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도 예가 있다

요요
2023-01-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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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대의 문장가 진사도 (陳師道, 1053년 ~ 1101년)의 글로 2023년 한문 강독을 시작했다. 

진사도는 어떤 사람인가?

 

 

진사도는 16세 무렵 증공(남풍선생,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을 만나 문장에 대해 칭찬을 받았고, 35세에 소식의 추천으로 관직을 제수 받았다. 49세에 한질로 죽었다.(그 이유는 아래 내용 참고) 불우했지만, 시인으로도 유명했고, 그의 글 다섯편이 고문진보 후집에 실린 걸 보면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렸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왕안석의 신법당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신법당이 득세하는 동안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던 듯하다.

고문진보 후집에 그의 글은 다섯편이 실려있는데 지난번에 읽은 <여진소유서(진소유에게 주는 편지)>도 이번에 읽은 <상임수주서(임주주에게 올리는 편지)>와 <왕평보문집후서(왕평보의 문집의 후서)> 모두 깐깐하게 예를 따지는 글이다. 효에 대해 말하는 <사정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얼마나 깐깐한 사람이었냐 하면, 어떤 이가 그가 궁핍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려고 그를 방문했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결국 돈을 도로 품에 안고 돌아왔다고 한다. 아예 돈을 꺼낼 수도 없게 하는 말을 했을 것 같다. 그의 죽음 역시 사연이 있다. 벼슬길에 올라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날이 추워 털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얻어온 옷이었다. 결국 그 옷을 입지 않은 탓에 추위를 참다 한질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얼마나 깐깐한 사람인지 알 만하지 않은가? 우리가 읽고 있는 그의 글에서도 그런 성정이 잘 드러난다. 

 

지난 번에 읽은 <진소유에게 주는 편지>는 높은 지위에 있던 장공이 진사도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자신이 거절하는 까닭을 진소유에게 알리는 편지였다.

이번에 읽은 <임수주에게 올리는 편지>는 진사도 자신이 임수주를 만나고 싶다는 편지였다.

대체 어떤 경우는 만나지 않고, 어떤 경우는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임수주에게 올리는 편지>에는 그 예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사대부가 공경대부를 만날 때는 1) 소개자가 있어야 한다. 2) 말로서 왜 만나는지 명분을 밝혀야 한다. 3) 폐백으로 그 마음을 표시해야 한다. 4) 의식으로서 공경을 드러내야 한다. 이 네 가지가 구비되지 않으면 예에 어긋나므로 만날 수 없다.

먼저 왜 소개가 필요한가? 선비는 공경대부를 만나고자 하지만 스스로 찾아가지는 않는다. 반드시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마치 중매를 서는 사람이 중간에서 양쪽을 소개한 후에 만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선비가 공경대부를 만날 때 여러 혐의나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당한 소개자를 통해서만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말로 명분을 밝히는 것은 그렇다 하고, 폐백은 또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받지 않는 만남은 없다. <논어>에서도 공자님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보낸 폐백을 피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폐백을 받는다는 것은 서로 마음을 허락하는 것이다. 의식은 의례이다. 세 번 청하고, 세 번 선물을 사양하고, 세 번 절하고 올라가고 세 번 절하고 내려온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참으로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오늘날에도 만남의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역시 소개자를 통하든 통하지 않든, 만남의 명분을 밝히고, 마음을 표하고, 나름의 예를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세 번 청하고, 세 번 사양하고, 세 번 절하는 것을 구차스럽고 형식 뿐인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절차는 간소화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로 어떤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절한지 매번 생각하고,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고, 가능한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삼가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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