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잘 쓰는 소동파

자작나무
2023-03-15 22:17
226

후기를 맡아 놓고서는 홀라당 까먹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쓴다.

이번에 읽은 <晁錯論><留侯論><秦始皇扶蘇論>은 모두 소동파의 '논문'이다. 소동파는 한나라의 건국을 전후로 등장했던 진시황과 그의 아들 부소, 초한지의 영웅 유후=장량 그리고 한나라 '문경지치' 시기에 한 이름 올린 조조에 대해서 그들의 업적 및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나름의 자기 생각을 가지고 평가를 해나간다. 인물의 성격과 그의 행위를 통해서 나름의 주제를 도출해서 써내려가는 필력이 장난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대문장가'라고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한 소동파의 평가를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가 비유를 가지고 자기의 썰을 조곤조곤 풀어가는 것은 재미있고 그럴 듯하다. 원문 읽는 재미가 이런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번 읽고는 이해못한다는 게 함정이지만ㅠㅠ

 

그중에서 잠시 <유후론>을 보면, <유후론>은 장량, 즉 유방이 자신의 꾀돌이라고 했던 장자방을 일컫는다. 근데 역사에서 장량의 이름이 떡 하니 등장한 것은, 전국을 순행하던 진시황의 행렬에 쇠덩어리를 투척하여 저격하고자 했던 '박랑사' 사건에서다. 함께 일을 도모할 力士를 찾고 그와 함께 진시황에 맞썬 인물. 바로 그가 장량이다. 이때의 인상으로 보자면, 장량은 머리쓰는 자라기보다는 좀 몸을 쓰고 욱하는 성질의 용맹하기 그지 없는 사나이의 인상을 준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량을 그린 그림에서 보면 우락부락한 피지컬보다는 그 형상과 모양은 여인과 같은 자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박랑사 사건을 도모하던 그에 대한 이미지와 그림 속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마천도 "자방은 기골이 장대하고 기특하며 위대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마침내 그 형상과 모양이 부인과 여자 같아, 그 志氣에 걸맞지 못했다"고 평가를 남겨 놓았다.

 

소동파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했다. 우리의 이미지와는 다른, 부인과 같은 형상의 장량. 그런데 박랑사 이후, 장량은 유방 곁에 섰다. 잘 나가던 항우가 아닌, 열에 아홉을 지기만 했던 유방의 책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은 안 봐도 뻔하다. 항우와의 전쟁에서 항상 뒤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 유방은 자기 휘하의 한신이나 영포 등에게서도 수모를 받는다. 군대를 이끌고 도와주러 와달라고 했는데도 이들은 개무시했기 때문이다. 욱하고도 남을 유방이다. 하지만 유방은 차분히 순간의 모욕을 참고 미래를 도모했다. 이렇듯 화나는 순간을 능히 참지 못했다면 유방은 천하를 통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동파는 유방을 이렇게 조련한 자가 장량이라고 보았다. 작은 분을 참아 큰 계책을 성취하기. 그럼 장량을 장량이게 만든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소동파가 가져온 것이, 장량이 박랑사 사건에서 실패하며 돌아다니다가 황석공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에피소드를 가져온다. 황석공은 장량을 흡사 자기 종 부리듯 새벽에 다리 밑에서 보자고 몇 번을 똥개 훈련시키듯 했고, 신발을 몇 번이나 던져 가져오게 했고, 심지어는 신발을 신켜 달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 욱할 정도다. 내가 누군데...라면서. 그런데 장량은 이때 황석공의 말과 심부름을 다 들어주었고 책 한 권을 받는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초한의 영웅 장량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이 "그 지기에 맞지 않는다"고 탄식한 구절을 뒤이어 소동파는 "아, 이것이 자방이 된 이유일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글을 맺는다. 오늘날이라면 반론도 있겠지만 어쨌든 부인과 여인과 같은 형상과 모습이란, 큰 일을 위해서 작은 분을 참고 인내하며 남에게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과 끈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황석공과의 일화를 이렇듯 소동파는 세상살이의 지혜, 영웅이 영웅인 이유로 써내고 있는 것이다. 소동파, 참 글 잘 쓴다.  

 

 

 

댓글 1
  • 2023-03-16 01:31

    전 <진시황부소론>의 논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진나라 멸망의 이유를 상앙에서부터 찾아내는 논리요.
    대체로 진나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은 상앙의 변법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소동파는 멸망의 원인을 상앙에서 찾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요.
    '~~론'은 소동파 글이 재밌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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