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후기-벌써 마지막이라고요?
과학철학 세미나가 4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질문은 계속 되었고 과학철학을 했지만 과학과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질문과 그에 대한 토의를 나열하는 식으로 후기를 썼습니다.
"과학의 실천체계라는 말은 제가 지어낸 것인데 과학을 실행하는 어떤 특정한 행태를 가리킵니다. 실천체계는 인식활동(epistemic activity)들로 구성됩니다.(이 실천체계 개념은 쿤의 패러다임 개념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차차 더 뚜렷이 드러날 것입니다.) "장하석은 왜 실천체계가 인식활동로 구성된다고 했을까요?
인식활동이란 분석,합성,분류 등 일반적인 연구실에서의 활동수준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장하석에게 과학이란 활동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쿤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실재론을 거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은 거대담론이나 이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장하석의 과학은 앞서 타학과 실험실을 빌려 직접 100도의 끓는점을 연구한 것처럼 과학자들의 "일상적인 연구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실재론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과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하는 대신 과학자들의 활동 그 자체가 과학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진리와 활동이 과연 같은 위상인가 의문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장하석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저와 같은 개인도 과학책을 읽고 과학세미나를 하면서도 "궁금하다. 왜 이럴까?"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납니다. 이런 욕구를 무시하고 활동으로만 설명한다면, 평생을 방구석에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않으면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진리탐구에 매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기존의 과학철학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상대주의와는 거리를 두면서 이것도 진리, 저것도 진리라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은 과학이 입지를 더 넓히는데 해당되지 않을까요?
저자는 전통적이 실재론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실천체계의 설명을 보며 비트겐슈타인이 떠올랐습니다. 전기 비트겐츄타인은 언어가 개념과 사물에 대응하는 대응설을 이야기 했다면 후기에는 맥락 안에서 의미가 있는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언어가 그에 대응하는 것이 있지만 이것 또한 과학 공동체 안에서 합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무엇을 하는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과학, 철학을 만나다> 364쪽,
장하석의 실천체계는 일상적인 실험실 활동들로 구성됩니다. 그렇다면 과학과 기술의 차이는 무얼까요? 과학자가 이론가라면 기술자는 그 이론을 현실의 필요에 맞게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장하석의 과학은 기술자들의 활동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이 보편성의 확보가 주안점이라면 기술은 특정 상황에 맞게 유연해야 합니다. 장하석은 이 둘 간의 경계를 허무는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이를 근거로 다원주의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성의 포기일까요? 아니면 다원주의의 전략일까?
저자는 솜씨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솜씨는 기술, 표준화된 방법 등으로 설명 될 수 있는데 주관적이고 과학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술이 아닌 솜씨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솜씨가 어느 정도 조직화되면 기술화되고 이것을 도식화하고 체계화하는 일련의 활동을 진리 추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진리 추구보다는 과학적 태도에 대한 제안 정도로 보여집니다.
과연 다원주의가 과학의 어느 영역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대 과학의 대안으로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슨의 말처럼 현대 과학은 세분화되어 있어서 과학자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있는 현대 과학은 다시 혁명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시간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다원주의적 태도를 갖는다고 해도 여러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미 견고한 패러다임이 있는데 다원주의적 태도가 가능할까요? 이러한 의문 때문에 창의력을 언급한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일원주의적 태도로 진리 추구를 해왔는데 다원주의적 태도로 변할 수 있을까요?
과학 분야는 분열과 생성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분열되었다가 다시 만나 새로운 분야를 생성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해왔습니다.
저자는 실천체계로서의 다원주의를 유지하자는 인본주의적인 태도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시민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는 이미 정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실현 시킬지는 또 다른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과학 연구의 규모가 범국가적으로 켜졌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백신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가 생기듯 과학 발전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가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원주의가 실천될 때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과학 밖에서는 과학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한계점에 도달할 수 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이를 비판하지만 과학자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기꺼이 마주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합니다. 그런 과학자를 폄하하고 비판하는 일은 일단 멈춰야겠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다가갔다고 해도 그것이 진리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가 근사치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것을 지리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차이에 대한 개념이 정상에 대한 임의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면 그러한 기준에서 가치판단이 온다는 점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듯 한데, 과연 이것이 가치에 대한 판단일까요, 아니면 그저 사회적인 임의성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또한 이와 같은 정상의 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일까요, 아니면 가치가 아닌 사실에 기반할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사회에 유입될 때 가치에 대한 판단을 불러오는 것일까요?
가치 판단은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마땅히’, ‘본디’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보고 장애와 분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가치 판단이 내재 되어 있다고 봅니다.
독일의 경우, 못생긴 것도 취업하는데 어렵거나 그 밖에 불편함을 겪는 일을 생기게 하므로 장애의 분류에 넣어 성형을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탈모를 의료 보험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과학철학자나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경계를 정해야 실체와 대상이 정해지니 그 이후에는 그에 대한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 분야에서 분류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치판단이냐 아니냐를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가치라는 것은 적용할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람에 들어가는 병명은 사실판단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확정적으로 판단 내릴 수 없습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얽여있어 기준을 절대적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증세를 정신장애로 분류할 때 가치 판단이 아닌 놔의 어떤 부분이 진화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하는데 진화된 기능 중 무엇을 정상으로 보고 아닌 것을 병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근사치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쿤은 반실재론자로 보이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측을 한다는 것은 과학 활동이라 할지라도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에 따라 맹목적인 믿음이 될지 과학의 예측이 될지 갈리게 됩니다. 정확한 정보의 수집으로 인해 근거 있는 믿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요.
세미나를 마치며
재하... 처음 세미나를 이끄는 경험을 하면서 앞에서 이끄는 것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두 책이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지도 못하게 방대하게 확장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권의 책이 서로를 보완하는 것 같았습니다.
번개...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책이었는데 좋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는지 몰랐을텐데 알게 돼서 좋았습니다. 의외로 끝까지 재밌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다원주의는 알게 되었으나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숙경...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접한 과학이지만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좋았습니다.
김미옥... 질문하기 위해 집중해서 읽게 되니 밀도 있는 책읽기가 돼서 좋았습니다.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나침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이 위험하다. 나침반의 자침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침반이 가장 신뢰할 만 하다. 방향을 가르키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믿을만 한다.’ 과학철학 공부가 나침반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랑... 철학이 낯설었는데 평소에 과학을 하면서 생각하지 않은 분야를 생각하게 돼서 좋았습니다. 따지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생각이었는데 따지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렘... 책은 같이 읽는 것이 보람된 일입니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되는 반가운 세미나였습니다. 이 책에서 얻게 된 단어는 ‘근사’입니다. truth를 진리, 진상, 진실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우리말을 알게 된 것은 앞으로 책 읽기에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근사’한 책 잘 읽었습니다.
두루미... 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 이쯤에서 철학으로 공부를 점검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피아... 과학과 교육을 같이 공부한 저로써는 과학철학이 꼭 필요했습니다. 저는 과학은 태도이고 약속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과학철학을 공부하며 정리되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세미나가 끝난 뒤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철학은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세미나의 끝이 시작처럼 느껴지는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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