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4 <결론> 2주차 질문

정군
2022-11-15 19:09
505

2-3절 질문은 댓글 본문으로 달아주세요~

댓글 14
  • 2022-11-15 19:16

    586쪽 '어리석음'은 어떻게 '미규정성, 사유에만 고유한 동물성, 사유의 생식성'이 되는가?
    595쪽 (비)-존재와 '비-존재'는 어떻게 다른가?

    '시간의 텅빈 형식'은 '반복'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 2022-11-16 23:13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줄기차게,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동일자'에 대한 '차이'의 우위, 또는 우선적 성격이다. 요컨대 이 세계는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는(이념), 차이나는 것들(강도들)로부터 현실화된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또는 들뢰즈는 '그 세계'를 어떻게 '경험'할까? 어떻게 우리는 '차이나는 반복'의 역량을 실감할 수 있을까? '텅빈시간의 형식'이라는 시간의 세번째 종합은 어떻게 '차이'를 우리와 관련시키는가?

  • 2022-11-16 16:27

    차이의 발생적 과정을 설명하는 주름운동에서, 잠재적인 강도적 계열의 상태를 함축, 봉인 등의 말과 함께 '안-주름운동'으로 이름짓고, 그런 기저(基底)의 계열들 사이에서 질과 연장의 상태로 분화, 개봉되는 과정을 '밖-주름 운동'이라고 하였다. 이런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 기저(基底)인 생산적 차이는 소멸(점진적 소멸)되어 최종적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였을까? 들뢰즈는 밖-주름운동은 체계의 중심부에 작은 집단(엔트로피의 극소적 상승)을 남기는데(차이를 내면화함) 이를 겹-주름운동(replication)이라고 명명한다.
    내부적인 강도만으로 발생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나? 다음 주제로 본문 마지막에 기술하였던 ‘타인’을 들고 나온다. 타인은 사람이 아니고 어떤 구조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 본문으로 돌아가 보니(556-559) 심리적 체계 안에서의 타인-구조를 말한다. 타인의 어떤 인식과 표현으로 나는 실존하지 않는 (가능성의)세계를 경험하는 구조이다. 이를 “타인은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두 체계 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에 대한 자아이자 자아에 대한 타자이다“라고 알쏭달쏭하게 표현한다. 이제 금주의 결론장에서는(597) ”타인은 체계 안에 함축된 개체화 요인들과 혼동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이 요인들을 ‘대리’하고, 이 요인들에 대해 타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개체화 과정을 보완하는 어떤 또 다른 구조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띠바.
    \

    질문) 왜? 차이-강도-분화-연장 식으로 내안의 존재로부터 발생적 사유를 전개하다가, 갑자기 ‘타인’을 끌여 들이나?
    \

    가능1) 나 혹은 자아의 세계를 확장한 체계 전체로의 차이의 철학을 확장하기 위하여? 그렇다면 좀 뜬금없다.
    가능2)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 약간의 전제를 달았다. ‘심리적 체계들 안에서’라든가 ‘지각적 세계의 체계화’라든가.......여기서 유추해보면, ‘타인’, ‘타자’에 대한 많은 철학자들의 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당신들이 사유한 그것들(타인,타자)은 겉을 본 것이고, 그 안에는 이러한 차이-강도....의 구조가 있다는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능3) 배아상태에서 주름운동을 하여 성체로 현행화 될 때, 줄기세포는 어떤 조건(외부적 환경 등)에 따라 다른 기관으로 분화된다. 즉 내재적인 차이-강도-분화-연장 식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발생이 있다. 이것을 설명하려고 도입된 개념(타인-구조)이다.
    가능4) 상기한 가능성에는 답이 없다.
    \

    뭐죠?
    수능일인데, 그냥 콱 찍어?

  • 2022-11-16 20:34

    576쪽 "차이는 동일성을 띤 개념 '안에서' 재현되고, ...... 반면 반복은 개념 '바깥에서' 어떤 개념 없는 차이로 재현되지만, ....."
    개념 안과 바깥은 어떤 뜻인가요?
    586쪽 "순수한 규정, 추상적인 선으로서의 사유는 미규정자인 이 무-바탕과 대결해야 한다."
    친한 것 같은데 왜 대결해야 하는지요?

  • 2022-11-16 21:10

    P598 마지막. '이런 의미에서 사유하는 자는 확실히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유아적일 수 밖에 없다' 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타인은 초월론적 경험론에 입각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닌 자'여야 합니다. 여기서 타인은 일전에 주체 비판에서 나는 타자다의 타인이 아닙니다. 재현의 철학이, 감성론이 말하는 내가 아닌 타자로서의 타인이 마치 들뢰즈가 말한 초월론의 대부분 역할을 떠맡아 개체화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거꾸로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타인은 '아무것도 아닌 자'여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들뢰즈가 시종일관 주장해 온 맥락에 정합적이니 이해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만 그런데 왜 사유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유아적일 수 밖에 없을까요? 타인이 없어서요? 안해도 될 말을 하지 않나 그럼 마음입니다.

    P604 중간. 들뢰즈가 자신의 기초개념들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우선 기초개념들은 실재적 경험의 조건이지, 결코 가능한 경험의 조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네 맞는 말이고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개념들은 조건화되는 사태보다 더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이제까지 애석하게 분리되어 있는 감성론의 두 부분을 통합한다. ' 조건화되는 사태보다 더 크지 않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 2022-11-16 21:29

    (603쪽~606쪽)
    <차이와 반복>에는 수많은 낯선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결론 3절에 와서 우리는 그것이 재현의 철학과는 다른 차이의 철학을 말하기 위한 '기초개념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뢰즈는 이 기초개념들은 범주목록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개방적인 범주들의 목록이라 하더라도 범주는 원리상 개방적인 것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범주들은 재현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라네요.
    기초개념들이 범주와 구별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1)그것은 실재적 경험의 조건이지, 결코 가능한 경험의 조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2) 범주들이 보편자와 지금여기를 말하는 것이라면 기초개념들은 시공간적 복합체이고 어디로도 운반가능한 것들이다. 3) 이 개념들은 어떤 본질적인 마주침의 대상이지, 결코 어떤 재인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기초개념들은 '에레혼들'이라고 하는군요.
    에레혼이 등장하는 머리말로 돌아가 봅시다. "나는 나의 개념들을 만들고 주조하고 부순다. 움직이고 있는 어떤 지평에서, 언제나 탈중심화되고 있는 어떤 중심으로부터, 개념들을 반복하고 분화시키면서 언제나 위치를 바꾸는 어떤 주변으로부터 그렇게 한다."(19쪽)

    범주들과 기초개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범주가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그동안 마치 기초개념들을 마치 범주처럼 카테고리화하고 맵핑하려고 애써온 것 같습니다. 좀 허탈하기도 하고, 들뢰즈가 제시하는 개념들을 맵핑하려는 이해방식과 노력 역시 사유의 이미지와 재현적 사유의 결과인가, 혹은 앞서 말한 4중의 굴레와 연관된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들뢰즈는 우리더러 자신이 말해온 기초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것일까요? 또 기초개념들이 범주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2022-11-17 00:36

    (596-598쪽)
    타인이 개체화 요인을 ‘대리’하고 이 요인들에 대해 타당한 의미를 지닌다면(597쪽)
    즉, 타인-구조가 독특성들이 순수한 이념 안에서 펼쳐지고 분배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 개체화 요인들이 순수한 강도 안에서 할당되도록 하기 위한(598쪽) 것이라면, 타인-구조는 개체화를 보장하는, 그래서 뭔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그 누구도 아닌 자’인 타인-구조에서, 존재자들은 다른 존재자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지?
    그래서 사유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고독한 것인가?

  • 2022-11-17 07:16

    가마솥샘의 질문에 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p596 마지막에 밖-주름 운동, "여기서는 분화들이 구체화되고 최종적인 해의 집합을 정의하는 적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봉인의 중심들은 여전히 문제들의 끈덕진 항존을 증언하거나 이 문제들의 밖-주름운동과 해결운동 안에서 안-주름운동의 가치들이 항존하고 있음을 증언한다.(겹-주름운동)"에서 '봉인의 중심들'을 뭐라고 봐야 할까요?

  • 2022-11-17 09:06

    몇번을 읽어도 2절이 어려운데요, 전체적으로 근거와 시간의 종합을 엮는 흐름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특히 근거와 텅빈 시간의 형식은 더 이해가 안가고요. 뭐 결국 정군샘의 질문과 비슷해질 수 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좀더 생각해보고 가겠습니다. 아, 덧붙여 어젯밤 카톡의 내막을 밝히자면 근거와 텅빈-도 잘 이해가 안가는데, 본문에 언급된 텅빈-과 차이도 아니고 무려 반복까지 정군샘이 질문하셨기에 출처를 여쭤본 거였습니다^^

  • 2022-11-17 09:46

    시간의 텅 빈 형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602~603p)
    균열과 경첩은 주사위들이 통과하는 텅 빈 시간의 형식, 아이온이다. 한편에서 보면 이 텅 빈 형식에 의해 균열된 어떤 나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수동적이고 언제나 이 텅 빈 형식 안에서 분열되어 있는 어떤 자아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쪼개진 하늘에 응답하는 것은 갈라진 대지이다... 이렇게 서로 함께 하는 쪼개진 하늘과 갈라진 대지는 모두 부정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들의 균열이나 갈라진 틈으로 그 부정적인 것을 토해 내고, 부정의 모든 형식들, 정확히 말해서 거짓된 놀이를 재현하는 모든 형식들을 쫓아낸다.

    주사위 놀이에서 시간의 텅 빈 형식이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이온의 의미는? 이렇게 매번 부정을 긍정하면서 균열을 만들어냄으로써 결코 선악과 같은 도덕적 놀이로 타락하지 않는(정주하지 않는) 주사위 놀이를 신적인 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쪼개진 하늘과 갈라진 대지는 시간의 텅 빈 형식이 만들어낸 균열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시간의 텅 빈 형식이 결과적으로 재현을 쫓아낸 것이구요. 그렇다면 시간의 텅 빈 형식이 주사위 놀이의 우연이나 우발점을 구성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 2022-11-17 10:46

    585쪽에서 "충족이유가 재현의 요구들과 무관하게 분만될 수 있음"을 말하고 충족이유가 분만되는 과정을 "규정 가능성-상호적 규정-완결된 규정 등의 3중의 형태를 띠는 어떤 원리 아래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다양체적 충족이유"가 어떤 바탕에서 태어나느냐에서 충족이유, 근거는 한쪽으로는 "자신이 근거짓는 것을 향해, 재현의 형식들을 향해 기울어져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재현을 허락하지 않는 무-바탕으로 비스듬히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차이가 "근거짓는 원리에서 보편적인 '근거와해'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 이 말을 따라가보면 3중의 형태를 띠는 어떤 원리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이념의 세 과정은 한편으로 재현의 형식들을 향해 기울어 있는 셈이 되는 것인가요?

  • 2022-11-17 12:59

    2시까지 질문 올리겠습니다! ㅠ ㅠ

  • 2022-11-17 13:34

    2절 / 근거에서 무-바탕으로

    - 근거짓는다는 건 재현을 근거 짓는다는 거라고 하면서, <근거-기억>에서 <근거와해>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이 페이지 전체가 다 어렵지만, 근거라는 건 기억이면서도 와해될 수 밖에 없는 먼가가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이건 무-바탕과는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사유는 근거와해가 일어나는 주위에서만 사유하기 때문이라고 할 때.... 이 관계들(근거- 와해 - 무바탕 - 사유) 을 좀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단락 전체가 결국 뭔 말이냐는 질문이네요;;)

  • 2022-11-17 14:13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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