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4주차 후기

아렘
2023-06-02 00:21
656

   밤시간에 있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세미나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미리 먼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거나 매우 중요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아울러 세미나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고 후기를 쓰지 못하느냐, 그것도 전혀 아닙니다.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니어도 밤늦게 회의를 하는 것처럼 함께하지 못하고도 후기가 가능해지는 이 상황이 꼭 우리 세미나 같습니다.

 

   세미나 방식과 관련해서 점차로 생각이 변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후기와 엮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세미나는 그야말로 중구난방 난장판입니다. 각자가 다 처한 사정이 다르고 스피노자에 대한 사전 지식도 경험도 모두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분히 모여서 줄거리를 정리해보고 key word 를 따 보고 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군샘의 강한 고집과 주장에 대체로 세미나 회원들이 맞춰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체의 요약 정리를 생략하고 날것 그대로 각자 내 놓은 질문을 다룹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매번 길을 잃고 헤멥니다. 질문 하나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와중에 생긴 간극 때문에 텍스트의 내용을 넘어 안드로메다에 와 있는 자신들을 발견합니다. 명료하지 않아 답답합니다. 뭘 얻었는지도 희미해서 완주를 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세션샘이 지적한대로 이번 세미나만이 아니라 매번 세미나를 관통하는 정서는 ‘성급함’입니다.

 

    정중동 샘, 요요샘, 정군샘, 재선샘의 질문과 토론 가운데…듣다 못한 세션샘이 ‘우리는 너무 성급하다’고 진정을 시키고, 보다못한 정군샘이 ‘아직 거기까지 가시면 안된다고’ 뜯어 말려야 다시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샘들 이름만 바뀌지 우리는 매번 이렇습니다. 그런데도...그럼에도 불구하고...점차로 생각이 바뀌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중구난방에 점차로 익숙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익숙해짐을 넘어서 이게 맞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말끔한 요약과 정리만 유일한 방법일지, 십여명이 손붙잡고 한발한발 차근차근 이런 것이 그냥 편리하고 피상적인 방법은 아닐지…십여명 세미나원이 뿜어내는 그 중구난방 난상토론에서도 무언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너무 정연해서 맞아 맞아…아 그런거였어? 남이 정리해주는 정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휘발되고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의외로 우리는 잘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진창에 빠진 우리를 내버려두다가 돌려세우는 정군샘과 세션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엉망인꼴 못보는 두 분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매번 질문을 텍스트 바깥으로 끌어내서 스피노자의 의도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쳐다보게 하는 세븐샘이 계십니다. 돌멩이도 사유한다고 제가 말할 때 ‘그게 무슨말이에요?’라며 이상한건 이상하다고 말하는 재선샘도 계십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입니다. 세미나를 다 채우지 못해도 후기가 가능하고, 엉망진창 정리가 안되는 세미나임에도 그런대로 다방면으로 길을 내며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정리로 무장한 채 십여명이 한길로 가고 있지 않음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점을 세미나를 해가며 더 많이 느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신승리일지도 모릅니다.ㅎ)

 

   안드로메다로 빠졌어도 시간 안에 하지 못한 한마디를 덧붙이고 마치려고 합니다. 세미나의 주된 내용은 댓글들로 보충해주세요.

 

   제가 나오기 직전에 한창 이야기 한 부분입니다. 걸핏하면 스피노자는 2부에서 ‘무한한 한에서의 신이 아니라’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사유양태로서 관념은 신을 원인으로 갖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아닙니다. 독특한 실재의 관념에 의해 변용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의 신을 원인으로 갖습니다. 사유양태들은 그러니까 사유로 펼쳐지는 우주는 이처럼 무한히 나아갑니다. 이때문에 (요요샘이 오래도록 이야기하신) 인간 정신은 실재를 부분적으로 또는 부적합하게 지각합니다. 자 여기서 한 번 커다란 도약을 해보시지요. 인간 정신이 실재를 부분적으로 또는 부적합하게 지각하는데 만일에 5부쯤 가서 실재를 전체적으로 적합하게 지각하는 사태를 우리가 얼핏 본다면 어떨까요? 비록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주 드물지라도 혹시나 가능성으로나마 그 길이 보인다면 어떨까요? 이 경지가 제가 말한 신이 되는 경지쯤으로 여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역량이건 이성이건 이리보나 저리보나 같은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17
  • 2023-06-02 05:40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쉬 아렘님👍
    요약정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세미나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꼴을 절대 못 보는^^ 저로서는, 점점 더 이 세미나가 궁금해지네요.
    시즌3때는 여기 한번 탑승해볼까요? ㅎ

    • 2023-06-03 00:07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 2023-06-04 09:12

        ㅋㅋㅋ...제가 사과드릴게유^^....없던 일로다가!

  • 2023-06-02 11:07

    철학학교의 고수 아렘샘은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세미나 도중 개인 사정으로 퇴장했음에도 번개 속도로 후기를 올려주셨네요.
    그리고 출발은 까칠한 느낌이지만, 훈훈한 마무리까지.
    튜터 정군샘, 요요샘과 함께 중간중간 개념을 잡아줘 방향타 역할을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세미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각자가 질문 2-3개를 올린 후 그것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방식.
    처음 경험하는 건데 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 한 사람이 발제문을 써오고 그걸 토대로 토론하기 2) 돌아가며 한 문장 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그걸 요약한 뒤 자기 의견 덧붙이기 3) 한 사람이 요약 정리를 올리고 질문 중심으로 토론하기 등 전형적 세미나 방식과 다르지만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이당 시절 스누피들 세미나에서는 강독식 세미나를 해봤지만, 저는 지금 스피노자 세미나 방식에 더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읽은 것 중에서 질문을 만들어보고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심을 잡아주는 분들이 있어 가장 걱정했던 '삼천포로 빠지는' 상황도 별로 없는 것 같구요.
    '세미나=요약정리' 생각만 조금 내려놓으면 질문지 해결 방식도 나름 좋은 선례를 만들 듯합니다.
    무질서의 질서. 우리들의 안드로메다는 실재 그 자체로 '완전함'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

  • 2023-06-03 13:20

    이번 세미나에서 느낀 점은...음...목요일에는 밥을 많이 먹어야겠다였습니다^^ 10시 15분을 넘어가자 정말 쓰러질 것 같은 저를 붙들어 놓느라 힘들었습니다. 철학학교 샘들은 철학만 잘 하시는 게 아니라 체력도 좋으신 것 같아요^^
    세미나 시간 중에 "질서"라는 말이 많이 등장했는데요, 저는 이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연장속성은 연장속성의 질서가 있고, 사유속성은 사유속성의 질서가 있으며 이 둘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무한양태는 무한양태대로의 질서가 있고, 유한양태는 유한양태의 질서가 있으며 이 둘을 서로를 생성시키지는 않잖아요. 아렘샘 말씀처럼 우리 세미나는 중구난방이지만, 우리 안에도 질서가 있잖아요. 이런 질서라는 것은 어떻게 생성되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제가 다음 주는 출장이라 결석이지만 언젠가 한번 다뤄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 2023-06-03 15:15

      헉!! 체력...ㅠㅠ 꼭 철학학교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두통이 심해져서 어제 오늘 침맞았습니다.ㅋㅋ

  • 2023-06-03 14:56

    우리 셈나 카워드가 '성급함'이었다면 아렘샘 후기의 키워드는 '셈나 보다 두배 재밌는' 인듯.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2부는 그런 류의 생각이 자꾸 떠오르네요.

  • 2023-06-03 15:08

    저는 여전히 정리11의 따름정리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신은 무한한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정신의 본성에 의해 설명되는 한에서 또는 인간 정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한에서는>... 의 경우에 신이 인간정신의 본질을 구성한다면, 그 경우 신이 갖는 인간정신의 관념은 적합하고 참되겠지요. 이 경우는 인간정신이 무한지성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게 아닌가요??)
    그런데 <그리고 우리가 신은 인간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한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인간정신과 동시에 그것과 다른 것의 관념도 갖는 한에서>...의 경우에는 이 경우 인간정신은 실재를 부분적으로 지각하거나 부적합하게 지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따름정리가 분명하게 말하고 있고, 당연히 납득이 갑니다.)

    그러니까 따름 정리에서 <그리고>로 연결되는 부분은 뭔가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저는 <그리고>를 <그런데>로 읽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 헷갈리네요. 바로 이어지는 주석에서 스피노자가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서부터 독자들은 정지하게 될 것이며, 그들을 멈추게 만드는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기대고 싶군요.ㅎㅎ 아직 충분히 납득되지 않아서 여전히 이 질문에 붙들려 있습니다.^^ 이 따름정리에는 왜 증명이 없는 것일까요?ㅠㅠ 아, 누가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으면!!ㅎㅎㅎ

    • 2023-06-03 16:16

      '이로부터 인간 정신은 신의 무한 지성의 일부라는 점이 따라 나온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 정신이 이것 또는 저것을 지각한다고 말할 때, 이는 신은 무한한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본성에 의해 설명되는 한에서, 또는 인간 정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한에서 이 관념 또는 저 관념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일단 이 문장을 보면, '인간 정신은 신의 무한 지성의 일부'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떤 개체를 보고, 그것에 대한 관념(사유의 양태)을 인간이 갖는다면, 그것은 동시에 신에게도 어떤 '관념' 한가지가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양태는 실체의 변용들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이런 저런 것을 지각' 즉 '이런 저런 관념을 갖는다'고 말할 때, 신 역시 그것이 '인간 정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한에서 이 관념 저 관념을 갖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이미 신은 '전체', 인간은 '부분'이라는 도식이 성립됩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그리고'로 이어져도 어색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환'이라기 보다 '보충' 내지는 '확언'이 따라오는 것이랄까요.

      '그리고 우리가 신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한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인간 정신과 동시에 그것과 다른 것의 관념도 갖는 한에서 이 관념 또는 저 관념을 갖는다고 말할 때 이는 인간 정신은 실재를 부분적으로 또는 부적합하게 지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리고, '신'은 단지 '인간 정신의 본성을 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신은 인간 정신을 포함하여 '다른 것의 관념도 갖'죠. 그런 한에서 '인간 정신은 (신에 비해) 실재를 부분적 부적합하게 지각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를들면 인간인 한에서 우리는 '철학학교'에 대한 '관념'을 저마다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정군의 관념이 a, 요요샘의 관념이 b, 세븐님의 관념 c.... 이렇다고 했을 때, 우리 각자는 소문자 관념만을 갖지만, 신은 그 모든 것과 더불어 더 큰 관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의 지각은 '부분적이거나, 부적합합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멀리있는 사물을 볼 때, 인간은 그것이 실제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것으로 지각합니다. 그런데 신은 그 '작게 보는 관념'과 동시에 그 사물의 '실제 크기에 대한 관념', '중간 크기로 보이는 관념' .... 무한히 많은 관념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적합하게' 지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일단은 이게 제가 이해한 정리11의 따름정리이옵니다.

      • 2023-06-07 06:56

        '인간 정신은 신의 무한지성의 일부'라는 2부 정리11의 따름정리와 맥락이 비슷한 내용을 찾았습니다. 4부 정리4의 증명을 보면 "독특한 실재들, 결과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역량은 신 또는 자연의 역량 자체인데, 이는 이 역량이 무한한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현행적 본질에 의해 설명되는 한에서 그렇다. 따라서 인간의 현행적 본질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한에서의 '인간의 역량은 신 또는 자연의 무한한 역량' 곧 신 또는 자연의 본질의 일부'다."입니다. '인간 정신'이 '인간의 역량'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을 뿐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을 양태들로 표현하게 되고, 결국 우리(인간) 양태들을 통해 펼치는 한에서 '신의 일부'라는 말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 2023-06-03 18:10

    아. 우리 세미나가 그런가요. ㅎㅎ 세미나 해설가이십니다.
    형은샘이 체력적 한계를 느끼셨던 10시 15분경 바로 그때, 정리 7과 8을 붙들고 홀로 중구난방을 시전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제 중구난방이 전체 세미나의 일부로서 그러한 것일 따름이었다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적합에서 적합으로 조금은 옮겨 갔나요?ㅎㅎ 세미나 해설의 신께서 좀 알려주세요. ㅎ

    저는 정리 7의 '실재'가 '물체' 즉 연장 양태가 아니라 '실재(res, thing)'라는 것이 이번에 눈에 띄었어요. 아니면 전에도 한 번 아하? 했던 것을 까먹고 다시 아하?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제가 저번에 "온 우주의 얼굴"이 스피노자가 한 말인 걸 세미나 때 샘들 말듣고 알았는데, 나중에 <스피노자 서간집>에서 세븐샘이 알려 주신 해당 서신을 찾아서 펴보니 과거의 제가 언제 줄도 막 그어놓고 강조도 해놓고 그랬네요!)

    하지만 '관념'이나 '관념의 관념' 같은 것은 이번 세미나 덕분에 좀 더 분명해진 것 같네요. 제가 '관념에 대한 관념'이라는 사유 양태에 대응하는 연장 양태가 어떤 거냐라고 물을 때(저는 아마도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유속성과 연장속성이 일대일 대응을 의심했고요) 정군샘이 그것은 신체의 변용에 대한 관념이라고 설명을 덧붙이셨지요. 그 의미를 세미나 끝나고 나서야 감을 잡았어요. 가령 그 사유의 주체가 인간이라면 내가 관념 A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할 때, 즉 새로운 사유 양태(관념 A에 대한 새로운 관념 A')가 생겨날 때 제 신체에는 동시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서 새로운 연장 양태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세미나 시간에 특히 헤맨 부분은 사실 정리 8이었는데요 "~~~~와 마찬가지로 실존하지 않는 독특한 실재들 또는 양태들"에 눈길이 꽂혔어요. 실존의 방식이 두 가지였어? 하는 것 때문에요. 그러면 가령 잠재적 실존이 있고 현행적 실존이 따로 있는 거야? 라고요. 이 질문에 꽂히니 따름정리의 '지속'은 '지속'하는 방식의 실존으로서 실존의 한 종류로 보이고 주석의 직사각형 E와 D는 특별한 실존이 가정되는 또 다른 실존의 한 종류.. 뭐 이렇게 연결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제가 지금 나름 내린 결론을 거칠게 말하면 다른 종류의 실존이 있다, 입니다. 어쩌면 관념의 종류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까 1) "독특한 실재들 또는 양태들의 형상적 본질들이 신의 속성들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에서만 실존하는 독특한 실재들 또는 양태들"에 대한 관념들이 있고, 2) "[그러한] 한에서가 아니라 또한 지속된다고 말할 수 있는 한에서도 실존하는 독특한 실재들 또는 양태들"에 대한 관념이 있고요(여기서 지속은 유한한 경우도 포함이고요). 간단히 말하면 1) 신의 무한한 관념이 실존하는 한에서만 실존하는 관념, 2) 1)번 방식 더하기 지속되는 관념. 주석의 직사각형 E와 D에 대한 관념은 따름정리의 2)번 방식의 관념의 예시이고요.

    위의 정군샘 대댓글의 대문자 관념, 소문자 관념이기도 하겠지요.

    이 두 방식을 혹시 잠재적/현행적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여전히 떠오르는데 저는 지금으로서는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행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뭔가 개운치는 않습니다.

    제가 길게 숙제했으니 한마디 보태다 덤터기 쓴 정중동 샘 숙제도 제가 한 것으로.. ㅎㅎ 정중동 샘.. 숙제 부담 없이 댓글을 남기시어요. ㅎㅎ

    • 2023-06-06 01:34

      제가 갖고 있는 교재를 보면 1) "실존하지 않는 독특한 실재들 또는 양태들에 대한 관념"의 예시로 용, 유니콘이 메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2)"지속된다고 말할 수 있는 한에서도 실존하는"경우는 구체적인 소, 말 따위를 지칭하는 걸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주석]의 유일하게 실존하는 직사각형 E,D은 구체적인 소, 말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나머지 수많은 직사각형들은 실존하지 않지만 독특한 양태들인 용, 유니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처럼 정리8과 증명, 따름정리, 주석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석 첫문장에 왜 "나로서는 분명히 내가 말하는 이것을 적합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사례도 제시할 수 없을 터인데, 이는 그것이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 유일하다는 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네요ㅜㅜ
      (느낀점에 대한 후기가 아닌 내용에 관한 댓글을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 2023-06-06 12:18

        정리 8과 그 세 친구들의 유기적 연결에 동의합니다 ㅎㅎ

        재선샘께서도 "실존하는"과 "실존하지 않는"으로 고민을 하신 것 같아 반갑습니다. 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아주 미묘하게 복잡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용이나 유니콘은 실존하지 않는 독특한 양태이지만, 그것을 내가 상상하는 순간 그것들에 대한 관념은 하나의 지속하는 사유 양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어나는 신체의 변용 또한 지속하는 연장 양태가 되겠고요. 그런데 실은.... 그 누군가가 애초에 용이나 유니콘을 상상하기 전부터 그것들에 대한 관념은 신의 무한한 관념 속에 실존했을 것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연장 양태도 그랬을 테고요. 그래서 저는 실존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썼어요.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가 "실존하지 않는"이라는 말을 쓸 때는 "신의 속성 안에 파악되어 있는 동안에만 실존하는"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실존하지 않지만 독특한 양태들은 꼭 용이나 유니콘 같은 순전한 상상속 동물이 아니어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소의 코에 구멍을 뚫는 것을 상상하면 그것 역시 '실존하지 않지만 독특한 양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 스피노자는 1부 정리11 증명의 "네모난 원"을 실존하지 않는 예로 들고 있는데 이건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하지만 신은 이것에 대한 관념도 갖고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또한 "네모난 원"은 애초에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라....

        재선샘이 궁금해하신 문구에 대해서는 저도 궁금해요. 스피노자가 스스로 들고 있는 원과 직사각형의 사례가 최선을 다한 설명이기는 해도 정리 8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직사각형들 중 두 개만 실존하는 것이 있을 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날 세미나에서 다른 샘들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정은 가정이니까, 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재선샘이 말씀하신 용이나 유니콘의 사례도 정확한 사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 이것 역시 생각할수록 시간만 몽창몽창 지나갑니다. ㅠㅠ

    • 2023-06-08 22:10

    • 2023-06-08 22:13

      헉헉 거리느라 호수쌤의 "형벌감량 배려문"에 답도 이리 늦었습니다~ 정말이지 한계를 거듭하며 한주한주 이어가봅니다 🤦_다양한 차원의 한계(모호함에 대한, 인내심에 대한, 조바심!에 의한);;
      고마워요~호수샘 흐흐(이렇게 댓글도 해결하는 것으로;)

  • 2023-06-06 20:14

    후기 읽다가 세미나 다시 하는 기분........ㅎㅎㅎ

    • 2023-06-07 01:39

      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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