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물리학 두 번째 시간 후기

이스텔라
2022-07-04 18:21
340

절대 온도 부근의 새로운 세상

 

이 책을 비롯한 물리학 관련 도서들을 읽어나가면서 깨닫게 되는 점은 물리학이란 학문은 어떤 필요나 이해관계에 의해 일차적으로 형성되어 왔다기 보다는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흥미와 집념의 산물로서 과학적 발견이 먼저 이루어지고, 새로운 발견의 유용성은 오히려 나중에 따라오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각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한평생을 보낸 오너스의 경우는 단순한 흥미에 이끌린 작업만은 분명히 아니었지만, 그가 일단 범접하기 힘든 절대 영도와 가까운 세계의 문을 열어 젖히자마자 그 자신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초전도나 초유체 같은 새롭고 기이한 현상들이 절대 영도라는 새로운 물리적 환경 속에서 발견되었다. 한없이 차가워질수록 물질들은 더 양자역학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빛의 이중성, 디지털과 아날로그

 

빛의 이중성이 선언된 이후, 이러한 이중성은 전자를 비롯한 기본입자의 이중성으로까지 확장되어 나간다. 아직도 우리는 ‘파동의 물질성과 물질의 파동성’이라는 말의 물리적 실체를 여전히 모르지만 양자 역학은 이토록 믿기 힘든 사물의 이중성이 우리 현실의 아주 깊은 바닥에 자리하고 있다고 우리를 거의 설득해 내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여러 모순들이 있지만 물리학자들은 언어를 버려서라도 양자역학적 현실을 기꺼이 껴안을 결심을 굳히는 중이고, 아직까지는 그 어떤 실험으로도 이 기괴한 양자역학적 설명을 깨뜨리는 반증이 제시된 바 없어 앞으로도 우리는 이 현실에 계속 적응하는 훈련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양자역학적 세상이 재미있다. 지루해 보이던 물리가 다시 재밌어졌고, 현실과 SF의 경계에 놓인 이 경이롭고 낯선 렌즈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런 양자역학적 현실을 다시 기존의 물리학적 체계로 귀환시키려는 여러 시도들이 오히려 어딘가 퇴행적이라고 느껴질만큼.

 

스핀트로닉스

 

전자의 스핀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을 공학적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일컫는 스핀트로닉스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은 양자 홀 효과 등 그런 스핀트로닉스의 출발점이 되는 새로운 전자의 스핀에 관한 이론을 어렵지 않게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는 자세하고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가 그런 글을 의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할지라도 나는 이 책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일단 굉장히 재미있고, 새롭고 진기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장난감 가게에 갔는데 맨날 보는 지루한 장난감 말고 이런 저런 못보던 새로운 장난감이 많아 저절로 눈이 반짝여지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책을 읽게 된다. 여울아님 덕분에 재밌는 책을 연달아 두 권이나 읽었다. 혼자서라면 손이 쉽게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울아님 칭찬은 아주 쬐금만하고, 과학 세미나를 시작했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전류의 흐름과 전자의 흐름은 방향이 왜 다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종횡무진 미르님의 질문 덕에 정신없고 재밌었다. 재하님의 질문이 너무 심오해서 쩔쩔매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을 간신히 요약한 답변으로 갈음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가 ‘물질의 물리학 4~6 메모’라는 별도의 포스팅에 답글로 달아놓은 장회익의 자연철학강의 요약 내용 참조하시길!) 아인슈타인 광전효과 논문까지 찾아 읽은 여울아님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이렇듯 아무도 못말리게 저돌적인 여울아님의 탐구욕에 부쳐 ‘무쏘’라는 호를 바친다. 과학에 적절하게 철학의 시즈닝을 뿌려서 맛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주시는 아렘샘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풍부하고 좋다. 그리고 우리 경희님의 반짝거리는 눈이 없었다면 난 떠들고 싶은 의욕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을 것이다. 경희님 없으면 과학 공부할 맛이 안날 듯!

 

아, 오래되어 디테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 가까스로 쥐어짜듯 후기 올린다. 더는 못쓰겠다. 하여간 ‘물질의 물리학’을 과학 세미나 덕분에 너무 재밌게 읽었다. 뒤의 주석까지 감동이다. 끝.

 

댓글 1
  • 2022-07-04 18:58

    바쁘다고 하시면서도 이렇게 또 의리를 지켜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왜 절대온도가 이렇듯 양자역학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차가워야 양자답다는 저자의 소제목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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