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세미나 마지막 후기 -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ft 놀고 있네)

micales
2022-08-31 01:48
315

 

시작은 과학이었다. 열역학과 뇌과학 등을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양자역학으로, 그리고 그 기초이자 포괄하는 범주이 물리학으로 그 범위가 좁혀지더니 이제는 수학, 그리고 그 중에서도 미적분학이다. 아무리 처음부터 함께했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과학을 넘어서 수학, 그리고 철학까지, 이들은 현재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쌓아나가고 있다. 특히나 철학은 서로 비슷해보이는 과학과 수학과는 달리 철저히 ‘이과’적인 계열에 속한다고 인식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서로 다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각자의 방법으로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는 공통적이다. 

 

<미적분의 힘>의 저자인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마지막 3장에서 지금까지 소개했었던 미적분이 세상에서 직접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쓰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미적분은 뉴턴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미적분학은 과학 문야에서는 우리에게 갈릴레이가 꿈꿨던 자연의 책을 읽게 해주었다. 기술 분야에서는 산업 혁명과 정보 시대를 이끌었다. 철학과 정치 분야에서는 현대적인 인권과 사회, 법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 <미적분의 힘>, 373p

 

뉴턴을 논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식, f=ma 또한 미적분의 산물이다. 여기서 가속도는 물체의 속도가 변화하는 정도를 의미하며, 이는 도함수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방정식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자연의 법칙을 이 하나의 방정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뉴턴이 도출해낸 이 식은 미국이 우주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지구 궤도를 돌 때 대기권에 재진입하기 위한 궤적을 계산하는데 쓰이기도 하였다. 또 현재에도 쓰이고 있는 보잉 787기를 설계할 당시, 미적분학을 사용하여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 과학의 한 분야인 비선형 동역학에서도 미적분학은 쓰인다. 비선형 동역학을 말할 때는 항상 카오스, 그리고 결정론에 대한 이야기들도 언급되어지는데, 이는 카오스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선형성ㅇ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는 말그대로 선형적이지 않은 것, 즉 원인과 결과 사이의 비례관계가 성립하거나 전체가 부분들의 합과 같은 것이 아닌 것들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물체를 당길 때는 두 배만큼 힘을 더 주면 두 배의 거리만큼 오는 것은 원인(힘)과 결과(끈 거리) 사이의 비례관계가 성립하므로 선형적이지만, 좋아하는 음식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으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은 앞의 예와는 달리 1+1=2와 같은 관계가 아니므로 비선형적이다. 카오스는 기본적으로 비선형 동역학에서의 문제이며, 초기조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때문에, 아무리 작은 변화도 나중에는 거대한 변화로 확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과 작은 교란들 모두를 잡아내기 어렵기에 카오스는 무작위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카오스계도 어느정도까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또 카오스계 또한 질서를 따르는 것이기에, 결정론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시말해, 비결정론적 결정론이다(적어도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는).

 

이렇게 수학, 그 중에서도 미적분은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미적분학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들과 그 해결들은 실생활에서, 학문으로서의 과학에도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는 철학적인(세상은 이미 결정되었는가) 질문까지도 던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역사 속 많은 수학자들이 과학자였고, 또 동시에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지금까지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다가 과학의 역사에 발을 담그고 그에 이어 수학의 역사까지 들여다 보았을 때, 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세상을 보는 각기 다른 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어쩌면 문탁에서 접해왔던 이러한 학문들을 정리해보았을 때,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정말로 “수학”은 “숫자놀음”, “철학”은 “말장난”, 그리고 과학은 그저 ‘해석-장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수학은 정말 말그대로 숫자에 대한 놀이, 철학은 말을 가지고 하는 장난, 과학은 해석을 들고 장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접했었던 이 분야들은 해당학문들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 학문들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은 결국 일종의 ‘세상’에 대한 놀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통상적인 관념이 그러하듯이 그저 딱딱하고 지루한, 학교시험으로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마치 놀이를 할 때와 같이 호기심, 충동, 직관, 감성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 수학의 역사, 철학의 역사가 모두 그렇지 않을까. 아마 그래서 이러한 광경에는 ‘놀고 있네~’ 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래서 문탁에서 ‘놀고 자빠져 있’는 내가, 특히나 싫어했었던 수학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학문”들이 “놀이”로 변역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

 

사실 수학세미나 공지가 올라왔을 때, 제목이 ‘굿바이 재하~ 굿바이 수학~’ 이었다. 그리고 제목이 담긴 장본인인 내가 수학세미나의 마지막 후기를 쓰고 있다(아마 그래서 여울아 샘께서 후기를 나에게 남기신게 아닌가 싶다. 좋아해야 되는 건지 말아야 되는 건지….;;). 

 

먼저 그동안 과학세미나를 개설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계속해서 챙겨주신 여울아 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군다나 예정되어 있던 수학세미나 날짜를 내 개인 일정에 맞춰 앞당겨 주신 것에 대해서도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다. 그리고 과학세미나 중간에 합류하셔서 브레인 역할을 하시며, 처음에는 딴지를 걸다가 지금까지도 열심히 딴지를 걸어주고 계시는, 묵직한 말씀들을 이따금 던지시는 미르 샘, 그리고 지난 과학세미나에 들어오셔서 수학세미나까지 함께 해주시며 짧은 시간 내에 정말 몇 년을 함께한 것처럼 따듯한 말씀들과 더불어 정겹게 대해 주셨던 또 하나의 브레인 스텔라 샘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 그 외에도 마지막 시간에 참여가 어려우셨었던 눈빛바다 샘, 한스 샘, 그리고 경희 샘께도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분들을 앞으로 다른 세미나에서, 그리고 문탁에서 짤게나마 만날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다들 감사했습니다!! 방학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4
  • 2022-08-31 07:51

    재하가 나같은 수포자였다니... 세미나 끝나고 나서야 동질감 만빵으로 느껴졌습니다~~

    올 여름 잘 놀고 자빠져 있다보니 여름이 지났습니다. 수학이 이토록 반항적인 학문인지, 논리보다 감성, 충동 같은 비논리성이 어떤 도약을 가져왔는지.. 등 그 인트로에 저는 매료됐습니다. 이 정도면 내년 여름 또 다른 수학 게릴라세미나로 만나고 싶어집니다... (정규수학세미나는 참자참자... 참을인을 백번 그려보겠습니다 ㅎㅎ)

    뜨거운 여름을 같이 보내준 분들께 감사드려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재하에게는 이 여름의 기억이 힘이 되면 좋겠어요.

    재하야 너는 같이 계속 공부하고 싶은 좋은 친구야. 고마워. 

  • 2022-08-31 20:43

    재하군의 마지막 후기라니.. 서운한 마음 크지만, 앞날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요. 행운을 빕니다.^^

     

  • 2022-09-01 19:18

    와…이게 진정 17살의 글인가요.

    문탁은 재하를 얼마나 훌륭하게 이끈건가요.

    삶이 놀이일 수 있음을 벌써 눈치채버린 재하님은 정말 인생을 멋지게 한판 제대로 놀고 갈 수 있을듯

    26살 차이가 났지만 동반자였던 이황과 기대승의 관계처럼

    영국에서 많이 업그레이드 되어서 같이 재밌게 놀 수 있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 2022-09-01 19:41

    재하님의 차분하고 묵직한 질문들이 있어 함께 읽는 줄거움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질문을 하는 멋진 벗을 당분간 떠나보내게 되어 아쉽지만,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갈 날들을 지켜보며 함께 앞으로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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