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스피노자>p115단어와 해석

띠우
2022-07-16 10:36
203

p115 단어와 해석 띠우

じゅんすい [純粋]

しげき [刺激]

ひきおこす [引き起(こ)す]일으키다, 야기하다

そうぞう [創造]

あやまり [誤り·謬り]잘못, 오류, 실수

ひかれる [惹かれる]끌리다

ありか [在(り)処]있는 곳, 소재(所在).

ことばづかい [言葉遣い] 말씨, 말투.

せいり [整理]

かしょ [箇所·個所]장소

 

 

‘의지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의 문제점은 앞서의 자발성 문제점과 같습니다. 자유의지는 순수한 출발점이고,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도 명령도 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항상 외부로부터의 영향과 자극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그러한 ‘의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주관적으로는 느낍니다. 왜냐하면 의식은 결과만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지를 일으켰던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마치 의지가 제로에서 생겨난 것처럼, 그것이 ‘무로부터의 창조’인 것처럼 느껴져 버립니다.

스피노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의 ‘오류’을, 다음과 같은 강한 어조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즉 그들이 자신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의견은, 그들이 단지 그들의 행동은 의식하지만 그들을 그것으로 결정짓는 여러 원인은 이를 알지못한다는 것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자유 관념이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행동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제2부 정리35비고)

 

스피노자의 자유의 정의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에 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의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 자유가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자유를 이해하면, 자유의지라는 개념의 모순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요. 자유가 있는 곳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도 그랬습니다. 20년 전에 스피노자를 연구하려고 생각했던 때, 역시 여기에 제일 걸리는 지점이었습니다. 스피노자가 기술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수년의 일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중동태의 세계』라는 책을 쓰고, 스피노자 말투로 이용되는 개념을 자기 나름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이윽고 그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의지도 다시 어떤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스피노자는 ‘의지의 자유’도 ‘자유의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만, 스피노자가 도대체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 가에 주의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분명히 스스로의 안에 의지라는 것의 존재를 느낍니다. 스피노자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 우리들은 그러한 의지를 스스로의 안에서 느끼지만, 그것은 자유는 아니고, 자발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의지도 또, 어떤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했던 곳을 볼까요.

 

정신 안에는 절대적인 의지, 즉 자유로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은 이것 또는 저것을 의지하는 것처럼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 원인도 똑같이 다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더욱이 이 후자도 다시 다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렇게 해서 무한하게 나아간다.(제2부 정리48)

 

정신 안에는 확실히 의지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원인에 의해서 결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는 자유로운 원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도 명령도 받지 않는 자발적인 원인이 아닌 것입니다.

잘 생각하면, 스피노자는 당연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당연한 것을 우리들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다음의 절에서 보겠습니다.

 

댓글 4
  • 2022-07-16 17:51

    「はじめてのスピノザ - 自由へのエチカ」 p.112~p.115

    꼭지

     

     

    じはつせい [自発性]

    における [に於ける] 동작·작용이 행해지는 곳·때를 나타냄; …(에서)의; …의 경우의.

    なっとく [納得]

    きたい [期待]

    むじゅん [矛盾]

    はら-む [孕む] 1. 잉태하다 2.임신하다;배다 3.내포하다;품다

    ろんばく [論駁] 논박

    すでに [既に·已に] 1.이미;벌써 2. 거의;자칫 3.전혀;모두

    てがかり [手掛(か)り·手懸(か)り] 1. 손 붙일 곳;손으로 잡을 곳 2.단서;실마리

    めいれい [命令]

    じゅんすい [純粋]

    ほんや [本屋] 1.책방;서점 2.출판사 3.안채

    こんなん [困難]

    ひなん [非難·批難]

    かんしゃ [感謝]

    ややこし-い 복잡해서 알기 어렵다; 까다롭다.

    かこ [過去]

    みらい [未来]

    * 引田 隆也/斎藤 純一 ひきた たかや/ さいとう じゅんいつ

    しょおく [書屋]

    もとづく [基づく] 기초하다

     

     

     

    1. 자유로운 의지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발성이 아니다

     

    그럼 여기까지, 스피노자의 자유가 필연성이나 능동성과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에 충분히 납득 되어 주셨다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한 기대 위에, 여기부터는,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생각되어 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모순을 품고 있는가를 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순번으로 의론을 진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부터 보아가면,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생각되어 지고 있는 것은, 실로 강한 영향력을 취하고 있어서, 어떤 준비도 없이 그것을 논박하여도, 많은 사람은 좀처럼 그것에 납득 될 수 없습니다.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강하게 그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이미 스피노자의 자유의 개념을 배웠습니다. 이미 여러분의 사고에는 스피노자에 의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실마리로 하면, 이제껏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절대 믿고 있던 개념에 관해, 충분히 의심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스피노자의 자유란 능동적으로 되는 것이며, 능동적이라는 것은 행위에 있어서 자신의 힘이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자유란 자발성이 아닙니다.

    자발적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부터도 명령도 받지 않고, 무슨 일인가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피노자 철학에 있어서는, 그러한 자발성은 부정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행위에고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그 원인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의식은 결과만을 받아 취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오늘 낮 식사로 라면을 고른 것에도, 서점에서 갑자기 내켜서 손에 든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에도, 전부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실로 곤란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라면을 골랐다거나, 자발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미안합니다, 비난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렇게 복잡한 의론에 여기까지 따라와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니 최후까지 만나 주십시요!)

    그러므로, 우리들이 믿어 버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자발성은 일반적으로 ⌈자유의지⌋라고 불리워 집니다. 이것이 제가 조금전에 말한,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생각되어지고 있는 것의 경우입니다.

    이것은 철학자 한나 · 아렌트(1906~75)도 지적하고 있는 바입니다만 (「자유란 무엇인가?」『과거와 미래의 사이』히키토 타카야/ 사이토오 준이치 역, 미스즈 서옥), 우리는 자유 이야기를 하면, 곧 「의지의 자유」의 경우를 생각해 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유로운「의지」가 있고, 그 의지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좀 전에,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강하게 믿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 2022-07-16 19:23
    110~112p_초빈
     
    向かう(むかう) 향하다
    *収斂(しゅうれん) 수렴
    *能動的(のうどうてき) 능동적
    自ら(みずから) 몸소, 자신이
    原因(げんいん) 원인
    行為(こうい) 행위
    作り出す(つくりだす) 만들어 내다
    *表現(ひょうげん) 표현
    一番(いちばん) 첫째, 가장
    大切(たいせつ) 중요
    強調(きょうちょう) 강조
    実験(じっけん) 실험
    必要(ひつよう) 필요
    性質(せいしつ) 성질
    際(さい) 때
    歴史(れきし) 역사
    場所(ばしょ) 장소
    環境(かんきょう) 환경
    的(-てき) 적
    発想(はっそう) 발상
    大切(たいせつ) 소중
    全体(ぜんたい) 전체
    度合い(どあい) 정도
    付け加える(つけくわえる) 덧붙이다
    先ほど(さきほど) 아까, 조금 전
    カツアゲ 공갈, 협박
    *受動(じゅどう) 수동
    全く(まったく) 전혀
    述べる(のべる) 말하다
    実際(じっさい) 실제
    他(ほか) 다른 것
    彼(あれ/かれ) 저것, 그
    至る(いたる) 이르다, 도달하다
    原因(げんいん) 원인
    等々(とう‐とう) 등등
    おける -에 있어서
    決して(けっして) 결코
    純粋(じゅんすい) 순수
    完全(かんぜん) 완전
    いくばく 얼마, 어느 정도
    周囲(しゅうい) 주변
    影響(えいきょう) 영향
    刺激(しげき) 자극
    続ける(つづける) 계속하다
    もつ 가지다
    部分(ぶぶん) 부분
    減らす(へらす) 줄이다
    増やす(ふやす) 늘리다
    度合い(どあい) 정도
    身体(からだ) 몸, 신체
    使い方(つかいかた) 사용법
    段階(だんかい) 단계
    実践的(じっせんてき) 실천적
    実現(じつげん) 실천
    求める(もとめる) 요구하다
    意味(いみ) 의미
    誰しも(だれしも) 누구라도
    倫理学(りんりがく) 윤리학
     
     
    スピノザ哲学は人間の自由に向かって収斂する自由であるとは能動的になることであり、能動的になるとは自らが原因であるような行為を作り出すことであり、そのような行為とは、 自らの力が表現されている行為を言います。
    스피노자 철학은 인간의 자유를 향해 수렴하는 자유라고 하는 것은 능동적으로 되는 것이며, 능동적으로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원인인 것 같은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러한 행위란,  스스로의 힘이 표현되고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ですから、どうすれば自らの力がうまく表現される行為を作り出せるのかが、自由であるために一番大切なことになります。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힘이 잘 표현되는 행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자유롭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もちろんそれを考えるためには、これまでも強調してきた実験が必要です。
    물론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도 강조해 온 실험이 필요합니다.  
    実験をしながら、自分がどのような性質のコナトゥスをもっているか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실험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성질의 코나투스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その際、自分がどんな歴史を生きてきて、どんな場所、どんな環境の中にいるのかを知ること、すなわちエソロジー的なエチカの発想も大切になるでしょう。
    그 때, 자신이 어떤 역사를 살아 와서, 어떤 장소,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을 아는 것, 즉 에솔로지적인 에티카의 발상도 소중해질 것입니다.  
    スピノザ哲学の全体が人間の自由に向かって収斂していくことがよく分かると思います。
    스피노자 철학의 전체가 인간의 자유를 향해 수렴해 나가는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自由の度合いを高める
    자유의 정도를 높이다
    ここで一つ付け加えておかねばならないことがあります。
    여기에서 하나 덧붙여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先ほど、カツアゲされた私の行為は受動だが、しかしそこに私の力が全く表現されていないわけではないと述べました。
    앞서, 협박된 나의 행위는 수동이지만, 거기에 내 힘이 전혀 표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実際には、その他にもいくつもの力がそこには表現されていることでしょう(たとえば彼をしてカツアゲをさせるに至った原因等々)。
    사실, 그 밖에도 몇 가지 힘이 거기에 표현되어 있을 것입니다(예를 들면 그로 하여금 협박을 하게 하는 것에 이른 원인 등등).  
    ここから分かるのは、行為における表現は決して純粋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행위에 있어서의 표현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ですから、純粋に私の力だけが表現されるような行為を私が作り出すことはできません。
    그러므로, 순전히 내 힘만이 표현되는 행위를 내가 만들 수는 없습니다.  
    つまり私は完全に能動的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
    즉, 나는 완전히 능동적이 될 수 없습니다.  
    いつもいくばくかは受動であるのです。
    언제나 얼마 동안은 수동입니다.  
    なぜなら私たちは周囲から何らかの影響や刺激を受け続けているからです。
    왜냐하면 우리는 주변에서 어떤 영향과 자극을 계속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完全に能動であるのは、自らの外部をもたない神だけです。
    온전히 능동적인 것은, 자신의 외부가 없는 하나님뿐입니다.  
    神は完全に能動です。
    하나님은 완전히 능동적입니다. 
    ただ、完全に能動にはなれない私たちも、受動の部分を減らして、能動の部分を増やすことはできます。
    다만, 완전히 능동할 수 없는 우리도, 수동의 부분을 줄여, 능동의 부분을 늘리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スピノザはいつも度合いで考えるのです。
    스피노자는 항상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自由も同じです。
    자유도 같습니다.  
    完全な自由はありえません。
    완전한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しかし、これまでより少し自由になることはできる。
    그러나 지금까지 좀 더 자유롭게 될 수는 있다.  
    自由の度合いを少しずつ高めていくことはできる。
    자유의 정도를 조금씩 높여 갈 수 있다.  
    実際、私たちは自分たちの身体の使い方も分からない段階から、そうやって少しずつ自由になってき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실제로, 우리는 우리 몸의 사용법도 모르는 단계부터, 그렇게 조금씩 자유로워져 온 것이 아닐까요.  
    とう考えると、スピノザの哲学が本当に実践的であることが分かります。
    어떻게 생각하면, 스피노자의 철학이 정말 실천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何か完全な自由を実現しようとするのではなくて、一人ひとりが少しずつ自由になっていくことをこの哲学は求めているのです。
    뭔가 완전한 자유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이 조금씩 자유로워져 가는 것을 이 철학은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その意味で、スピノザの 『エチカ』は、誰しもがいつでもすぐに始めることのできる倫理学なのです。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윤리학입니다.

  • 2022-07-17 20:34

    (102~106)

    度合い(どあい)정도

    能動(のうどう)/受動(じゅどう) 능동/수동

    妥当(だとう) 타당

    明瞭判然(めいりょうはんぜん) 명료 판연

    刺激(しげき) 자극

    吸収(きゅうしゅう) 흡수

    摂取(せっしゅ) 섭취

    持続(じぞく) 지속

    順(じゅん)を追(お)う 순서에 따르다

    前者(ぜんしゃ)/後者(こうしゃ) 전자/후자

    さらさら 술술, (옷 등이 스칠 때의) 삭삭, 바슬바슬한, 졸졸

    透明(とうめい) 투명

     

     

    2 자유의 정도를 높이는 윤리학

     

    자유란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

    이렇게 생각해보면, 스피노자의 자유 개념은 어딘가에서 원인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 강제된 상태란, 외부의 원인에 지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란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럼, 자신이 원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스피노자는 이것을 ‘능동actio’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이 원인이 되어 뭔가를 이룰 때 능동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의 행위의 원인일 경우, 나는 그 행위에서 능동인 겁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 타당한 원인이 된 어떤 일이 우리 안 혹은 우리 밖에 일어날 때, 다시 말하면[......] 우리 본성에 의해서만 또렷하고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본성으로부터 우리 안 혹은 밖에 일어날 때, 나는 우리가 작용을 이룬다[능동]고 말한다. (제3부 정의2)

     

    사람은 자유로울 때, 또한 능동이기도 한 것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자유로워질까 하는 질문은, 따라서 인간은 어떻게 하면 능동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남습니다. 중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자신의 행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모든 것은 신이라는 자연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은 신이라는 실체의 변용이었습니다. 신의 변용이라는 뜻에서는, 우리의 존재나 행위는 신을 원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인이 아닙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외부로부터 계속 자극을 받으면서 존재합니다. 『에티카』에서도, 어떠한 것도 다른 것으로부터 작용을 받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도 작용하는 것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제1부 정리28). 이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산소를 들이마시거나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신체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생각하거나 하는 것도 다른 것으로부터의 작용이 있고서 비로소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늘 계속해서 작용이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수동으로밖에 있을 수 없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원인이 되는 일 따위 가능한 걸까요.

     

    원인은 결과 안에서 자신의 힘을 표현한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인/결과, 능동/수동을 스피노자가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차례차례 봐나갑시다.

    보통 원인과 결과는 전자가 후자를 일으키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에티카』의 철학 체계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원인은 결과 안에서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이해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개체란 신의 변용이었습니다. 신이라는 실체가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띰으로써 개체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을 그 존재의 원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앞 장의 ‘양태’에 대한 설명에서 본 대로 어느 개체나 신의 힘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 존재하는 방식, 즉 양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본성 혹은 본질을 일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바꿔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능력을---만물의 원인인 신의 능력을 일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제1부 정리36증명)

     

    여기서 스피노자가 사용하고 있는 ‘표현한다’고 하는 동사는 ‘설명한다’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것들은 신의 힘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 즉 자연에는 물과 같은 찰랑거리며 투명한 액체를 만들어낼 힘이 있습니다. 혹은 또한 사물을 생각하여 철학을 영위하는 인간 같은 존재를 만들어낼 힘도 있습니다. 신 즉 자연에는 실로 풍부한 힘이 있습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하나하나가 각각의 방식으로 “신에게는 이런 것도 가능해” “자연에는 이런 힘이 있어”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만물을 만들어낸 원인이 신이었습니다.

    그러면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동시에 표현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 됩니다. 신이라는 원인은 만물이라는 결과에서 자신의 힘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 2022-07-18 09:01

    107-110쪽 뚜버기

    능동이란 스스로의 힘을 표현하는 것

     

    원인과 결과이 관계가 표현의 관계이기도 하다면, 능동의 의미도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그것과는 달라진다.

    보통 능동과 수동은, 행위의 방향, 행위의 화살표가 향하는 쪽으로 이해되고 있다. 행위의 화살표가 나로부터 밖으로 향한다면 능동이고, 화살표가 나를 향해 있으면 수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는 이들을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행위의 원인이 되었을 때 – 즉 나의 외부나 나의 안에서 나를 원인으로 하는 무엇인가가 일어날 때 – 나는 능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의 원인/결과의 개념을 사용한다면, 이 정의는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스스로의 행위에 있어서 자신의 힘을 표현하고 있을 때에 능동이다. 그것과는 거꾸로, 나의 행위가 내가 아닌, 타인의 힘을 보다 많이 표현하고 있을 때, 나는 수동이다.

    앞의 군대로 달려간 청년의 예를 떠올려 보십시오. 복수에 불탄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예전에 부모에게 받은 학대에 대한 복수심입니다. 즉 그의 부모야말로 그의 활발한 활동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본질은 이 압도적인 외부의 원인에 의해 짓밟혀 있습니다. 그의 행위는 어떻게 해도, 그의 힘이라기보다 그의 부모의 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중동태의 세계>>(의학서원)이라는 책에서, 카츠아게의 예를 사용하여 이것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총을 가진 상대로부터 “돈을 꺼내”라는 협박을 받은 내가, 스스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 그것을 상대에게 직접 건넸다고 합니다. 그때, 돈을 건넨 나는 능동일까요, 수동일까요.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능동일 리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협박당하고 있다고는 해도, 손수 건네고 있는 것은 나입니다. 만일 세계 맞아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돈을 빼앗긴 것이었다면, 나는 수동입니다. 그러나 협박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스스로 돈을 건네고 있습니다. 애초에 행위의 방향으로 능동과 수동을 구별하는 사고법에 속한다면, 나는 능동이 되어버리겠지요. 확실히 돈을 건넨다는 행위의 화살표는 나로부터 상대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나는 공갈협박을 정당화하고 싶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위의 방향으로 능동과 수동을 정의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는 공갈협박 정도의 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스피노자의 능동/수동 개념이라면 다릅니다. 스파노자는 그 행위가 누구의 어떤 힘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총으로 위협하는 상대에게 내가 돈을 건네준다는 행위는 그 상대의 힘을 보다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상대에게는 타인에게 돈을 내밀게 하는 힘이 있다(라고 말해도, 그것은 대부분 총 덕분이지만). 나의 행위는 그 상대의 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 전부 표현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내게는 손을 사용하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힘이 있고 그 힘은 그 행위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것은 그 상대의 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행위의 충분한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수동인 것입니다.

    그것과 비교하기 위해서, 성서 안의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여기서 참조해 보겠습니다. 강도에게 습격을 당해서 옷가지를 전부 벗김을 당하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 옆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만이 나그네를 도와주어, 여관에 데려가 간호를 하고, 여관주인에게 회복될 때까지 여기에 재워달라고 말하며 돈을 건넨 겁니다.

    이때, 돈을 건내는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분명히 그의 힘, 즉 사람에게 공감한다든가, 의로운 마음을 느낀다든가 할 수 있는 그 힘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때 능동입니다. 그러나, 행위의 방향에만 눈을 향한다면, 협박당해서 돈을 건네는 행위도 이 사마리아인의 행위와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행위에 있어서 힘의 표현에 주목하는 스피노자의 정의가 얼마나 유효한가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矢印(やじるし) 화살표

    燃(も)える 타다;불길이 일다・타는 것 같은 상태가 되다・불꽃처럼 빛나다

    虐待(ぎゃくたい)

    中動態(ちゅうどうたい)

    かつあげ [喝上げ·恐喝] 속어 공갈, 협박.

    カツアゲ

    銃(じゅう) 총

    脅(おど)す 으르다, 위협하다, 협박하다, 등치다. (=おどかす)

    手渡(てわた)す (직접) 건네다, 수교(手交)하다.

    殴(なぐ)る 세게 때리다, 세게 치다.

    注目(ちゅうもく)

    差(さ)し出(だ)す 내밀다・제출하다;내다・발송하다;보내다

    善(よ)き 바람직한 결과가 됨, 좋은

    善(よ)きサマリア人(びと)

    強盗(ごうとう) 강도

    襲(おそ)う 덮치다, 습격하다

    身(み)ぐるみ 몸에 입고 있는 것 전부.

    剥(は)がす 벗기다, 떼다.

    道端(みちばた) 길가

    倒(たお)れる 쓰러지다

    旅人(たびびと) 나그네

    聖職者(せいしょくしゃ)

    見向(みむ)き (그 쪽으로) 돌아다봄.

    たまたま [偶·偶偶·適] 가끔;이따금, 우연히;때마침

    通(とお)りかかる (우연히 그 곳을) 지나가다, 마침 지나가다.

    やどや(宿屋) 여인숙, 여관.

    かいほう(介抱) 병구완, 간호.

    やどぬし(宿主) 宿主(しゅくしゅ)

    泊(と)めて挙(あ)げる 재워주다

    余(あま)すところなく 남김없이, 모두,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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