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해설서 낭독> 네 번째 후기,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우고 읽기

김윤경
2023-01-27 09:36
350

1월도 이제 다 지나가고 있네요.

<칸트 해설서 낭독> 도 벌써 네 번째 시간을 함께 했어요.

원문도 아니고 해설서 인데도 뭔 소리인지 영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그 당시 경험론과 합리론 사이의 경계를 갈라 길을 내려고 노력했다는 건 알겠어요.

어제 제가 인식의 길을 이런 식으로 내는 것에 자꾸 반감이 올라온다고 했더니

외모와 목소리 다 인자함과 너그러움이 묻어 나시는 요요님께서 우린 '포스트 모더니즘' 교육을 받아서 그런 거라고 말씀해주시네요.

아 또 저만 생각했네요. 이 거친 soul....

역사서나 철학서를 읽을 때  그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며 읽어야 하는뎅...자꾸  까먹어요. 

여튼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우고 그 당시 맥락을 이해하며 다시 칸트를 직면해 봐야겠어요..^^

어제는 10강 순수지성 개념의 연역(초판)  <대상=X와 초월적 통각>부분을 다시 읽으며 시작했어요.

저 바깥의 대상과 우리 인식에 의해 성립하는 대상=X는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대상=X는 우리의 종합적 구성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언제나 직접 경험할 수는 없는 '초월적 대상=X'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상=X은 우리의 통각과 상상력이 범주의 도움을 받아 형성한  '우리의 창작품' 인 것입니다.

이런 범주의 가능성은 '자기의식' 이라는 일관된 통일의 조건들이 따라야 하는데  이는 '통각' 이라고 합니다.

통각은 지성의 근본 기능인데 표상에 대해서 언제나 '나의 것'이라는 '나'의 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칸트는 이것을 " '나는 생각한다'는 일자(一者)"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표상들의 잡다 속에서도 나는 하나의 동일자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초월적 통각은 자기의식이고  자기의식은 하나의 통일된 의식입니다.

그 다음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객관"에 대한 부분인데요.

칸트가 말하는 객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관 바깥의 저 대상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어지는 직관의 잡다가 그 개념 안에 통합되어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위에서 설명한  대상=X와 같은 것 입니다. 

내감을 통해 직관의 잡다는 경험적으로 주어지고 이는 의식의 주관적 통일이라고 부릅니다. 

경험적인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는 동일자에 의해  주어지는 통각의 초월적 통일은 범주에 의해 통합· 형성되는 객관과 필연적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객관적 타당성을 갖습니다. 

이는 '자연'에 대한 개념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칸트는 자연을 물자체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표상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현상들은 범주의 규칙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자연에 대한 인식, 이것은 곧 현상에 대한 인식이고, 가능한 경험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현상으로 주어지지 않는 물자체, 현상 바깥의 대상은 우리의 경험 가능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은 곧 우리 인간 주관의 범주의 규칙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많은 반감과 불편함을 느꼈는데 저 밖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그냥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의 인식에 의해 현상되는 범주가 자연이라니....납득할 수 없었어요. ^^;;

여기까지 11강 순수지성 개념의 연역(재판)까지의 내용이었구요.

12강은 도식론과 판단의 원칙론 입니다.

연역론은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기 위해 선험적으로 지성의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이것이 인식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려면 개념만 있어선 안되고 그 개념을 감성에 주어지는 현상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판단력의 문제입니다. 

지성은 범주라는 개념을 소유하고 있고, 이는 규칙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규칙들(개념들)은 교육으로 보강될 수 있는데 이 규칙을 올바르게 쓰는 능력(?,판단력?)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이미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또 반감이 마구마구 올라왔는데, 칸트는 "판단력의 결여는 사람들이 본디 우둔함/천치라고 일컫는 것으로, 이러한 결함은 전혀 구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데요. (바로 전에 ⌈장애학의 도전⌋을 읽었기 때문에 이 말에 더욱 더 반감이 올라오네요. ^^;;;;;;;)

하여튼 우리가 인식을 하려면 선험적 개념(범주)의 소유와 판단력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범주(개념, 지성 부문) 와 현상(대상, 감성부분)들은 동종적이어야 하고, 범주를 현상에 적용 가능하도록 해주는 제3의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도구로 "초월적 도식(schema)"를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도상(image)과 도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시가 넘어 가고 있어도 진도를 더 나가려고 했지만 전날 과음한 저는 그만 읽고 싶어졌습니다. 

저 '한 사람'의 의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세미나원들 덕분에 마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또 죄송합니다. 저 때메 진도까지 다 읽지 못해서요. 

여기까지 일단 이해를 잘 못한 후기였습니다.

앞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사실 이것도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을 지우고 흥분하지 말고 남은 네 번의 시간을 찬찬히 읽어나가야겠어요. ㅎㅎㅎㅎㅎㅎㅎ

 

댓글 8
  • 2023-01-27 10:49

    좋은 경험 나누어 주어셔 감사합니다.
    일전에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한비자를 읽을 때, 우리의 유자(儒者)이신 ㅇㅇ 님께서 항상 이 '법가(法家)'를 비판하시는 발제문을 써오셨고, 우리는 그 때마다 일단 한비의 이야기를, 그의 시각에서 읽어 보자고 계속..... ㅎㅎㅎ

    2023년 찰학학교에서 데카르트를 만날 것인데요.
    그 동안 읽은 서양철학자 하이데거, 들뢰즈, 칸트에게서 무지하게 비판당한 그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단순삶님이 미리 경헝하시고 후기를 남겨 주시니 꼭 유념해서 읽어 보겠습니다.

    • 2023-01-27 16:11

      캬 그렇군요. 과연 편견 없이 만날 수 있을까요? 칸트에게 이런 편견은 감성적 직관일까요? 범주일까요? 아니면 상상력의 오류?

  • 2023-01-27 14:44

    공부하다보니 칸트가 감성과 지성을 설명하는 방법, 일명 ‘초월적 방법’이 의외로 포스트 구조주의적이어서 놀라고 있습니다ㅎㅎ
    이질적이고 이종적인 것을 관계맺게 해주는 상상력이라니… 그동안 겉핥기식(들뢰즈가 한 발짝 더 나가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던 그 칸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 2023-01-27 16:08

      그죠?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이라던가 역설이라던가...저는 의외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읽는데 급급하다 보니 칸트한테 여지없이 설득당하곤 합니다.

  • 2023-01-27 16:12

    단순삶님~ 빠른 후기 감사드려요~~ 아주 해부학적인 후기올습니다~~

  • 2023-01-28 15:23

    세미나시간에 질문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칸트의 '생각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의 관계와 관련해서 좀 헷갈리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렇습니다.

    칸트에게서 모든 종합과 통일의 원리를 보장하는 것은 근원적 통각으로서의 초월적 통각이라는 원리입니다.
    초월적 통각은 또한 '나는 생각(사고)한다'는 형태로 주어집니다.
    초월적 통각은 동일자로서의 '자기의식'이고 지성의 최고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통각, 지성의 근본기능, 175쪽~181쪽)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한다'는 우리의 경험에 의해 표상되는 현상(대상=X)이기 때문입니다.(185쪽에 인용된 B156참고)
    '나는 생각한다'는 나의 내감에 의해 직관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의 확실성이 말해주는 것은 오직 현상으로서의 확실성 뿐입니다.
    그러므로 칸트의 논의를 따라온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로부터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은 직관된 것이 아니라 의식된 것일 뿐이지요.
    다시 말해 '나는 생각한다'의 '나'는 표상으로서의 '나'이지 결코 존재하는 '나'가 아닙니다.
    그런데 칸트의 인식(cognition)은 1)직관에 의한 포착 2)상상력에 의한 재생 3)순수지성의 범주에 의한 인식에서 말하는 세번째 인식이고,
    그러므로 내가 나를 인식하려면 반드시 직관 질료로서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직관 질료는 없고 단지 '나는 생각한다'에서 나타난 현상으로서의 '생각하는 나'밖에 없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나의 존재'가 정의되거나 규정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가 가능해지는 역설! 이걸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칸트의 딜레마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하는 나 만으로는 인식에 이를 수 없다는 모순 혹은 역설 혹은 딜렘마.^^
    그동안 통각이 이 모든 것을 보증한다고 했는데 대체 통각을 가능케 하는 '나'는 어디에??

    이것을 들뢰즈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칸트의 코기토 사이의 단절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기억이 가물가물.. 제가 일산에 아버지 돌봄하러 와 있어서 확인할 수 없네용^^)
    이수영샘이 칸트의 주체는 분열된 주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에게서 주체는 통각의 통일적 주체이지만,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보면 뭔가 깔끔하게 정리 안되는 부분으로 빠진다, 뭐 그런 이야기?

    이 문제에 대한 이수영샘이 찾은 해결책은 '나는 생각한다'를 순수 예지적 능력으로 규정하는 이해방식도 있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188쪽 김형주의 논문인용)
    그런데 이 인용이 들어와서 저는 이 부분이 더 어려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수 예지적 능력은 지성의 차원이 아니라 이성의 차원이 되니까요. 그래서 더 헷갈리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세미나시간에 질문을 해놓고 저도 수습이 안되었는데.. 하하.. 다시 이 부분을 읽어 보아도 여전히 수습이 안되는군요.
    글로 정리하면 뭔가 정리가 될 것 같아 시작했는데.. 다시 더듬거리고 있군요. 어쩌지요?ㅠㅠ
    급수습해보자면.. 뭘 모르는지 알게 되어 기쁩니다.. 이런 말이 떠오르는군요.(헉!) 긴 댓글로 심란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 2023-01-29 16:31

      들뢰즈가 말하던 ‘분열된 주체의 현기증’이라는 아이디어는 굳이 주인을 찾자면 놀랍게도 칸트가 맞았구나..라는 확신이 짙어집니다. 아니, 들뢰즈는 칸트를 왜 이렇게 비틀어놓고 이걸 칸트래? 했던 그 생각이 깨지네요. 음.. 칸트의 주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기증은 느끼지 않을까요? 든든한 통각 범주가 있으니? 몹시 어지러운데 말이지요 ㅎ

      ”통각을 가능하게 하는 나“ 그러니까 실존하는 나는 경험의 영역에서 벗어난 대상이고 그렇기에 이것은—앞서 미리 읽어본 ‘현상계와 예지체’에서 말하는—지성적 직관으로 ‘그저 생각만 할 수 있는’ 세계, ‘지성의 한계인 예지계가 시작되는 곳’에 있다는 주장이 아닐까라고(272-3) 저는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덧붙여 저는 이것을 들뢰즈가 말한 타인-구조와 거기서 분화된 나로 이어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 2023-01-29 16:53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칸트 읽을 때 인간의 인식 구조를 파헤친다며 니 거나 내 거나 다 같은 걸로 놓고 ‘인간’에 한정해 그걸 통짜로 취급하며 보편성 운운하는 게 아는 것만 다루겠다는 겸손이냐 이것만 봐도 된다는 오만이냐 그런 생각 들곤 해요. 단순삶샘 말씀처럼 누구에게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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