속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과 맺어주는 것이 제의의 힘이라고 말한다. 물은 포도주가 되고 커피는 기도가 된다. 물질과 정신은 커피 가루와 부식토처럼 섞여 마치 커피 잔에서 아침 안개 속으로 피어오르는 김처럼 변화된다. 몸에 배어들어가는 긴 시간동안 성찰의 과정이 스며든다.

    이 제의 과정 속에서 성과 속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나의 이야기로 와보자. 그냥 옳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에코프로젝트가 삶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짝퉁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괴로울지라도 ‘일종의 존중과 감사’가 이미 그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 이라는 (저자)엄마의 제의가 쉽지만 깊이있게 들려온다. 생각해보면, 나의 엄마가 지닌 삶의 태도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 2022-07-05 16:55
    1. 하늘여인 떨어지다 (노라)

     

    태초에 하늘 세상이 있었다. 하늘 세상의 구멍에서 빛기둥이 내려와 꾸러미를 안고 떨어지는 여인의 길을 밝혔다. 여인은 추락하는 자신을 받아주려고 날아오른 기러기들의 날개 짓을 느끼며 깃털에 포근하게 안긴 채 숨을 가다듬었다. 기러기들은 아비, 수달, 고니, 비버, 온갖 물고기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했고, 커다란 거북 한 마리가 여인에게 등을 내밀었다. 짐승들은 여인이 보금자리로 삼을 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도와줄지 논의했다.

    아비님과 수달님, 비버님, 철갑상어님이 나섰지만 수심과 어둠과 수압을 이겨내긴 힘들었다. 가장 약골인 사향뒤쥐님은 뛰어들었으나 주둥이를 꼭 다듬은 채 떠올랐다. 하늘여인은 주둥이 안의 진흙 한줌을 거북이 등딱지에 펴 발랐다. 여인은 짐승들의 특별한 선물에 감동받아 감사의 노래를 부른 뒤에 발로 흙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줌 흙은 점점 커지더니 온 대지가 창조되었다.

    여인이 하늘 세상 구멍에서 떨어질 때 그곳에서 자라는 생명나무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때 잡힌 것이 온갖 식물의 열매와 씨앗이 달린 가지였다. 새 땅에 그것들을 심고 가꾸니 들풀, 꽃, 나무, 약초가 온 사방에 퍼졌고, 많은 짐승이 거북 섬에 찾아와 여인과 더불어 살았다. 모든 식물 중 윙가슈크라는 향모가 대지에서 제일 먼저 자라났고 그 향기는 하늘여인의 손에 대한 감미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향모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잊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연장자들은 祭儀가 ‘기억하기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한쪽에는 뭇 생명의 행복을 위해 텃밭을 만든 하늘여인을 통해 생명의 세계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열매를 맛보려다 텃밭에서 쫒겨 났으며,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 배를 채울 수 있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하늘여인 이야기는 오대호 전역의 토착민들에게 전파되었고, ‘으뜸명령’이라 부르는 가르침이 있었다. 하늘여인의 첫 사람들은 으뜸명령을 자신들이 이해하는 대로 지키며 살았다. 첫 인간을 환대하던 시절, 대지는 새로웠다.

    하늘여인이 이곳에 왔을 때 아이를 배고 있었고, 자신이 떠나면 손자 손녀가 세상을 무려 받을 것임을 알았기에 여인은 자신의 풍요를 위해서만 일하지 않았다. 본디 이민자이던 여인이 토박이가 된 것은 호혜의 행위, 주고받음의 행위를 땅과 나눴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에서 토박이가 된다는 것은 자녀의 미래가 여기 달린 것처럼 살아가는 것, 우리의 물질적·정신적 삶이 여기 달린 것처럼 땅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늘여인이 거북 섬에 씨앗을 뿌리면서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서와 영혼의 양식을 준비했다고 상상하고 싶다. 우리에게 스승을 남겨두었다고. 식물은 우리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우리는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냐 한다.

  • 2022-07-05 18:49

    6. 유정성의 문법(새봄)
    *유정성이란? 문법적, 의미론적 자질 중의 하나로 명사가 지칭하는 대상이 생명, 의식 등을 가지고 있는 지의 여부를 말한다.(위키백과)
     
     퍼퍼위는 "버섯을 밤중에 밀어올리는 힘"으로 번역되는 데, 이 세 음절에서는 축축한 아침  숲에서 행해지는 꼼꼼한 관찰의 전 과정을, 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들은 존재의 세계, 보이지 않지만 만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에너지로 가득한 세계를 이해했다.
     영어는 체언 중심의 언어(체언이 70%)인데 반해, 포타와토미어는 용언이 70퍼센트나 된다. 그러다보니 단어의 70%를 활용해야 하고 이 중 위크웨가마(만이다)가 용언이라는 사실에 저자는 놀라워 한다. "만은 분명히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을 가리키는 체언이지 용언이 아니라고" 투덜대다가 시냅스가 번쩍하는 순간, 만의 냄새가 풍기고 물이 호안선에 부딫치는 광경이 보이고 모래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만이 체언인 것은 물이 죽었을 때 뿐이다. 하지만 용언 위크웨가마는 물을 해방시키고 생명을 선사한다. 만물이 살아있는 세상에서는 전부 용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유정성의 문법이고 포타와토미어에서는 유정성이 바위, 산, 불, 장소로까지 확장된다. 정령이 깃든 존재, 우리의 성스러운 약, 우리의 노래, 북, 심지어 이야기도 모두 유정물이다.
    포타와토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만 남았지만, 우리에게도 유정성의 언어는 사멸의 기로에 서 있다.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동식물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지칭하며 자아와 의도와 공감을 확장하지만 우리는 재빨리 재교육하여 잊어버리게 한다. 나무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풍나무를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단풍나무가 그것이면 우리는 사슬톱을 들이댈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가 그녀라면 한번 더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유정성의 문법은 세상을 살아가는 전혀 새로운 밥법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종을 주권자로 대우하고 하나의 독재가 아니라 종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상, 물과 늑대에게 도덕적 책무를 지는 세상, 다른 종의 처지를 고려하는 법률 체계를 가진 세상 말이다.
    이 장소에 토박이가 되려면, 이곳에서 우리와 이웃들이 살아남으려면, 유정성의 문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이곳에 진정으로 뿌리내릴 수 있다.

  • 2022-07-05 20:39

    14. 위스가크 고크 페나겐 – 검은 물푸레나무 바구니 (사이)

     

    존 피전은 포타와토미 바구니 장인이고, 오랜 세대에 걸쳐 전해진 것을 나누는 일에 힘쓴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살아 있는 나무에서 시작되는 바구니 ‘만들기’다. 바구니 만들기에 이상적인 검은물푸레나무는 가지가 곧고 말끔하며 줄기 아래쪽에 가지가 없어야 한다. 가지가 있으면 옹이가 생겨 나무끈은 곧은 결이 중간에서 끊어진다.

    사람이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듯 나무도 어린나무 시절의 영향을 받는다. 물론 나무의 역사는 나이테에 기록되어 있다. 나이테 무늬는 바구니 만들기에서 중요한 요소다. 나무테는 봄이 가고 영양소와 물이 희소해지며 굶주린 시기를 대비하여 죽고 두꺼운 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이를 추재라고 하고, 봄이 다가오면 큰 춘재 세포를 만든다. 지난해 만들어진 작은 추재에서 봄의 춘재로 갑작스럽게 전환하면서 선이 생기는 것이 바로 나이테이다. 존은 이런 것들을 알아보도록 눈을 훈련했다. 안성 맞춤인 나무를 발견하면 벌목의 톱이 아닌 대화를 한다. 전통적인 벌목꾼은 나무 한 그루의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숲사람으로 여긴다. 나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게 부탁한다. 공손하게 자신의 목적을 설명하고 벌목 허가를 청한다.

    존은 나무테 무늬를 벗겨내면서 나무의 삶이 그의 손에서 한 겹 한 겹 벗겨진다. 나무끈을 쪼개기 위해 절단기를 다리 사이에 꽉 끼워야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초보자들이 자른 나무끈은 일정하기 짤리지 않아 바구니에 사용할 수 없다. 땅에 쌓여있는 망가진 나무끈을 보면서 존은 나무의 한 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 아직 배우는 중이니깐 나무끈을 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나무에게 존경심을 품고 나무끈을 허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일부 지역에서 바구니 장인들이 검은물풀레나무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원인은 남벌이 아니라 과벌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바구니 장인들이 숲에 많으면 햇빛이 아기 나무에 도달하도록 틈을 열어주어서 어린 나무들이 숲지붕까지 뻗어 올라가 어른나무가 될 수 있었다. 검은물푸레나무는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은 검은물푸레나무에게 기댄다. 둘의 운명은 서로 이어져 있다.

    이제는 바구니 짜기이다. 바구니를 짤 때는 세줄을 짜면 비로소 안정이 잡힌다. 생태적 안녕과 자연 법칙은 언제나 첫 번째 줄이고, 두 번째 줄은 물질적 안녕, 즉 인간적 필요의 충족을 나타낸다. 하지만 두 줄만 있으면 바구니는 풀릴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줄은 존중, 호혜성, 모든 관계, 영성의 줄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무엇이든 세 줄은 우리의 삶이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집에 와서 바구니와 다양한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감정과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책상 위의 플라스틱은 재빨리 지나친다. 플라스틱에서는 성찰의 순간을 끌어내지 못하겠다.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단절이, 존경심이 상실이 시작되는 곳, 더는 사물 안에서 쉽사리 삶을 볼 수 없는 것이 이곳이니까. 초산업화된 제품들의 거대한 그물망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리는 그렇게 주의를 집중하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우리는 몸을 써야 한다. 바구니에 든 복숭아와 연필을 보면서 존의 말을 떠올린다. “서두르지 마세요. 당신이 손에 든 것은 나무의 30년 일상이라고요. 잠시만 시간을 내어 그걸로 무엇을 할지 생각할 순 없나요?”

  • 2022-07-05 21:02
    1. 12. 콩을 보며 깨닫다 (블랙커피)

    콩을 딸 때 내게 찾아왔다. 행복의 비밀이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 딸들도 농사일이 싫다고 불평이지만, 일단 시작하면 흙의 부드러움과 낮의 내음에 빠져들어 몇 시간 뒤에야 집에 돌아온다. 이 콩 바구니를 위한 씨앗은 5월에 아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땅에 심었다. 아이들이 농사짓고 거두는 것을 보면 내가 좋은 엄마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먹고사는 법을 가르쳤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선물의 소나기와 가르침의 큰 비를 쏟아붓는 수밖에

     

    텃밭을 둘러보니 이 아름다운 나무딸기, 호박, 바질, 감자 아스파라거스, 상추 케일과 비트…시금치를 우리에게 주면서 땅이 느꼈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친 진짜 이유다. 내가 떠난 뒤에도 아이들을 사랑해줄 엄마가 영원히 함께 있도록.

     

    콩을 보며 깨닫는다. 땅과 우리의 관계,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것을 받는지, 보답으로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한다. … 하지만 문득 설명과 합리화가 모두 사라졌다.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한 바구니의 순수한 감각만 남았다. 궁극적 호혜성,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 논밭, 과수원, 포도원에서는 우리가 길들인 종이 자란다. 그 결실이 입맛에 맞기에 우리는 식물을 대신하여 땅을 갈고 가지치기를 하고 관개를 하고 비료를 주고 김을 맨다. 어쩌면 식물이 우리를 길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야생 식물은 반듯하게 서도록 달라졌고 야생 인간은 들판 옆에 정착하여 식물을 돌보도록 달라졌다. 이것은 일종의 상호 길들이다. … 이것은 내 귀에는 사랑처럼 들린다.

     

    자신이 대지를 사랑함을 알면 사람이 달라진다. 대지를 지키고 보호하고 찬미하게 된다. 하지만 대지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면 그 느낌은 관계를 일방통행로에서 거룩한 인연으로 탈바꿈시킨다.

     

    사람들은 땅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추천할 만한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종종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내 답은 한결같다. “텃밭을 가꾸세요.” … 텃밭은 연결을 키우는 묘상(苗床)이자 현실적 존중을 배양하는 토양이다. … 땅 한 조각과 관계를 맺으면 그 자체가 씨앗이 된다.

  • 2022-07-05 21:12

    16. 단풍나무 네이션: 국적 취득 안내서 

    • 저자의 마을은 주유소가 하나뿐인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에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면, 단풍당의 달(Moon)이 뜨고 사람들은 당단풍나무 시럽을 구하러 단풍당 농장에 모여든다. 저자는 세금 인상에 대한 불만에 “빌어먹을 회의에나 나오라고”라며 응수하는 시의원 말에 아니시나베 세계관, 포타와토미의 상식을 활용해 상상하고 사유한다. 저자는 식량전통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생태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자신이 있는 그 곳은 단풍나무 네이션이고 이곳에서 가장 많은 인구는 단풍나무라고 생각한다. 인간만을 국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도 ‘서 있는 사람’인 것이다. 
    • 이런 저자에게 단풍나무는 훌륭한 국민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에 동참하니까. 어쩌면 동참이라는 말은 부족하다. 땔감으로 자신을 내어주고 시럽으로 기금 모금에 도움이 되고 그늘로 냉방비도 아껴주고 바람도 막아주는 등. 공동체가 굴러가도록 나름의 역할을 하고 책임을 알고, 게다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길 정도로 무언인 지도자인 것이다. 
    • 저자는 나무(사람)이 환경관리위원회에 속한 것 같다고 말한다. 24시간 공기 정화와 수실 정화 서비스를 가동한다면서. 또 역사보존회에서 도서관, 환경미화까지 모든 위원회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 가지를 동물들에게 내어주어 은신처를 주고 그 낙엽으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는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는 특히 나무가 대기 중에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생태계 서비스’가 얼마나 귀한지 주목하면서 인간 경제에서는 이 부분이 측정되지 않음을, 그 소중함을 인간들이 모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단풍나무는 끊임없이 기부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받고 있는 것인데… 이런 단풍나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단풍나무 시럽을 만드는 이들에게 질문한다. “단풍나무 네이션의 좋은 국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냐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대답을 한다. 연료로 가스 버너를 쓰지 않고 나무를 때고 싶다는 사람, 솎아낸 나무를 쓰고, 기름을 아끼고 그렇게 탄소 중립적인 선택을 한다고. 
    • 그러면서 ‘공유화폐’로서 탄소 이야기를 한다. 이 탄소의 흐름으로 보면 대기에서 딱정벌레, 균류, 통나무, 대기로 이어져 다시 나무 공동체 구성둰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교환된다고. 버려지는 것이 없는 부, 균형, 호혜성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시럽 농장에서 몸에 익힌 감각으로 그 일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질문에 ‘주어진 것을 취하고 올바르게 대하는 것’이라는 답을 내려본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주는 대로 감사하게 받는다’고 한다. 
    • 저자는 여전히 질문한다. 단풍나무 네이션의 국민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기후 모형에 따라 50년 안에 닥칠 변화가 나무들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그래서 나무 국민들이 얼마나 상심할지, 아기 나무들이 이주를 선언하지는 않을지 나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가장 너그럽고 책임감이 깊은 시민인 나무들에게 우리 정부들은 걸맞지 않고 우리가 발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빌어먹을 회의에 나오라”며..

  • 2022-07-05 21:17

    11.감사에 대한 맹세 (넝쿨)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 대지님에게 감사합니다. 당신 위를 걸을 때 우리에게 발을 떠받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태초부터 그랬듯 지금도 우리를 보살펴 주심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고 모든 존재에게 힘과 원기를 주신 세상의 모든 물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물의 힘이 폭포와 비, 안개와 개울, 강과 바다, 눈과 얼음의 여러 형태로 나타남을 압니다. 우리는 물이 아직 여기에 있으며 나머지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물이 우리의 생명에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물에게 인사와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전 세계의 많은 원주민들이 다양한 문화적 차이에도 한결같이 감사를 표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농작물들이 타들어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문탁에서는 여러 쌤들이 시간을 내어 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 농작물들에게는 쌤들이 엄청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농사를 홀로 짓고 계신 어머니의 농작물들은 다 타들어가 죽고 또 다시 심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웠다. 다행히 며칠 비가 내렸고 나는 쏟아져 내리는 비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비는 내림으로 의무를 했으니 그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지 않게 나와 주위의 모든 것에 고마움의 포옹을 표현해 봐야겠다. 감사는 땅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니…. 

  • 2022-07-05 22:04

    3. 딸기의 선물 (곰곰)

     

    ‘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라는 나의 세계관을 처음 빚어낸 것은 딸기였다. 선물은 나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짜로 온다. 내가 손짓하지 않았는데도 내게로 온다. 선물은 보상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을 제 힘으로 얻을 수 없으며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없다. 선물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런데도 선물은 내게 찾아온다. 우리가 할 일은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다. 선물은 겸손과 신비의 영역에, 우연한 선행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선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45-46)

     

    선물로 받느냐 상품으로 구입하느냐에 따라 대상의 성질이 바뀐다니 우습다…  상품으로서, 사유 재산으로서 (가게에서 산) 양말에 대한 ‘본질적’ 의무는 전혀 없다. 점원과 어떤 유대 관계도 없다. 등가교환. 하지만 할머니의 양말에선 모든 것이 달라진다. 선물은 진행형 관계를 만들어낸다. 나는 감사 편지를 쓸 것이고 소중히 간직할 것이고 할머니 오실 때 그 양말을 신을 것이며 답례로 나도 선물을 할 것이다. ‘선물이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유대관계를 확립한다는 것은 선물과 상품 교환의 결정적 차이다.” (49)

     

    선물의 본질. 선물은 이동하며 그때마다 가치가 커진다. 들판은 우리에게 딸기를 선물로 주었고 우리는 아빠에게 선물로 주었다. 많이 나눌수록 가치는 커진다. (51) 대상이 계속해서 풍요로워진다. (55) 선물경제에서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선물은 관계들을 창조한다. 선물 경제의 바탕에 놓인 화폐는 호혜성이다. 서구적 사유에서는 사유지를 ‘권리’로 이해하지만 선물 경제에서는 재산에 ‘책임’이 결부된다. (52)

     

    시장 경제에서도 ‘마치’ 생명의 세계가 선물인 것처럼 행동할 순 없을까?… 판매용 향모를 “사지 말라.” 참여 거부는 도덕적 선택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교환 관계는 우리가 그들을 공통의 선물로 나눌 것인가 사적 상품으로 팔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 선택에 많은 것이 달렸다. (56) 몇몇 사람들이 생각해낸 이야기,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다. 인간에게는 불평등을 자연에는 참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옛 이야기를 복원할 자유가 있다. 세상의 풍요와 너그러움에 감사하고 감탄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받은 선물을 똑같이 베풀라고, 세상과의 관계를 찬미하라고 요청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 (57)

  • 2022-07-05 23:11
    1. 수련의 위로 . 참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를 기억한다. ‘첫’ 젖먹이기,

    나의 가장 깊은 우물에서 길고 깊게 젖을 빨아들이던 일,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보면 채워지고 또 채워지던 우물,

    엄마와 아이의 호혜성을 기억한다. 젖먹이기와 근심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리울 것이다.

    빨래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런 표정의 직접성,

    호혜적 사랑의 경험에 쉽게 작별을 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를 먹이는 행위에 대한 묘사 중에 이렇게 섬세한 표현이 또 있을까?

    작가는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였을 때, 그리고 정성껏 밥을 차려서 아이와 함께 먹을 때

    -물론 내가 안정된 상태로- 느꼈던 그 애틋하고 뭉근한 감정에 ‘호혜적 사랑의 행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수련의 위로’편은 로빈이 그녀의 두 딸, 린든과 라킨을 (학교든 기숙사든)처음 떠나보내는

    상실에 관한 기억의 파편들로 연결된다.

    혼자가 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 그녀만의 ‘슬픔 다스리기 시스템-빨간 카약’을

    장착하고 래브라도호로 향하고 어느 새 빨간 카약은 호수의 초록 안으로 떠내려간다.

    -엉겨 붙는 식물들을 뿌리치려고 힘차게 노를 저어 마침내 깊은 물로 나왔다.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가 나의 심장만큼 공허해졌을 때 물위에서 쉬면서 눈을 감고

    슬픔이 떠다니게 내버려두었다.-

    카약에 몸을 맡긴 채 습지를 가로질러 호수로 떠내려가는 이미지는

    존 에버릿 말레이의 그림<오필리아>를 연상시켰다.

    ‘슬픔이 떠다니게 내버려두었다’는 구절 때문 이였을까?

    그리고 오필리아의 이미지는 으례히 영화<멜랑 콜리아>에서의 오마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은 후의 나의 문해적 심상은 읽기 전과는 조금 다르게 이어졌다.

    물의 흐름에 맡겨진 채 호수에 띄워진 작가는

    ‘물위의 심장들’이라고 표현된 수련이라는 수생식물을 눈앞에서 관찰하며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상호관계’를 발견하고 수련의 가르침에 위로 받는다.

    -어린 잎과 오래된 잎은 하나의 긴 숨으로 연결된다.

    들숨은 호혜적 날숨을 부르며 자신들의 근원인 공통의 뿌리를 살찌운다-

    ‘향모를 땋으며’를 읽고 흙을 만지고 토마토 잎을 따는 동안

    나에게, 습지에서 호수로 이어지는 물과 식물의 심상은

    모호하고 불안한 상실의 이미지에서 유동적이고 연결된 생명의 이미지로 조금씩 옮겨 간다.

     

     

     

  • 2022-07-06 00:07

    5. 참취와 미역취(유)

    내가 식물학자로 태어났다는 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내가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참취와 미역취가 함께 있을 때 왜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고 싶어서(67)"

    식물학자가 되기로 했지만, 지도 교수는 그건 과학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교수는 나로 하여금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아는지 의심하게 했으며 자신의 사고방식이 옳다고 주장했다... 식물을 나와 상호적 책임으로 연결된 스승이자 동반자로 여기는 경험의 자연사를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70) 하지만 나는 관계를 보고 세상을 연결하는 끈을 찾고, 합치는 성향을 타고났다.(71) 물론 참취와 미역취의 문제는 내가 정말로 알고 싶었던 문제의 한 예일 뿐이다. 내가 간절히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관계의, 연결의 구조였다.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어렴풋한 끈을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지 왜 초원의 가장 평범한 구석이 우리를 뒤흔들어 경외감에 빠지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77)

    아인슈타인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패턴은 어디서 왔을까?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69)

    그해 9월 자주색과 황금색의 짝은 호혜성을 살아냈다. 그 지혜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나머지 하나의 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 물질과 정신, 토박이 지식과 서구 과학이 서로에게 참취와 미역취가 될 수 있을까? 참취와 미역취 곁에 있으면 그 아름다움은 내게 호혜성을 요구한다. 보색이 되라고, 자신이 베푼 아름다움의 대가로 너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라고.(78)

     

  • 2022-07-06 00:25

    7. 단풍당의 달

    (저자는 어린 딸들과 단풍나무 시럽을 만든 경험을 쓰고 있다)

     

    겨울이 6개월간 이어지는 기후에서는 봄소식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법이지만, 시럽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만큼 애간장을 태운 적은 없었다. 딸들은 매일같이 "이제 시작해도 돼요?"라고 물었다.(101)

    불 옆 다져진 눈밭에서 야외용 의자를 놓고 영하의 밤 기온에 수액이 잘 끓도록 땔나무를 계속 넣어준다.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춥고 건조한 하늘의 달을 가렸다 보였다 한다.(104)

    늦겨울, 모아둔 견과가 바닥난 굶주림의 시기에 다람쥐는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설탕단풍나무의 가지를 쏠아댄다. 껍질을 벗기면 잔가지에서 수액이 스며 나오는데 이걸 마시는 것이다. ...... 우리 부족은 이 시기를 '단풍당의 달(지지바스퀘트기지스)이라 부르는데, ......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굶주림의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06)

    단풍나무는 자신이 받은 으뜸명령을 해마다 수행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돌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생존도 도모한다. 계절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한 눈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1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싹은 어엿한 잎이 되기를 갈망하기에 식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눈은 봄을 감지하면 줄기를 따라 뿌리에 호르몬 신호를 보낸다.(107)

    우리 딸들은 단풍당 채취 모험을 떠올릴 때면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댄다. "그때 너무 힘들었어." 딸들은 땔감으로 쓸 가지를 끌고 오던 일, 무거운 들통을 나르다 겉옷에 수액이 튄 일을 기억한다. 자식들을 땅과 연결시키겠다며 강제 노동을 시킨 비정한 엄마라고 나를 놀린다. 하긴 딸들은 단풍당 작업에 동원되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딸들은 나무에서 직접 수액을 받아 마시던 경이로움도 기억한다.(108)

    1800년대 중엽에는 결혼과 집들이를 축하하려고 쌍둥이 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 두 나무가 고작 3미터 떨어져 서 있는 것을 보면 부부가 손을 맞잡고 포치에 서 있는 광경이 떠오른다. 나무의 그림자는 앞쪽 포치를 길 건너 헛간과 연결하여 젊은 부부가 오갈 수 있는 응달 길을 만들어준다.

    이 집에 처음 산 사람들이 응달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

    나에게, 쌍둥이 나무의 보호 아래 신체적이고 정서적이고 영적인 유대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 이름 모를 존재인 나에게 남겨진 그 사람들과 이 나무들에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얼마나 큰가. 나는 그들에게 되갚을 길이 없다.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은 내가 갚을 능력보다 훨씬 크다. ......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들과 미래를 위해, 이곳에서 살아갈 다음번 이름 모를 이들을 위해 또 다른 선물을 남기는 것뿐이다.(109~110)

     

  • 2022-07-06 02:52

    15. 미슈코스 케노마그웬: 풀의 가르침

     

    "과학과 전통 지식이 서로 다른 질문을 하고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할지는 모르지만 식물에 진정으로 귀 기울인다면 둘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바구니 장인들은 많은 향모가 원래 서식지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수확하는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닌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의 가르침은 매우 효과적이에요. 유용하지 않았다면 전수되지 못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에요. '식물을 섬기며 이용하면 우리 곁에 머물며 번성할 테지만 무시하면 떠날 것이란다. 존경심을 품지 않으면 우리를 떠날 거야.' "  

    저자와 로리는 이러한 토박이 지식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토박이 지식의 타당성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그들은 "식물 수확이 개체군에 피해를 입힌다"는 이론과 달리 피해는 수확을 한 곳이 아니라 수확을 안 한 곳에서 발생함을 입증했다. 조상들로부터 들어온 식물의 가르침 즉  '수확의 자극 효과'를  과학의 숭배자들에게 그들의 언어와 메커니즘으로 설득력 있게 논증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향모는 적당히 수확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향모보다 번성한다."
       방목학에 따르면 "많은 풀은 ’보상 생장‘이라는 생리학적 변화를 겪는데, 이는 잎을 잃으면 재빨리 더 자라서 손실을 보충하는 현상이다.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버팔로 무리가 초원에서 신선한 풀들을 뜯어 먹으면 풀은 실제로 이에 반응하여 더 빨리 자란다. 이는 풀이 회복하는 데 이롭지만, 버팔로가 다음에 다시 먹이를 찾아 돌아오도록 초대하는 셈이기도 하다. 심지어 풀을 뜯는 버팔로의 침에서 풀의 생장을 자극하는 효소가 발견되기도 했다. 버팔로의 똥이 비료가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풀은 버팔로에게 베풀과 버팔로는 풀에게 베푼다. 이 시스템은 균형이 잘 잡혀 있지만 그러려면 버팔로 무리가 풀을 섬기며 이용해야 한다. 방목 버팔로는 풀을 뜯은 뒤에 이동하는데, 같은 장소에는 몇 달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절반 이상 취하지 말고 싹쓸이하지 말라는 규칙을 지킨다"고 한다.
     

       토박이 지식인들은  “절대로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며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이 취하여 식물이 다시 나눠줄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할 수 있음을, “식물을 섬기며 애용하면 우리 곁에 머물며 번성할 테지만, 무시하면 떠날 것” 임을 가르쳤다. 이는 '전통이 죽고 관계가 시들도록 내버려두면 땅은 고통을 겪는다'는 호된 경험과 과거의 실수에서 얻은 전통 지식의 결과물들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세계관이 낳은 산물이다. 순수한 객관성을 내세우는 과학자도 예외가 아니다. 향모에 대한 그들의 예측은 서구 과학의 세계관에 부합했다. 인간을 ’자연‘ 바깥에 놓고 인간과 다른 종의 상호 관계를 대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계관 말이다. 그들은 점점 줄어드는 종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고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풀밭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향모에 대해서 만큼은 인간이 시스템의 일부, 필수적인 일부라고...

  • 2022-07-06 06:34

    받드는 거둠

    생명과 생명의 교환을 주관하는 원칙과 실천에 대한 토착 계율을 뭉뚱그려 받드는 거둠(honarable harvest)이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취함을 주관하고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를 빚고 우리의 소비 욕구에 고삐를 죄는 규칙이다.

     

    하지만 정착민을 놀라게 한 사실은 또 있었다. "야만인들은 쌀을 모조리 거두기 전에 일찌감치 수확을 중단했다. 줄풀 수확은 감사의 제의와 간구하는 기도록 시작된다.그들은 땅거미가 질때까지 수확할텐데 낟알을 거두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도 많다. ..정착민들은 땅을 보살피는 원주민들의 관습이 자기네가 목격한 풍요의 원일 수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네 그렇게 하면 쌀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겨두는 것은 낭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쌀을 전부 가져가버리면 오리가 이곳에 찾아 올까요?" 우리의 가르침은 결코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받드는 거둠은 우리에게 광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취하지 말라' 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가르침과 본보기를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하지말라'의 목록이 아니라 '하라'의 목록이다. 받들어 거둔 음식을 먹으라. 한 숟가락에 감사하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이용하라. 주어진 것만 취하라. 어머니 대지님의 선물인 공기, 물 바위, 흙, 화석연료를 취하는 데도 지침이 된다...그렇다고 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주어진 것만 받들며 취하라는 뜻이다. 바람, 태양, 파도, 대지. 재생 가능 에너지원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터기에서 미국으로 유학온 학생이 와서 겪은 가장 큰 문화은 언어나 기술이 아니라 쓰레기였다고 한다. "구내식당에 가서 사람들이 음식 대하는 걸 보면 구역질이 났어요. 사람들이 점심 한끼 먹고 내다버린 음식만 해도 저희 마을 며칠간 먹을수 있을걸요.  쌀알에 입맞추는걸 누가 이해할수 있겠어요?"

     

    받드는 거둠은 받았으면 그 대가로 돌려주라고 말한다. 호혜성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이들을 먹여 살리는 어떤 가치를 대가로 내어줌으로써, 생명을 취한다는 것으 도덕적 긴장을 해소하는 데 이바지한다. 우리의 책무중 하나는 인간을 넘어선 세상과 호혜적 관계를 맺는 방법으 찾는 것이다.

    =>작년에 인류학을 배웠지요. <증여론>을 비롯해서 몇가지 책들. 가장 마지막에 읽은 책이 <숲은 생각한다>였어요. 인간을 넘어서는 인류학책이라고 하는데, <향모..>가 그 책이랑 정말 어울리는 책이네요.

     

    필요한 것만 취하고, 취하는 것의 대가로 내주어야 하고, 자신을 돌보는 세상을 돌보고, 우듬지 구멍에서 젖을 먹이는 어미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는 삶을 방식을 상상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황무지가 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배워야 한다.

    우리는 화폐를 호혜성의 간접적인 수단으로 쓸 쑤 있다. 과소비가 우리의 안녕을 모든 차원에서 위협하는 이 시대에는 받드는 거뭉의 원칙이 거대한 울림을 준다. 나는..받들지 않는 거둠에 공모하는 나는 과연 책임으로 부터 자유로운가?

     

  • 2022-07-06 07:45

    향모 밑줄발제 합본

  • 2022-07-06 08:20
    1. 피칸회의 (뚜버기)

    미 연방정부가 원주민부족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폈던 정책 가운데 토지의 사적 소유가 즉효였음은 <<거대한 전환>>에서도 잘 보여준 바가 있다. 키머러는 포타와토미 부족이 겪은 디아스포라와 피칸 숲의 물량공세 열매맺기를 대비시켜 “만물은 함께 번영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피칸(피칸히커리나무 열매를 일컫는 아메리카 원주민 토박이말에서 영어로 유입된 낱말)은 보관이 쉽고 열량과 비타민이 가득 차 있어서 원주민들에게도 다람쥐들에게도 요긴한 겨울 식량이었다. 피칸들은 호경기와 불경기가 순환하는 물량공세 열매맺기의 방식으로 번식한다.

     

    “한 그루가 열매를 맺으면 나머지도 모두 열매를 맺는다. 독불장군은 하나도 없다. 작은숲의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작은 숲 전체가, 큰숲의 작은숲 하나가 아니라 모든 작은숲, 카운티 전체와 주 전체가 한꺼번에 번식한다.”(33)

     

    피칸숲이 베푸는 풍요의 선물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포식자 포식시키기 즉, 다람쥐와 인간의 배를 불리는 것은 자신의 생존의 도모하는 것이다. 물량공세 열매맺기 유전자는 진화의 조류를 따라 다음 세대로 흘러가지만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유전자는 진화의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강제이주와 기숙학교라는 분리정책을 겪으면서도 땅을 통해 되살아났다. 땅은 조상과의 연결이고 약이고 도서관이고 모든 것의 원천이었다. 고향이든 새로 강요된 땅이든 공동 소유의 땅은 사람들에게 힘을, 싸워서 지켜야 할 무언가를 선사했다. 위협을 느낀 연방정부는 법이 보장하는 개인소유토지와 시민권을 제안했다. 사적소유로 전환된 토지는 세대도 채 지나지 않아 대부분 정착민 손으로 넘아가버렸다.

    피칸나무와 그 일족은 일사불란한 행동의 역량을, 개별 나무를 초월하는 단일한 목표의 힘을 보여준다. 어떻게 주 전체의 피간들이 이런 통일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원주민들은 나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고 믿어왔다. 사실 그렇다. 나무들은 페로몬을 통해 소통하며 나무뿌리에 서식하는 균근의 지하 그물망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균류로 연결된 나무들은 모두가 하나인 것처럼 행동한다. 뭉치면 산다.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다. 흙, 균류, 나무, 다람쥐, 소년. 모두가 호혜성의 수혜자다. (......) 생명이 생명을 만드는 순환, 곧 호혜성의 사슬 속에서 우리가 선물을 받는 것은 자연에 유익이 된다. ‘받드는 거둠’의 수칙에 따라 사는 것, 즉 주어진 것만을 취하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선물에 감사하고 선물에 보답하는 것은 피칸 숲에서는 쉬운 일이다. 우리는 선물을 받은 대가로 숲을 돌보고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고 새 숲이 프레리에 그늘을 드리우고, 다람쥐를 먹이도록 씨앗을 심는다.”(40~41쪽)

     

    포타와토미 아홉 부족은 해마다 며칠씩 다시 모여 소속감을 다지는 ‘포타와토미 네이션 회합’을 연다. 회합은 강제이주와 할당과 기숙학교라는 분리정책에 대한 해독제이자, 부족민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균근 그물망이다. 피칸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번영은 상호적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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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필사-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2)
느티나무 | 2022.06.14 |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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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필사 (2)
띠우 | 2022.06.13 |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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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
<애니멀> 감상 후기 (4)
겨울 | 2022.06.11 | 조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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