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유종원의 포사자설(捕蛇者說)

토용
2022-04-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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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의 글은 한유와는 또 다른 맛이다. 한유가 논리적으로 요점만 간단히 거침없이 쓰는 스타일이라면, 유종원은 조용조용, 자분자분 좀 지루하다싶게 할 말을 늘어놓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에 대한 나의 보잘 것 없는 인상평인 것이지, 그 둘은 문장에 뛰어난 당송팔대가 8명에 들어간다. 당나라 2명, 송나라 6명. 그렇게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들이 많았던 당나라에서도 탑 오브 탑인 셈이다.

 

유종원은 21세에 진사에 합격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순종 즉위 후 개혁정치를 펴다 영주(지금의 후난성 링링시)로 좌천이 되었다. 이후 유주자사로 옮겨 중앙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서 46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에 읽은 포사자설(捕蛇者說, 뱀 잡는 사람 이야기)은 유종원이 영주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영주에 검정 바탕에 흰 무니가 있는 특이한 뱀이 산다. 초목에 닿으면 초목이 죽고 사람이 물리면 독을 해독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뱀을 잡아 포로 만들면 약재로 쓸 수 있어 1년에 두 마리를 잡아 부세로 바치면 조세가 면제되었다.

장씨는 3대째 뱀을 잡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뱀을 잡다 죽었으며, 자신도 12년 동안 여러 번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유종원은 그의 말을 듣고 슬퍼하며 뱀 잡는 부역을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장씨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뱀 잡는 일이 세금을 내는 것보다 덜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웃들의 생활을 보면 수입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바치고 굶주림에 쓰러지고, 울부짖으며 이사를 다니고, 비바람과 추위, 더위에 죽은 자들이 많다는 것. 세금 닦달하는 관리들의 등쌀보다는 차라리 비록 1년에 몇 번이나 죽음을 무릅쓰지만 뱀을 잡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유종원은 이 말에 더욱 슬퍼하며 공자의 말을 인용한다. ‘苛政猛於虎也’(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서민들의 영원한 질곡인가보다. 유종원이 영주로 좌천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생한 글은 아마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교훈적인 엄숙한 글보다 이런 종류의 글이 더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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