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566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후기-벌써 마지막이라고요?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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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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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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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 2026.02.18 | 66 |
| 565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질문들
(6)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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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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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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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2.10 | 87 |
| 564 |
<여신의 언어> 마지막 후기^^
(1)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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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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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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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 2026.02.10 | 82 |
| 563 |
<여신의 언어> 5회차 후기
(3)
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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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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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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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 2026.02.08 | 91 |
| 562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나랑, 과학철학을 만나다
(2)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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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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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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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 2026.02.08 | 118 |
| 561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3회차 질문들
(6)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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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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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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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2.03 | 102 |
| 560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혁명은 없다?
(2)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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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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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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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 2026.02.02 | 109 |
| 559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2회차 질문들
(10)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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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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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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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1.27 | 156 |
| 558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1회차 후기 - 과학적 믿음
(4)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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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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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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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1.27 | 118 |
| 557 |
<여신의 언어> 4회차 후기
(6)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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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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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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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2026.01.26 | 133 |
| 556 |
[2026년 1월 맥-잡기 세미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 메모
(13)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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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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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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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 2026.01.23 | 199 |
| 555 |
<여신의 언어> 3회차 후기
(4)
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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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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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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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리 | 2026.01.21 | 137 |

질문 1 (과학, 철학을 만나다 75쪽)
"다만 그렇게 귀납적으로 추론한 내용을 결론으로 여기지 말고, 계속 시험해야봐 할 가설로 간주하면 됩니다."
만일 과학을 가설들로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쿤이 주장한 과학적인 고집 (패러다임)을 어느 지점에서 내려놓고 포퍼의 비판적인 시선으로 돌아서야 할지에 대한 경계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것에 대한 경계는 정할 수 없는 것일까?
질문 2 (과학철학 42쪽)
"그러므로 귀납 자체가 정당화되느냐 여부를 묻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만일 스트로슨의 주장이 흄의 문제를 해소하였다면, 귀납 자체의 정당화에 대해서 묻는 것은 언어적으로 잘못된 질문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귀납법과 그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까?
질문 3 (과학철학 48쪽)
"(...)하지만 과학자들이 단순성을 추론의 지침으로 사용하면 심각한 의문이 일어난다. 우주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가?"
단순성, 즉 설명에 포함된 원인의 수가 적을수록 더 '합리적'인 듯한 느낌이 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설명/이론이 더 '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는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인이 적을수록 그 이론에 더 비중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론이 참이 되기 위해 전제하는 원인들이 참이 되어야하는 수가 적은 것뿐만이 아니라, 몇몇은 수학적 아름다움과 단순성 그 자체에도 비중을 두기도 하는 것 같다 (초끈이론이나 Theory of Everything ToE 처럼). 그렇다면 이러한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할까?
*과학철학 p.29
일반적으로 과학자는 이론이 관찰 데이터와 모순될 때마다 이론을 그냥 내버리지 않는다. 대개는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도 모순을 제거할 방법을 모색한다.
과학자가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각성의 순간이 과학자의 재량에 맡겨야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과학철학 p.34
연역추론은 전제가 참인것이 보장될 때 전제들과 결론의 관계에서 참인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전제가 참인것은 어떻게 보장될까? 상자 속의 달걀 다섯개를 먹어본 것은 귀납으로 얻게 된 전제가 아닌가?
질문 1 )
포퍼가 말하는 '정상과학과 그 위험성'면에서, 포퍼는 과학을 자유사회의 보루로 보았고 쿤의 정상과학 개념은 과학의 사회적 가치를 철저히 저버린 것이라고 반박한다. 반면 쿤은 비판적 논의를 정지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다들 의견이 분분해서 뚜렷한 패러다임이 형성되지 않으면 같은 주제를 같은 식으로 함께 연구하는 전문적 과학활동은 생겨 날 수 없다는 것이다. 쿤은 비판적 논의를 포기해야만이 과학이 생긴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51~52p과학, 철학을 만나다)
질문 2) 태양이 지금까지 날마다 떠올랐다는 사실이 내일도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귀납적 추리, 우리가 귀납에 부여하는 이 신뢰를 무엇으로 정당화할까? (39p 자연철학)
우리는 왜 비과학(유사과학)인 음모론, 미신, 종교에 빠지는가? p25
1.질문 : 과학과 철학ㅡ24p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포퍼가 즐겨 드는 사이비과학의 일례였다
요즘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이비과학과 의사과학은 어떻게 구분할수 있고 그것이 과학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과학철학ㅡ45p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 즉IBE는 단순성과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 패러다임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과학철학 P30)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변에 의하면 게임이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특징들로 이루어진 고정된 집합이 있는게 아니라, 느슨한 한 뭉치의 특징들이 있고 그 특징 가운데 대부분을 많은 게임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게임은 그 뭉치에 들어 있는 특징이 하나도 없는데도 여전히 게임일 수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별하기 위한 간단한 기준은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이란 말도 그렇고 확실성을 추구해야만 할 것 같고 심지어 확실성을 찾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분야인 과학에서조차도 우리는 과학이 무엇인지 간단히 구별할 기준은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과학이 이러니 민주주의라느니 평등이라느니, 자유 같은 말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심지어 영부인이었던 자와 총리의 부인이었던 자는 제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속에 깊이 심취했었다고 그래서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보니 과학과 무속을 구분하기가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애써 인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베르그손이 살아있었다면 아마 비난을 했을지언정 무속에 심취했었던 자들의 무속에 대해서 그들이 혹시 (신적)직관을 건드렸는지는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내리거나 말거나, 과학자가 철학적/인문적 사변을 통한 고민을 하거나 말거나 과학은 정의도 못 내린 채로 전진을 합니다. 과학자가 될 수는 없어도 과학의 과정과 함의를 주의깊게 들여다 보는게 어쩌면 우리의 생존 윤리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장하석 P89) 측정을 이야기 하는 와중에 나온 미세구조상수(fine structure constant) 이야기입니다. ' 미세구조상수 전자가 지닌 전하의 양과 플랑크 상수와 빛의 속도, 세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 값이 137.035999074분의 1입니다.' 처음 놀란 것은 저 수에 단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놀란 것은 상수라는 걸 보니 측정에 의해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미세구조를 나타내는 방정식들이 성립하는데 필요한 귀납의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찾아보니 제 생각이 얼추 들어맞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틀릴리가 없는 패러다임을 가정하고 나온 숫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미세구조상수를 좀 설명해 주실 분... 그리고 전하의 양과 플랑크 상수 그리고 빛의 속도 각각에서 미세구조상수가 다 나온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저 세가지가 짬뽕으로 엮일 때 그 와중에 나왔다는 얘긴지 좀 설명해 주실 분 계실까요?
1. (과학철학 p.42-43)
"귀납이란 세계에 관한 주장들이 정당화되느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귀납 자체가 정당화되느냐 여부를 묻는 것을 말도 안된다."
- 질문 : '귀납'은 기준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추론)방법이라고 보아야 할 듯한데, 그러면 기준이 아니라 어떤 방법이 정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을 것 같다.
2. 과학철학(p.38)
"포퍼의 논변이 지닌 약점은 명백하다. 과학의 목표는 오로지 이론을 논박하는 게 아니라 (--> 이론을 논박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이론들이 참인지(또는 참일지)를 알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 weakness of Popper’s argument is obvious. For the goal of science is not solely to refute theories, but also to determine which theories are true (or probably true)."
- 질문 (번역 문제 - 제가 잘못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어서 많이 조심스럽지만 그랬다면 수업에서 확실히 알면 되겠다 싶고, 혹시나 저처럼 이해하신 분도 있을까 싶어 올려봅니다^^)
: 책에서처럼 번역하면, 이론을 논박하는 것은 과학의 목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이해될 수 있지만,
원문에서는, 과학의 목표에는 1)이론을 논박하는 것 2)이론들이 참인지/참일지 알아내는 것 두 가지 모두 포함된다고 되어 있다.
<과학철학>에서 저자 오카샤가 말하는 연역과 귀납의 문제는 장하석 교수의 책 1장 포퍼와 쿤의 대비적인 문제의식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카샤의 책 귀납과 연역의 입장에서 포퍼와 쿤의 견해를 비교해볼 수 있겠습니다. 오카샤가 이미 포퍼에 대해서는 연역 원리를 통해 앞선 전제가 옳기 때문에 그 결과도 옳을 수밖에 없는 것만이 과학이라는 그의 입장에서 반증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이라는 그의 주장은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혁명적인 과학자의 태도에 가까워보입니다. 반면 뉴튼의 패러다임이든 양자역학의 패러다임이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발견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보수적인 과학자의 모습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장하석 교수는 2장과 3장을 거치면서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측정의 문제, 가령 온도계조차도 그렇게 완벽한 과학적인 지식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더 읽어야 장하석 교수의 입장을 알 수 있겠지만, 그가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은 쿤의 정상과학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식과정의 반복(113p)을 하려면 귀납적으로 믿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뉴튼의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공존하는 지금의 시대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갇힐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이 교수가 서론에서 말했던 다원주의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입니다. 장교수가 말하는 인식과정의 반복이란(116p) 처음에 믿고 시작한 전제들이 단순히 유지되고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매 단계마다 검토되고 지식을 쌓고 개선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온도계의 정밀성이 그 사례입니다. 오카샤는 순환논리에 빠지면 반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때 과학은 진리? 즉 완전합니다. 하지만 장교수의 설명처럼 과학이 매번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나선형이라면 과학적 진보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과학은 태생적으로 불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그때그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과학적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오늘 메모 정리해서 올립니다!
<과학철학>의 2장 과학적 추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상이나 대상을 만났을 때, 설명하는 툴로 무엇을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고,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을 과거에는 신에 의지했다면(신의 뜻과, 신의 창조물로) 이제는 과학에 의지(그래서 앞 도입부에 침팬지, 대륙이동, 우주팽창등의 예시가 나옵니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앞으로 펼쳐진다는거야?' 라는 질문에 과학은 신점과 계시가 아닌 논리를 사용하자는 거죠.
연역법과 귀납법만 존재하는 게 아닌, 인과적 추론, IBE, 대조추론, 확률 등을 사용해 현재 우리는 우리의 무지(알지 못하는 현상이나 대상)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논리는 오류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 오류를 가진 논리들을 뒤섞어 여러 개의 논리가 서로의 모순점을 꼬집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오차를 줄입니다. 모든 것을 꿰뚫는 절대적 논리가 있다는 게 아닌(유사과학은 절대적 논리를 지향합니다)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 과학의 지향점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흐름 끝에, 인간이 명확히 알 수 있는 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뿐입니다. 오늘 날에는 이 부분 역시 많이 바뀌고 있지만 ....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참여가 힘들 거 같은데, 인사하자마자 고백할 수는 없어서 남기고 갑니다. 오늘만 시간이 맞아서 왔거든요.
모두 좋은 밤 되세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