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삼불후 중에 무엇이 제일인가?

자작나무
2022-07-06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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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반 언어 사용에서 '불후'라는 말은 명곡에만 붙는 단어였다. 불후의 명곡!

그런데 중국에서는 종래로 세 개의 불후가 있다. 덕행, 공업,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읽은 글 속에서 불후 중 최고는 문장이었다. 한 개인의 덕행이니 수많은 공업은 문장보다 더 일찍 먼지로 재로 화해 버린다. 그러나 우리 세미나에서 읽은 <서경>만 하더라도 2천년은 훨씬 넘는다. 그 시간동안 <서경>이라는 글은, 혹은 그 이전의 문이라는 것은 썩지 않고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안회가 덕행 제일이라고 해도 그의 에피소드가 글로 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몰랐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장이 세 불후 중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글쟁이의 바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후할 한 편의 글이라도 남기고 죽겠다는 글쟁이, 나아가 지식인의 욕망. 

 

이번에 읽은 구양수의 <남쪽으로 돌아가는 서무당을 전송하는 서>는 기존의 삼 불후의 중요도를 뒤집어 놓는다. 구양수라고 하면 당송팔대가 중의 하나로 문장을 잘 쓰는 자 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 그가 덕행에 힘쓰라고 제자뻘 서무당에게 전해주는 말이 바로 이 작품이다. 물론 그렇다고 문장을 확 까는 건 아니다. 그는 그가 가르친 제자 중 글 잘 쓰는 서무당이, 글을 더 잘 써야지, 더 아름답게 꾸미고 수식해야지, 내 이름을 널리 알려야지 라면서 '문장의 공허함(허)'에 치중할까봐 걱정해서 단도리를 한 것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라도 덕행을 더 쌓는 것이 우선사항이고 중점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구양수가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는 불후의 문장이 아름다운 단어들의 향연인 것은 아니라고 봤다. 문장의 아름다움, 그것은 문자의 아름다움이나 내용의 우수성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의 내면 혹은 수양이나 덕행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글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사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덕행을 쌓는 등의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의 삶, 혹은 정신 세계 그리고 그의 내적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문장이나 기타)이 불후하다=즉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글을 잘 짓기 위해 현란한 말을 찾고 문장을 다듬는 노력보다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더 깊이 사고하고, 공부하고, 진실되게 세상과 교류하고 등등.    

 

에세이 쓸 때, 아니 발제문을 쓸 때도 항상 머리카락을 뜯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에게 있어 구양수가 말한 문장='글'은 에세이나 발제문 혹은 메모에 한정된다. 이럴 때, 구양수가 말한 (불후=훌륭한) 문장 쓰기의 팁은 어떻게 적용될까.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덕행은 고사하고 깊은 사고 혹은 사고를 진척시키는 것조차도 참 힘들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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