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대신 'SF' 클래식, 첫 번째 시간 후기

명식
2023-03-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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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상과학이 아닌 SF 세미나,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호면님, 라니님, 모닝빵님, 초희님에 저까지. 총 다섯 명이서 단출하게 시작한 첫 모임이었는데요. 우선 첫 시간인 만큼 간단한 자기소개와 SF 작품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SF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않으신 분도 계셨는가 하면 다소 오래 전에 몇몇 작품을 읽으신 분도 계셨고, 또 테드창 같은 비교적 최근의 SF 작가 작품을 읽어보신 분도 계셨어요. 그러나 저를 포함해 모두 고전 SF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경험이 없으셨지요. 덕분에 이번 세미나를 스포일러(?) 없이 좀 더 흥미진진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SF 장르에 대한 몇 가지 포인트들을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이동신 씨의 저서 『SF, 시대정신이 되다』를 바탕으로 하여 SF 장르의 특징과 주요 개념들을 확인하여 보았습니다. 그를 위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죠. “과연 <도라에몽>은 SF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저희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일단 위의 책에 따르면 SF 장르의 작품이란 다음과 같은 정의를 갖습니다.

  “과학기술적인 요소가 내용 전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가 주인공인 작품, 과학기술적 발명품이 사건의 단초나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작품,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폐해로 구성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등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작품에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SF인가 아닌가를 구분한다.”

  <도라에몽>은 미래에서 온 로봇 도라에몽이 미래의 발명품을 주인공 진구에게 건네주어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과학기술적 발명품이 사건의 단초나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작품’에 해당할 것이고, 따라서 SF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SF의 특징들을 더 살펴보자면, SF 작품은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문화장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령 SF와 혼동되곤 하는 판타지 장르에서는 ‘낯선 것’이 나타나도 그것이 곧 자연스레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는데, 때문에 이는 판타지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판타지에서는 ‘낯선 것’이 ‘익숙한 것’에 우선하죠.

  그에 비해 SF는 ‘현실의 기반을 둔 상상의 세계’입니다. 때문에 낯선 것이 나타나도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낯선 것들을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그것이 진짜인지, 왜 존재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해야 하는 겁니다. 때문에 SF에서는 ‘낯선 것’ 만큼이나 ‘익숙한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SF의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인 ‘노붐’과 ‘외삽’이 등장합니다. 노붐Novum이란 “인지적 혁신으로서, 어떤 새로운 것이지만 단순히 신기한 것 정도가 아니라 그 하나 때문에 세계관과 우주관이 다 바뀔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는 새로운 것”을 뜻하죠. 한편 외삽Extrapolation이란 “현재의 실재를 논리적 투사나 확장을 통해 허구적 노붐으로 만드는 것”, 다시 말해,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데 과연 그것을 더 이어가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세미나에서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살펴보며 이 노붐과 외삽을 이해했는데요. 의수나 의족을 만드는 ‘의체기술’이라는 과학적 소재, 현재에도 존재하는 이 실재를 계속해서 밀어붙임으로써 어떤 상상력이 나오는가를 보았죠. 손이나 발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면 온몸이나 뇌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온몸과 뇌를 기계로 대체한다면 그건 과연 나라는 원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외삽’을 밀고 가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뒤흔들리는 ‘노붐’에 이르는 것처럼요.

  물론, 세미나에서 호면님이 지적하셨듯 모든 SF 작품들이 이런 외삽과 노붐의 요소를 갖지는 않습니다. SF 장르는 방대하여 스타워즈와 같은, 일종의 서부극이나 고전신화 구조에 단지 우주 배경을 덧씌웠을 뿐인 작품들도 있으니까요. 허나 외삽과 노붐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앞으로 저희가 읽을 SF 작품들에서 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음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는, 고전 SF 영화 <가타카>의 초반 20분을 함께 시청하고 여기에 외삽과 노붐의 개념을 고려하여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가타카>는 태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가장 완벽한 아이들을 탄생시켜 그것이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는 미래를 다루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태아 단계에서 장애 가능성을 미리 알아내어 낙태할 수 있는 현재를 생각할 때 이와 같은 미래가 더 이상 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고요. 라니님께서는 저런 식으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좋은 유전 정보’만 나긴다고 할 때, 사실 그 ‘좋음’의 기준이 대단히 불안정하고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오래 전에 <가타카>를 보셨다는 모닝빵님은 영화에선 가장 좋은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상위 계급을 형성하지만 머지않아 그들 사이에도 다시 분열이 일어날 것이며 또 다른 계급이 형성될 위험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셨고요. 초희님 역시 그와 같은 위험들에 대하여 짚어주시면서 첫 시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첫 번째 세미나였던 것 같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활발하고 열성적으로 의견을 밝혀주셨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에 읽을 작품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도 이와 같은 열기가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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