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범사간서>후기: 간관이라는 극한직업

콩땅
2022-02-07 00:37
222

지난 시간에 구양수의 상범사간서(上范司諫書)와 한유의 송궁문(送窮文)을 읽었다. 자신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한유의 <송궁문>이 재미있었지만, 내가 맡았던 숙제가 <상범사간서>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이 글에 관한 후기를 쓰게 되었다.

먼저 상범사간서는 구양수가 사간 범중엄에게 간관으로서 임무를 다해 주기를 재촉하는 글이다. 이는 간관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쓰여진 당나라 한유의 쟁신론과 명맥을 같이 하나, 문자에 한마디 말도 중첩됨 없이 쓰여 졌다고 한다. 요즘시대에 흔한 논문표절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글쓰기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지금부터 구양수가 말하는 간관이란 어떤 직책인가를 나열해 보겠다.

1.간관이란 7품관이므로 높은 직책은 아니나 천하의 득실과 한 시대의 공론이 달려있는 자리다. 다른 관직들은 그 관직의 경계가 뚜렷하여 한 현의 관리가 다른 현을 다스릴 수 없고, 이부가 병부를 다스릴 수 없지만, 오직 재상과 간관만이 그 직책에 억매이지 않고 천하의 득실과 백성의 이해관계와 조정의 큰 계획에 관하여 일을 한다.

2.재상과 간관, 둘 다 천하의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다면, 재상과 간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재상은 존귀한 자리로서 그의 도리를 행하고, 간관은 낮은 자리로서 말을 행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한 것은 말이 행해져야 도리도 행해진다는 것! 간관이 자기 역할로서 간언을 잘 해야 재상도 따라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간관을 제외한 다른 관직은 일을 잘못 했을 때 사헌부 관리에게 책망을 받는다. 그가 행한 잘못을 그 한 때에 벌 받으면 되나, 간관은 군자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책에 기록되어 백세에 그 잘못이 드리워진다고 한다.

4.그리고 마지막 구양수의 결정타! 곤궁한 생활로 경서와 사기를 공부할 때는 등용되지 못함을 한탄하고, 등용되어서는 ‘그것은 내 일이 아니다’, ‘내 자리가 낮아서 힘이 없어 말할 수 없다’, ‘말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핑계를 댄다고 비판한다.

간추리자면, 간관은 7품관, 일의 한계가 없다(모든 일이 내 일), 재상이 일 못해도 내 책임이고, 만일에 과실이 있으면 책에 기록되어 길이길이 욕먹고, 간언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더라도 군말 말고 간언해야 하는 자리다. 와우~ 간관은 극한직업이고, 그들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겠다.  7품의 박봉을 주면서 책임을 중과하니 말이다.

저기요~ 참지 말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세요!

댓글 3
  • 2022-02-07 17:08

    콩땅님의 재미난 후기를 읽으니 잊혀져가던 <상범사간서>가 아스라히 떠오르네요.

    생각난 김에 상식과 교양을 쌓기 위해 검색엔진 좀 돌려봤습니다.ㅋ

    구양수와 범중엄이 북송 인종시기 경력연간의 개혁가들이었다는 것도 이 글을 통해 새롭게 알았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것이 왕안석의 신법운동이라고 하는군요. (안목높은 구양수가 왕안석의 재능을 알아보고 픽했다고 해요.)

    이글에서 구양수가 범중엄을 꾸짖고 있지만, 범중엄은 구양수보다 10년이상 선배였대요.

    한유를 흠모해서 그랬던 걸까요? 자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한유처럼 구양수도 기개가 대단했던 것 같아요.^^

     

  • 2022-02-07 17:46

    ㅋㅋ 열정페이, 고용노동부라니 역시 콩땅님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듯 하네요. 

    전 간관의 직급이 7품인게 신기했어요. 우린 7급 공무원이 대통령 얼굴보기도 힘든데, 송나라는 저 아래 있는 낮은 직급의 간관이 임금에게 쓴소리를 해야하니까요.

    공직에 들어선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못참는,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끌수 있는 신념과 정의감이 살아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지않은 간관이 더 많았겠지만 적어도 기득권 정치에 때묻지않은 혈기왕성한 간관을 그 자리에 앉혀놓은 이유가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2022-02-08 07:52

    간관의 직급이 높으면 오히려 쓴소리를 못할까봐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지키고 싶은 게 있으면 몸을 사리게 되니까요^^

    다들 젊은 나이에 간관도 하고 또 이들 간관에게 잘하라고 채찍질도 하는 모습들이 참 신선해보입니다

    요즘에는 생각하기 힘들다보니 더욱 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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