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철학 시즌1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아홉 번째 후기

겨울
2022-05-08 23:41
286

다들 이번이 마지막 시간인 줄 알았던 아홉 번째 낭독철학 시간. 한 번 더 남았다면서 웃으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시험 기간 동안 못 나오던 임정훈님이 축제 현장에서 참석했구요. 코로나로 3년 만에 열린 축제인데...참 장하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지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천주교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저이지만 왠지 천당과 지옥을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죽은 후 흩어지는 원자들이란 설명은 자연히 수긍이 갔고, 특히 숨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제 경험으로도 확실히 그러했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집 마당냥이가 죽을 때 후우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갔습니다. 그리고 친정엄마. 한밤중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간호사들이 의식을 되돌리려 애썼지만 안 되자 내려온 의사에게 연명치료를 안 하겠다고 말한 후, 호옥, 하고 숨을 내쉬고 가셨지요.

이번 시간에는 주로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징벌 등을 다루는 내용들을 읽었는데, 반복되는 필멸자여,를 듣다 보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모르는 세계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더 살고 싶은데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그냥 무지는 공포다, 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4장으로 넘어가서, 다시 내용이 어려워졌습니다. 철알못, 과알못인 저는 알 듯 모를 듯한 내용들을 들으며 유독 앞뒤가 안 맞는 말들에서만 걸리곤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과학적이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더군요. 영상과 시각에 대한 말들 중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만, 일관되게 진지하게 관찰한 것들을 펼쳐놓는 자세는 실로 과학적이었습니다. 남현주님이 열정적으로 이 글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주셨고, 튜터인 정군샘이 내용으로만 보자면 ‘전설의 고향’ 같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 금기시되었던 유일신을 부정하고 창조가 아닌 사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 사물의 본성을 탐구했던 성과들은 면면히 이어져 스피노자, 베르그송 등 철학사의 계보에서 보자면 마이너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고 한 말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이들의 철학이 희망이 되고 있다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밖에도 과거의 철학자들은 수학자요 과학자였다는 얘기도 있었고...흥미진진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충해주시길 기대하면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덧이붙이는 말: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 중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는 말을 하신 분이 계시네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읽은 걸까요?

하나 더.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언급된 <1417년, 근대의 탄생>을 읽을 책으로 메모해놓았더군요.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는데...이렇게 메모만 해놓은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지만, 이 책은 꼭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ㅎ

댓글 5
  • 2022-05-09 02:31

     또 사방에 밤의 엄혹한 정적이 깔렸을 때에,

    소리들을 듣는 듯 보인다. 또 침묵하면서도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밖에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을 우리는 놀랍도록 많이 본다. 

    그 모두가, 말하자면 감각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보려는 것들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 덧붙이는 의견들 때문에 잘못되는 것이니 말이다,

    감각에 의해 관찰되지 않은 것을 관찰된 것으로 여김으로써.

    왜냐하면 명백한 것들을, 정신이 즉석에서 스스로 덧붙이는바

    불확실한 것들로부터 분간해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저는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고 믿는 감각들은  대부분 우리의 정신이 덧붙인 것으로 

    이 불확실한 것들을 명백한 것들과 구분하는 것은 것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실재는 없는 것 아니 알 수 없는 것이 되겠지요. 

    결국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원자로 구성된 것으로서의 실체일 뿐이라는 말인 듯

    그러니 무엇을 확신하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고집한 다는 것이 다 허상 혹은 망상이라는 말? 일까요?

  • 2022-05-09 15:11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이제 좀 가까워진것 같은데 이번주가 마지막이라니… 

    쉬는 동안 정군님이 소개해준 책은 꼬옥! 읽어보고 싶네요~ 

  • 2022-05-09 16:11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를 알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연관되는 글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어떻게 살아 남아 지금의 우리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는지 과정을 조금 알게 되니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철학책이라 하고 과학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고 관찰한 것을 묘사함에는 시적인 것이 있고 형이상학적인 설명에선 여전히 뭔말인지 헤메고 있지만 현대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묘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감각을 믿을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모든 추론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즉시 붕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에 대한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입니다~~

  • 2022-05-10 15:59

    저는 세미나가 끝나고 '과학'에 관한 생각,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적'이라는 관념에 관해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미나 때도 말한 것처럼 과거에 적혀진 어떤 사실에 대한 기술을 두고서 그것의 옳음/그름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현상을 일관된 체계 안에서 설명하려는 태도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모든 것이 '과학적'인 건 또 아닐 겁니다. 종교도, 도덕도, 철학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그러면 도대체 '과학적'인 건 어떤 것인가, 아마 앞서 말한 다른 것들과 가장 다른 점은, '과학적'이려면 반복 가능해야 하고, (비약이 없다는 의미에서) 연속적이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 방법'에 따라 뒤집히는 것도 가능해야 할테고요. 그런 점에서 원자론은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과학적 태도'의 '전설의 고향' 같은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읽고 있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관찰들, 관찰에 따른 추론 등등을 보면 이 텍스트가 어째서 '근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지점은 그 모든 '과학적 태도'가 '공포'와 맞서기 위해 취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피노자가 '인식하라'고 말할 때, 거기서 우리는 루크레티우스의 영향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태가 '어떻게' '발생'하는 지 알면 두렵지 않다는 것이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텍스트임에 분명합니다. 다음에 언젠가 또 <낭독철학>에서 다시 읽는다면 이번에 읽은 것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아예 꼼꼼하게 읽는 세미나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고...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아쉬움과 동시에 오예(!)하는 마음이 비등비등하군요. ㅎㅎㅎ

  • 2022-05-10 19:35

    겨울샘의 후기와 샘들의 댓글을 찬찬히 읽으며 역시 지난 시간이  잘 된(?) 세미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관되게 철알못인 제가 뭔가 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공부에 무턱대고 욕심을 내서(여러 수업을 신청하는 바람에) 낭독철학을 그냥 흘러보냈나 했더니, 다른 숙제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수고하신 정군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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