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소식의 <희우정기>

자작나무
2022-11-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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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소식의 간명한 에세이를 읽고 있다. 어떤 것은 기문으로, 어떤 것은 서문으로, 또 어떤 것은 논문으로 다양한 형식을 띠고 있지만, 주제가 분명하다는 점과 짧은 편폭임에도 기승전결처럼 글이 잘 맺여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희우정기>이다.

 

비가 내림을 기뻐하여 '희우'로 정자이름을 삼은 내력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나게 하는 글인데, 소식은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기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물건의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잊지 않음을 나타내려고 해서이다."

 

누구는 한해의 농사가 풍년이어서, 누구는 나라의 보물을 얻어서 그것으로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적을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해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그 기쁨이 어떠한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지만, 그정도로 어쨌든 그날의 기쁨이나 일 등을 잊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행위이다. '희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나이 28살에 처음 봉상이란 곳에 임관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한 소식은, 부임한 다음해에 관사도 수리하고 옆에 연못도 파고 정원도 만들고 정자도 만들었다. 정자가 바야흐로 완성될 때, 보리가 자라는데 필요한 비가 내리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끝에 마침내 단비가 내렸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할 만큼 충분하게 내린 비였다. 그 비를 기념하여 정자명을 희우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식이 비 앞에 '희'자를 쓰며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단비니 호우니 하는 말들도 있을 텐데, 기쁘다니. 모든 사람들이 메마른 대지에 비가 내리는 것을 기뻐했을 터이지만, 한 고을의 백성을 다스리는 '태수'의 입장에서 그 비는 무슨 의미였을까. 백성의 생업을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겠고, 그것을 관리로서 자기가 해야할 일로 보지는 않았을까. 하늘에서 진주나 옥이 쏟아지더라도 그것은 굶주린 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굶주린 자에게는 먹을 것을, 잘 곳 없는 자에게는 쉴 곳을 주는 것,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에 꼭 알맞은 정도로 맞추는 것, 그것이 공직자의 임무이지 않을까. 그렇게 초임 '태수'의 환한 얼굴을 <희우정기>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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