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나지묘비>와 <송맹동야서> 후기- 모처럼 재미있는 글맛^^

인디언
2022-02-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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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나지묘비

 

유종원이 유주 자사로 있다가 죽은 후 유주사람들이 나지에 유종원의 사당을 짓고 한유가 비문을 지었다. 매우 유명한 비문이라고 하는데 끝에 초서체로 쓴 송사가 붙어있다.

유종원은 4년간 유주 자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나지에 사당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고, 죽은 후에도 유주 사람들을 위해 영험을 발휘했다고 한다.

유자사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유주 사람들을 비루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고 예법으로 대하자 백성들이 스스로 하늘의 백성으로서 긍지를 갖고 자사의 뜻을 미리 헤아려 동네와 집안일을 알아서 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유가에서 말하는 무위의 정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서체의 송사도 재미있다. 신이 된 자사가 아침에 나가 놀다가 저녁에 돌아오고 봄에는 원숭이와 함께 노래하고 가을에는 학과 함께 날아다닌다고 한다. 유종원이 잘했네 못했네 떠드는 장안의 관리들을 북방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들 신경 쓸 것 없이 오래오래 유주사람들을 보살펴달라고 청한다.

한유와 유종원의 공감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송맹동야서

한유가 망형지교(忘形之交)를 삼은 절친(? 한유보다 17살이나 많다는데^^) 맹동야가 늦은 나이(50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멀리 임지로 떠나며 서글퍼하자 이를 위로하며 지은 글이다.

명(鳴)자를 반복하여 사용한 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물건이 우는 것(鳴)은 평정을 얻지 못해서’라고 한다. 초목이나 물, 쇠나 돌 등 자연도 무언가 작용이 있어야 소리를 내고(울고) 사람의 말도 부득이한 것이 있어야 말을 하며, 노래나 곡처럼 사람의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두 화평(평정)하지 못해서이다. 음악은 답답한 것이 쌓이고 쌓이다 밖으로 나온 것인데 잘 우는 것들을 골라 이들(악기)을 빌려 울게 하는 것이고, 봄여름가을겨울 사시도 새, 우레, 벌레, 바람 등을 통해 우는데, 서로 차례를 밀어내고 빼앗으니 화평함을 얻지 못해서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사람도 마찬가지니 고요, 우부터 시작해서 제자백가에 한나라, 위진시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역사적인 인물을 들어가며 이들 또한 문장가는 문장으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온갖 소리를 내어 울어왔음을 말한다. 공자님도 등장하는데, <논어>에 나오는 '목탁'을 끌어와 명( 鳴)과 연결시키는 것도 참 재주다.^^ 이제 당나라의 능력자들(이백, 두보를 포함하여)을 말한 후에 맹동야를 자신의 제자인 이고, 장적과 함께 높이 평가하면서 ‘잘 우는’ 사람으로 추켜올린다. 이들이 장차 크게 출세하여 나라의 성대함을 노래할지, 그들의 몸을 힘들고 배고프게 하여 스스로의 불행을 읊게 될 지는 하늘의 뜻에 달려있으니 먼 곳으로 발령받아 내려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고... 그런데 맹동야는 일생동안 자손도 없이 곤궁하게 살았다고 한다. ㅠㅠㅠ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울게 된다(不平則鳴)는 말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세상살이가 그런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되는 글이었다. 평정한 상태라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매일매일 찾아오는 수많은 것들이 생각하게 하고 변화를 가져오고......

한유의 글들이 상황에 따라 결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결기가 가득한 글도 있고, 이렇게 다정한 마음을 표현한 글도 있고...

한자가 어려운 것은 글맛을 알기가 힘든데, 이런 글은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댓글 1
  • 2022-02-21 20:35

    그냥 울기만 해서는 B급이 될 뿐이고, 공자처럼 '잘' 울어야 한다는데.... 그게 어디 쉽나요. 

    그런데 한유 정도면 문장으로 '잘' 운 사람이겠지요?

    명(鳴) 하나로 이렇게 맛깔스럽게 쓰다니, 이런 맛에 어려워도 강독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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