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언어> 4회차 후기

호수
2026-01-26 22:54
133

<여신의 언어> 읽기가 어느새 중반을 넘어섰어요. 1부 생명의 부여, 2부 재생과 영원한 대지(로 보기로 한 것 같아요^^)를 지나 3부 죽음과 재탄생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4부 에너지와 흐름(’Energy and Unfolding’)과 결론이 남아 있네요.

 

 

초반에 <레스피그 여신상>에 꽤 오래 머물렀는데요, 이 유물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과 김부타스의 해석이 이 책을 읽으며 목격하게 되는 여러 세계관의 충돌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연구자들은 이 상이 선사인들의 ‘야만적인 미감’을 드러낸다고 봤고, 어느 연구자들은 신석기시대에 섭취하던 특이한 음식 때문에 실제로 몸이 이런 식으로 발달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반면에 김부타스는 이것을 풍요로움과 다산성에 대한 은유라고 봅니다. 첫 번째 시각에는 선사인들의 미감이나 사고가 ‘야만적’이고 단순했으리라는 가정이 깔려 있고, 두 번째 시각은 상징적 관점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긴 여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리라는 시각입니다. 김부타스는 이 두 가지 시각에 반기를 들고 선사인들은 자연과 연결된 거대한 상징체계를 갖고 있었고 이것이 유물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이 책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고요. (앞서 김부타스는 과거의 여신 숭배를 모두 다산과 풍요의 숭배로 좁히고 그러한 여성상을 모두 ‘비너스’라고 이름 붙이는 관행을 경계하며[저자 서문, 18쪽] 다산과 풍요는 여신의 한 가지 측면일 뿐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한 가지’ 측면을 드러내는 여신상으로 배에 손을 얹은 여신상들, 그리고 쌍알을 품은 이미지의 레스피그 여신상을 들고요.) 마리야 김부타스는 이러한 상징체계로 드러나는 선사인들의 세계의 중심에는 여신이 있었다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매력적인 김부타스의 이론이 실제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으며 또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우리는 매시간 따져보게 됩니다. 레스피그 여신상에서 쌍알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 자신도 놀랍게도 저는 그래 보이더라고요 ㅎㅎ 초반에는 속으로 제가 가장 의구심이 큰 거 같아서 나름 자제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ㅎㅎ 요요샘께서 지난 시간 무덤과 자궁의 모양을 연결짓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신데 이어 이번 시간에는 올드 유럽 최고의 걸작이라는 티서의 ‘낫 또는 갈고리 또는 지팡이’를 든 남자/남신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되는 지점들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요샘이 설명해주시는 내용에서 세계관과 일종의 지적 헤게모니에서 오는 팽팽한 대립이 느껴졌습니다.

 

기존의 주류 해석과 크게 다른 또 다른 해석으로 저는 프랑스 레 트루아 프레르 동굴 벽화에서 흔히 ‘마법사’ 또는 ‘샤먼’으로 알려진 상을 김부타스는 ‘동물과 숲의 신성한 지배자’라고 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마법사’ 또는 ‘샤먼’이 ‘동물과 숲의 신성한 지배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다시 말하면 ‘동물과 숲의 신성한 지배자’라고 하면 '샤먼' 가설은 배제된다고 생각해요.) 다시 보니 김부타스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다소 신중한 표현을 쓰고 있긴 하네요. 그만큼 ‘마법사’ 또는 ‘샤먼’ 가설이 일종의 헤게모니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설득력 측면에서도 강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요샘과 동은샘이 동굴 벽화에 유독 남성 인물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들려주신 다양한 가설도 흥미로웠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은 저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네요.)

 

 

김부타스가 이 반인반수를 인간이 아닌 야성의 남신으로 본 것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해석의 경로를 열어줍니다. 동물과 숲의 신성한 지배자라는 생각은 다른 사례들처럼 여러 지역의 민담과 그리스 로마 문명 등으로 이어집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긴 연속성이 여기에서도 드러나네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판이나 크로노스스는 이러한 야성과 식생을 상징하는 남신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라고 김부타스는 설명합니다. 한때 ‘고대’라는 말만으로도 아득한 기분이 들고 ‘고대 신화’ 중 하나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초의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같은데, 고고신화학의 광대한 스케일에 들어오면 기독교적 세계관은 물론이고 그리스 로마 신화도 엄청난 변형 또는 변질을 겪은 어떤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드 유럽 신상들 중 남신/남자 상의 비중이 여신/여자 상에 비해 당연히 적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불과 2~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비중이나 중요성 면에서는 앞에서 다룬 숫양, 곰, 뱀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달까요.

 

어쨌든 자연적 생명력에 대한 숭배로서 여신 숭배의 전통이 존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그리고 과거 한때의 전통이 아니라 이후의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에도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기독교적 세계관과 질서가 단단했던 12세기 잉글랜드의 ‘초본지’(약초에 관한 책)에 “신들의 어머니”인 신성한 여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이 나왔다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고요.

 

다음 시간에는 3부 끝까지 읽고 만납니다. 🙂

댓글 6
  • 2026-01-27 07:52

    아, 쇼베동굴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이 담겼다는 반수반인상도 여성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이번 세미나에서 의도치 않게 2부 제목을 둘러싸고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가 아니라 AI의 대답도 교차확인!
    궁금한 것, 잘 모르는 것을 찾을 때는 성실하고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 2026-01-27 09:47

      다시 유심히 보니 지난 시간 술리샘 후기에서도 이 이미지를 실으셨네요. 이번 파트 읽으면서 새로 찾아보게 되어서 이전에 어떤 이미지를 어디 것으로 얘기했는지 잘 기억을 못하고 있었어요. 쇼베 동굴의 인물상은 따로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요요샘께서 얘기하신 인물이 쇼베의 종유석 그림일까요? 이건 한눈에도 V 또는 Y가 뚜렷해서 이건 아무래도 여성으로 보이네요! (https://journals.openedition.org/palethnologie/876 맨 하단) 그러게요. 많이 직접 찾아봐야겠어요. 요요샘께서 그런 교훈을 얻으셨다니 저는 더 부끄러워지네요.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어요. 🙂

      • 2026-02-01 15:19

        맞아요. 종유석에 그려진 그림. 쇼베동굴 비너스라고도 부르네요. 사자 혹은 곰과 인간이 결합된 모양이군요.^^
        확실히 여성을 나타낸 것 같아요.ㅎ

  • 2026-02-01 16:04

    1.
    20장 생명의 기둥에서는 독일 융페른위흘레에서 발견된 동굴(처녀의 동굴이라고 불렸답니다)에 관심이 갔어요.(223쪽) 저는 이 동굴에서 여자유골 서른여섯구와 남자유골 두구가 발굴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유골들은 유골들의 머리뼈가 파손되어 있어서 의도적으로 파손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석기 시대에 인신공양이 행해졌다는 이야기인데요, 김부타스가 올드유럽 문명이 평화로운 모계제 사회라고 한 것과 충돌하는 것 같아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김부타스는 이러한 인신공양이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가부장적 폭력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성스러운 폭력이라고 말했다고도 하는데요, 식인 문화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인신희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혹시 신석기 시대에 인신희생의 다른 사례를 찾아보니 독일의 에르크스하임 유적(기원전 5000년경)에서도 정교하게 살을 발라낸 수백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하는군요.

    20-2장에서 신석기 시대의 의례 흔적이 남아있는 여러 동굴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에 등장하는 동굴들은 재생의 의례를 지낸 동굴들로 소개됩니다.
    동굴과 무덤, 자궁이 재생과 관련되어 있다는 해석이 나름의 합리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좀 더 납득되는 것 같아요.

    2.
    - 같은 20장에서 '생명의 기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토기에 그려진 기둥 모양을 생명의 기둥으로 이해하는 것이 이해가 잘 되시나요? (특히 그림 352, 353, 354)
    - 1부의 그림11. 그림37, 그림46, 그림53. 그림161 등 새여신과 관련된 유물들과 2부의 그림 254, 그림 256와 3부의 그림357, 그림358이 몹시 유사합니다. 1부, 2부, 3부의 범주 분류가 엄밀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데.. 이 셋이 두부자르듯 명확하게 구별될 수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런 분류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지, 이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 올드유럽문화에서 남근의 상징적 의미가 현대인의 인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231쪽~232쪽)
    - 개가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구성요소라는 것도 재미있군요.(233쪽)

    3.
    - 21-2장에서 모래시계 형상을 여신이라고 보는 것은 왜 일까요?
    - 춤추는 모래시계 형상을 애도하는 여인으로 보는 것과 재탄생의 이미지로 보는 해석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 그림379의 토기에 그려진 모래시계를 의인화된 여신으로 볼 수 있을까요?

    4.
    22장. 유물에 새겨진 배가 재탄생을 상징한다고 했는데요, 저는 하데스로 향하는 영혼을 실어나르는 배의 이미지가 연상되었습니다. 저는 이 배 그림을 실생활에서의 항해와 연결된 묘사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5.
    23장.
    - 개구리 여신이라고 이름붙여진 상들을 출산자세로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52쪽에서 김부타스는 이것을 재탄생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 260쪽의 물고기과 인간이 합쳐진 물고기 여신 조각이 매우 흥미로운데요. 이 모양들은 모두 레펜스키비르에서 발굴된 것이군요. 찾아보니 이곳은 기원전 9500년~6000년 사이(중석기~신석기 전환 시대)의 문명으로 물가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문명이더라고요. 그것을 알고 보니 물고기가 갖는 의미가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물고기를 재생의 상징으로 본 것은 아마도 물가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 문명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6.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구석기 동굴에서는 여성이 없다고 했는데.. 아닌 경우도 있네요.
    쇼베동굴 그림(쇼베의 비너스?)이 그렇고, 24장에서 나오는 들소뿔을 든 임신한 여신, 이른바 로셀의 비너스(그림 216)도 구석기 시대 동굴의 지성소에 새겨진 것이군요. 여성이 나오면 무조건 비너스라고 하고 보는 이 작명법은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2026-02-01 20:56

    243쪽
    뱀이 구불거리는 횟수에 대해서 14-17번이라고 하면서 이게 절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세어보니 세번 구부러 진 것도 있고 19번 구부러 진 것도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시간 사방으로 놓여진 여신 동상에 대한 설명에 비해서 너무 부족해 보인다...

    249쪽
    의례용 배의 묘사는 기원전 4천년, 기원전 3천년 전의 중기 키클라데스 제도, 스칸디나비아 암각화 등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반드시 해안가가 아니라 무덤 내부에 그려져 있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과 관련된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본문에서는 뱀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통해서 생명의 재탄생의 상징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던 건... 올드 유럽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럽의 지형적 조건이 배를 상징으로 만드는데 역할을 했던 것일까? 마치 일본에서 파도 그림을 그리며 잠잠한 파도를 원했던 것처럼...

    251쪽 개구리와 출산자세
    개구리의 모습을 보니 출산사제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251쪽의 그림들이 대부분 배가 불룩해보이는게... 실제로 개구리 동상은 개구리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개구리 자세를 하고 있는 동상들이다. 이 동작 자체가 재탄새의 자세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개구리이냐, 개구리의 자세냐 개구리 문양이냐..... 이게 약간 애매해보인다... 그리고 그림 393의 설명은 무엇일까요?

    269쪽 수소와 자궁
    염소 뿔 다음으로 등장한 수소. 수소는 좀 더 직접적으로 자궁의 형상과 비교하며 자궁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한다. 염소 뿔과는 굉장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염소 뿔은 가장 앞에서 다루어 졌는데 수소 가 세 번째 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내용 중에서 일찍 죽게 된 어린이 무덤 주변에 수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수소가 자궁을 의미하고 재탄생의 사징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렇다면 자궁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었을 것을 왜 수소를 통해 자궁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 2026-02-01 21:02

    256쪽. 중세의 성이나 교회 입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음부를 둥글게 벌리는 이미지'라는 말이 기이하게 느껴져 해당 이미지를 찾아보니 참으로 놀랍네요. 꽤 흔하게 발견된다고 하는데 민간신앙 문화가 공존해 있었던 흔적으로 보아야겠다 싶습니다. 김부타스는 이 이미지를 개구리 이미지와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처럼 민간신앙으로 이어지는 많은 상징들의 뿌리를 선사시대에서 찾는 시도에서 충분히 그럼직해보인다 싶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이 되어가면서 이러한 흔적들이 차차 줄어든 것 같고요. 중세 서적의 여백을 보면 수도사들이 기이한 낙서들을 많이 남겼다고 하는데(더러는 음란하고 더러는 기괴한 이미지, 가령 엉덩이에 화살이 꽂혀 있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다든가..) 교회에 이런 이미지가 있었다니 뭔가 연결점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267쪽. becoming이 '도래'로 자주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되기'나 변형, 생성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도래'는 계절의 순환을 떠올리게 하는 것 말고는 김부타스가 말하는 재탄생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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