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해> 후기

느티나무
2022-02-19 11:31
180

 한문강독의 시간은 쌓이고 있지만, 아직은 숙제하듯 내가 맡은 부분을 해석해 가기에 급급하지만,

선배들의 유려한 읽기와 독해력에 감탄하면서 느려도 쌓이는 시간만큼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한유의 글을 읽다 보면 양가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멋진 문장과 표현력에 놀라지만 뭔가 좀 찝찝함이 남는다. 그게 뭘까는 좀 더 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으려나마는 

 한유는 조실부모하여 형에게 의지하며 살았으나 12세 때 형마저 죽어 형수에게 의탁했다. 이런 불우한 상황에서 위안이 되어준 것이 공부였다고 하니 그동안 그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출세에 대한 의지가 그런 절실함 속에서 나온 것인가 싶어 조금 이해가 된다. 이후로도 그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다. 한유는 13세에 이르러 문장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과거에는 네 번의 시도 끝에 합격을 하였고, 28세에 겨우 추천을 받아 관직을 얻었다. 이부(吏部) 시험 역시 네 번의 도전 끝에 합격하여 국자감의 사문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어사, 현령 등 한직으로 좌천되었다가 헌종 7년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러 국자박사가 된 후 <진학해>를 지었다고 한다. 퇴출과 좌천의 아픔을 겪으며 국자박사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가 없었던 듯하다.

<진학해>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 형식이다.

스승이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한다. ‘지금은 성군과 현명한 재상들은 법과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여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고. 그리하여 작은 장점을 가져도 한 가지의 기술로도 모두 등용되니, 마치 손톱으로 긁어모으듯, 뼈를 바르고 살을 도려내듯, 때를 닦아내고 빛나게 하듯 인재들을 등용하고 있으니 관직에 나아가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학업의 정밀함과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걱정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관리들의 공정하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한유의 돌려치기 문체다. 이런 치세(治世)를 장황하게 늘어놓고서는 자신이 그 인재에서 쏙 빠져있음을 에둘러 드러내어 원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좀 더 나아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인재인지를 제자를 등장시켜 장황하게 나열한다.

‘선생께선 우리를 속이고 있다. 몇 해를 지켜보건대 선생님께서는 육경(六經) 읊고 백가(百家)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며 배우고 익히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고 계시며 또한 유학(儒學)의 실추된 도통(道統)을 찾아 계승한 공로도 있다. 문장을 짓는 능력은 요순에서부터 <춘추>, <좌씨전>,<주역>,<시경>, <장자>, <이소>, <사기>, 양자운과 사마상여까지 미치는 뛰어남을 갖추었고, 배움에 과감하고 실행에 용감하여 사람됨이 완성된 분이다.’

얼굴이 확 달아오를 만한 자화자찬이 아닌가. 자신의 문장이 저런 고전들의 훌륭함을 고루 갖추었다고 스스로 대놓고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감에서 인지 아니면 절실함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유의 자존감과 용기는 참으로 대단한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변명 아닌 변명.

‘그럼에도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인정을 받지 못하여 좌천되고 한직에 있으면서 공적을 이루지 못한 것은 운명이 따라주지 않아서이다. 이러다 결국 늙어 죽고 말 것인데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늘어놓고는 다시 성군과 재상들에게 들으라는 듯 <회남자>의 구절을 인용하여 말한다.

‘나무를 각각의 위치에 알맞게 써서 집을 짓는 것은 훌륭한 장인의 공로요, 온갖 약재를 쌓아놓고 쓰일 때를 기다려 버리지 않는 것은 훌륭한 의사의 공로이다, 이처럼 훌륭한 재상 또한 등용이 공명하고 선발이 공정하여 재주가 좋은 사람과 서툰 사람을 섞어 등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맹자와 순자에 빗대어 다시한번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를 역설한다.

‘열심히 배웠으나 도통을 잇지 못했고, 문장이 뛰어나지만 쓰임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행실은 수양되었으나 드러나지 못하여 나라의 곡식을 축내고 있지만 성군과 재신들이 벌하고 배척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니 어찌 원망하겠는가’라고... ...

한유의 글을 읽다 보면 공자님처럼 말하고 싶어진다.

“말재주는 뛰어나지만 인(仁)한지는 모르겠구나”

 

댓글 2
  • 2022-02-19 13:43

    마지막 문장에서 빵! 터졌네요 ㅎㅎ

    한직을 전전하다 40세에 국자박사가 되었으니 자신을 알아봐주지 못한 높으신 분들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겠으나 어째 그렇게 읽히지도, 읽고 싶지도 않네요.

    제목처럼 학문에 나아가는 마음이 어떠해야하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글이라고 읽고싶습니다. 그 속에 한유답게 내지르고 있는 시대비판은 덤이죠^^

  • 2022-02-19 20:00

    저도 느티샘의 한줄평에 웃음을 터뜨렸어요.(느티샘 표정과 목소리 지원되는 느낌!!)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음서제도가 관직에 나아가는 중요한 루트였는데 그런 시대에 출세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지르는 한유는 새로운 지식인 상을 창조해낸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만..ㅎㅎ

    요즘 대학입시, 취업경쟁에서 나 좀 뽑아달라고 쓰는 자기소개서에 비해서 당당하고 품격있지 않나요?ㅋㅋㅋ

    우리가 문장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내용이나 문체에 대해서는 각자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으니

    한유의 글, 이렇게 본다, 이런 이야기 나중에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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