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독]이렇게 재미있는 영어읽기라니(8회차)

여울아
2023-03-08 23:49
879

이렇게 재미있는 영어책 읽기 세미나는 몇 년간 문탁 어딘가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땐 파지스쿨 청년들과 세익스피어를, 어느 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그리고 올해는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두 세달의 짧은 만남일 줄 알았는데, 

토토로님과 프리다님이 힘을 내어 지금 읽고 있는 <Dubliners>를 마저 읽고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젊은 예술가의 초상>... 으로 달려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방학동안의 일탈을 마치고, 과학과 제자백가 세미나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4월부터 영어세미나는 이렇게나 재미있는 제임스 조이스와의 더블린 여정을 계속합니다. 

장소는 파지사유, 화요일 오전 10시 예정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추후 공지사항 참조해주세요)

 

오늘은 <The Dead>의 끝부분을 다 읽었고, <Eveline>까지 마쳤습니다. 

단편소설의 스토리도 분위기도 주인공의 성별조자 너무나 다른데 이 두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눈"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the dead의 주인공 가브리엘은 아내의 첫 사랑이야기를 삐딱하게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의 "눈"은 generous tears로 가득찹니다.  아량깊은 관용의 눈물을 흘리는 가브리엘. 

자신에게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소심한 복수(어리석은 연설)라도 해야 속이 풀릴 정도로 쪼잔한 그가 방금전까지 아내에게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고백에 질투심에 사로잡힐 만도 한데, 울다 지쳐 잠든 그녀에게 오히려 전과는 다른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자신의 단단한 세계는 녹아없어져 쪼글라들고, 자신의 정체성도 사라져버렸다고 고백합니다.  

 

eveline의 주인공 이블린은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한창 연애 중인 남자를 따라 멀리 떠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막상 약속한 당일이 되어선 함께 떠나자고 내미는 남자의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하는 그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더 이상 아버지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으며, 씻고 먹이고 공부시켜야할 두 동생들(?)로부터도 해방인데 말이죠. 함께 가자고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남자가 인파에 떠밀려 승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블린의 "눈"에는 "love or farewell or recognition" 이것들 중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두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심적인 변화는 극적으로 "눈"에서 드러납니다. 

아내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 가브리엘의 눈은 눈물이 차오릅니다.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자기 삶의 방향키를 놓는 순간 이블린의 눈은 무감각해집니다. 

한 사람은 그동안의 무감각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을 맞이했고, 다른 한 사람은 무감각해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을 제임스 조이스의 해설로 풀이하자면 누군가는 마비에서 풀려났고, 누군가는 마비 상태에 빠져든 셈입니다. 

오늘 나의 눈은 어떤가요? 타인과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나요? 아니면 부당한 현실에 눈 감고 있을까요? 

이 손바닥만한 책이 아주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재미 있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도 합니다... 

 

 

댓글 3
  • 2023-03-09 10:13

    책이 재밌으니 후기도 역시 재밌습니다.
    Eveline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울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like a helpless animal 이라는 표현이요.
    도망칠 결심으로 나왔지만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난간을 잡은 두손을 떼지 못하는 이블린이 안스러워서....흑!
    근데,,,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라고 쓰려고 했던거죠? ㅋㅋㅎㅎ

    세미나 시간에 탄산수같이 톡 쏘고, 방울방울 청량감 넘치는 여울아샘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도 얼마 안남았군요. 아쉽습니다.

    • 2023-03-09 10:20

      아이구야.. 고쳤어요^^ 조이스의 소설 속 작은 설정들조차 우리의 과거와 많이 닮아 있어 공감하는 요소가 많습니다.
      프랭크가 아르헨티나까지 갈 수밖에 없던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의 고난한 삶에 대해서도 세미나시간에 같이 얘기를 했었지요.

  • 2023-03-18 01:11

    주인공들의 눈에 촛점을 맞추셨네요
    그러고 보니 The sisters 의 마지막 장면도 신부의 부릅 뜬 눈으로 끝나고,
    clay 의 마지막도 조의 차오르는 눈물로,
    Araby 의 '나'도 '... my eyes burned with anguish and anger'로 끝나네요!!!
    이제부터 인물의 눈을 집중해서 보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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