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삶 세미나> 네번째 후기-바틀비를 읽을 시간

기린
2020-12-04 21:21
528
  1. 아는 만큼 보인다면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3부는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아무래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관점으로 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왜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저자는 현재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신자유주의’의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공공 부문 지출과 부자들의 세금을 삭감하고, 각종 환경 규제와 기업 규제를 철폐”(205)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토대에는 정부가 기업 활동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잔인하게 분쇄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숨겼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의 원리에 맞서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는 중도 우파적 통념”을 받아들게 됐다. 하지만 실제 신자유주의는 이윤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다만 사람들의 소득과 생계를 공격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했을 뿐이다. 2007년부터는 신용에 위기가 닥쳤고 불황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한 정보를 ‘안다면’ 현 체제, 즉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살림 체제를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알아낼 수 있을까.

 

 

2. 보이는 만큼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

 

 3부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왜일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공동체를 찾아오기에 이른 내 ‘몸’으로 느끼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처럼 조목조목 근거를 댈 수는 없었지만 “분노와 비통함”에 연루된 불안함으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 때문에 점점 더 불행했던 나의 ‘몸’ 말이다. 그리고 공동체에 와서 살게 되면서 어떤 ‘가능성’을 상상하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대부분 함정에 빠지는 기분이 들 때도 많다. 물론 저자는 이 또한 시장 원리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중도 우파의 통념에 빠진 결과라고 하겠지만. 그러다보니 3부의 질문은 때때로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세력’들에 맞서 나는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

 

 

3. 바틀비를 넘어

 

하멘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는 주인공인 ‘나’의 직원이다. 나는 “부동산 양도 증서 작성 변호사이자 부동산 권리증서 추적자이자 온갖 종류의 난해한 서류 작성자의 업무”를 주로 하는 변호사이다. 그러자니 서류를 옮겨 쓰는 필경사 업무가 늘어나면서 바틀비를 채용하게 되었다. 처음에 바틀비는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했다.” 그의 필사는 만족스러웠고 나는 점점 더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가 업무지시를 했을 때, 바틀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바틀비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의 어떤 지시들은 계속 거절했다. 나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넘는 일(바틀비 스스로 판단한)은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를 해고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순순히 쫓겨나지 않았고 밤이면 사무실로 돌아와 잠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결국 공권력을 빌어 그를 쫓아냈고, 시간이 흘러 나가 감방에서 바틀비를 다시 만났을때 그는 바틀비가 굶어서 죽은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바틀비는 어슴푸레하게 느껴졌다. 어딘가 멀리서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 하지만 공동체에서 계속 공부하면서 바틀비는 조금씩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발제를 하려고 그를 다시 읽어보았다. 통증이 좀 더 깊어진다. 그 통증만큼 뭔가 더 행동해야 할 것 같은 절실함을 느끼기도 한다. 끝까지 홀로 분투한 바틀비. 나는 그 바틀비에서 바틀비 너머를 상상해 본다. 멜빌은 1853년에 이 작품을 썼다. 나는 2020년에 살고 있다. 그 시간이 흘렀음에도 바틀비가 점점 더 구체화되는 감각, 세계가 그만큼 더 살기 고달파졌다는 의미일까. 차이는 바틀비는 혼자였다는 것. 그러나 지금 우리는 혼자이지 않은 점, 바틀비를 넘어 상상하는 지점이다. 혼자가 아니라면 바틀비가 굶어죽었다는 멜빌의 결말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과 함께라면 바틀비를 너머 뭔가 ‘다른’ 결말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결말을 서둘러 보려고 하지는 말아야지. 다만 바틀비처럼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라고 행동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안 해보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것. 그럼으로 결말은 ‘운명’에 맡기는 것. 지금은 그렇게 바틀비를 읽어야 할 시간 아닐까. 

 

 

 책과 발제문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눈 후

앞으로 남은 2회 동안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세 팀 정도로 나누어서 우유팩 재활용 과정 동영상 촬영/ 냉장고 파먹기 동영상 /동천동을 중심으로 용기내 가능한 지도 만드는 동영상 등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기로 했다.

그 동영상을 영상팀에 의뢰해 완성된 영상을 홈피를 통해 공유하는 것으로 기후 세미나 워크샵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라는 의견도 좀 더 논의해 보기로 했다.

다음 주 5회 세미나는 4부 읽고(발제 각부별로 발제 나눔) 한 시간 세미나/ 한시간 반 향후 워크샵 논의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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