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취업에서 살아남기 2

느티나무
2023-03-0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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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번 후기 "처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에서는

부모와 가족의 봉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관직에 있어야 하는 어느 선비의

벼슬을 버리고 고결한 은인(隱人)로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지난주 콩땅의 후기에는 취업을 바라는 한유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취업은 예나 지금이나 해야하지만 또한 피하고도 싶은 것인가 보다.

 

어찌되었든 취업을 하고자 한다면 한유에게 자기소개서 쓰는 법은 한 수 배워 봄 직하다. 

 

應科目時與人書(응과목시여인서-관리를 뽑을 때 실시하던 시험에 응시할 때 어떤 이에게 준 편지)

天池와 태강에는 괴물이 살고 있는데

물을 만나면 변화를 부려 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물을 만나지 못하면 지극히 좁은 곳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지금 이 괴물은 물이 마른 곳에 있는 처지라 자력으로는 물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수달 따위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만약 힘 있는 사람이 괴물의 곤궁함을 가엽게 여겨 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 주려 한다면

그  수고는 손 한 번, 발 한번 움직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이 괴물이 평범한 물고기와 다름을 자부하면서도 모래나 진흙 속에서 썩어 죽는 것을

어찌 두고 보며 즐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괴물은

"머리를 숙이고, 귀를 붙이고, 꼬리를 치면서 가엽게 보아주기를 구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 있는 사람이 이 괴물을 만났을 때 자세히 보고도 못 본 체하니

참으로 이 괴물이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마침 힘 있는 분이 앞에 계시므로 괴물은 고개를 들어 한 번 부르짖어 봅니다.

하지만 힘 있는 분이 자신의 곤궁함을 가엽게 여겨 맑은 물결 속으로 옮겨주지 않을  줄을 괴물이 어찌 알겠습니까?

이것은 운명이겠지요?

그러나 운명인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부르짖는 것 또한 괴물의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괴물의 이야기를 마친 한유는 읍소를 한다.

"지금의 저의 처지가 실로 이 괴물과 같으니 합하(閤下-정일품 벼슬아치)께서 가엽게 살펴 주소서."

 

입신양명을 해야 하는 한유의 절박함이 바로 와 닿는 글이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세워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 지를 드러내는 것이 거침없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천하의 한유가 이렇게까지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기를 쓰느라 다시 읽다 보니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관직을 얻기 위해 부르짖는 나의 처지 못지 않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나와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당신 역시 불운한 자라고  말하는 

한유의 거침없는 자부심과 자신감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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