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론> 2부 후기 영혼의 동요, 그리고 나의 동요

스르륵
2023-04-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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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얼굴에서 드러나는 기본 감정을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 등 의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고 하는데, 쫌 특이한 점이라면 행복 하나만 빼면 모두 거의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거다. 이에 비해, 앞서 데카르트는 그의 저서 «정념론(원제: 영혼의 정념들)»(1649)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정념,passion)에는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의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굳이 두 사람의 기본 감정에서 차이점을 찾자면 데카르트에게 감정은 인간의 '영혼'에만 속하는 현상이지만, 다윈에게 감정은 바로 '그' 인간이 고등 영장류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달라도 한참 달라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윈에게도 데카르트에게도 감정은 우리의 육체와 심리 상태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전략을 알려주는 유용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아마 접점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념론 2부는 정념의 수와 순서에 대해, 그리고 기본적 정념 여섯 가지에 대한 '무수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념'으로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 지점에서 사랑, 미움, 기쁨, 슬픔은 어쩌면 '경이'와 '욕망'에서 나온 파생태가 아닐까 질문이 나왔는데, 이는 무엇보다 경이(admiration)라는 것이 무규정적인 인식 전의 반응이라 어쩌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데카르트가 정의해 놓은 각각의 정념들의 정의와 비교했을때는 또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어쨋든 여기서 '정념'은 모두 신체와 관련된다. 신체와 합일이 되었을 때 정신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여 여기서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정념이 이전의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정념과는 어떻게 다른가 궁금할 수 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철학자들이 정념을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본 것, 그리고 욕정적인 욕구와 분노적인 욕구로만 정념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그리고 무한 종류의 정념을 가정하는 데카르트와 그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데카르트 기본 정념에서 '경이(admiration)'는 좀 특이하고 생각할만한 여지를 던져주는 지점이 없지 않았는데, 아마 근대적 주체가 대상 세계를 만나는 첫 감정으로서 중시여겨진듯 하나  '경이의 성향을 지니지 않은 이들은 아주 무지하다'는 데카르트의 의견은 위험한 구분이지 않을까 라는 의견과, 또 이와 비슷한 문제 계열로 노인이나 아이가 특별히 잘 우는 경향을 가진 것이 정신의 기질적 문제라고 보는 데카르트의 시선은 오늘날의 우생학적 관점이 느껴진다는 지적도 흥미로웠다.

 

 현대에서도 중요한 정념인 사랑은 데카르트에게 있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그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육욕의 사랑과 박애의 사랑 구분이 필요치 않는 정념이고, 오직 대상과 결합하려는 몸에만 의존하는 영혼의 동요라는 점에서 당혹해 하신 분도 계셨다. 그러나 그릇된 기쁨이 차라리 올바른 슬픔보다 낫다는 것, 그러나 그릇된 사랑은 올바른 미움보다는 나을 수 없다는 성찰들, 그리고 보수적으로(?) 살아가는데는 미움이 사랑보다는 더 우선적이고 기술적으로 필요한 정념이라는 지적(다윈이 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거론한 것도 아마 조금은 계열적으로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에서 그가 단지 정념을 기계적 과학적 방식으로 설명하고 바라보는 것이 아님이 느껴졌다. 물론 눈물이나 비(rain)나 다 같은 증기의 원리로 생성된다고 주장하는 지점에서는 역시 그는 정말 기계론자가 틀림없구나 하는 탄식 아닌 탄식이 나왔지만 말이다.

 

 결국 어쨋든 정념은 모두 외적 대상의 자극에 따라 신체 속에서 일어나는 동물 정기의 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영혼의 동요'로서, 정신 자체가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자각되지 않기에, 정념은 정신, 즉 영혼 그 자체의 것으로 다루어지는데, 여기서 이성적 의지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채 일어나는 정념의 수동성이 자유의지의 능동성과 합일되어야 하는 필요성, 즉 '자유의지'에 의해 정념이 올바로 규제되어야 한다는 도덕의 문제가 생겨난다.

 

 하여 여기서 데카르트가 신체를 통해 정념을 설명하면서도 결국 잘 사는 것의 윤리적인 문제는 다시 영혼으로만 설명하는게 아닌가하는 문제도 제기되었지만, 어쨋든 이 문제는 '의지(욕망)를 열심히 담금질하면 감정에서 벗어나고 감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란' 물음을 지나 '모든 심리적 어려움은 감정적 억압에서 온다'는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 계보가 정론화한 '감정적 분출'이 대세가 된 현대의 문제적 지점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나는 당분간 계속 흥미롭고 싶다. 그렇게 분출된 감정의 진정성 문제는 차치하고 말이다.

 

 세미나 동학샘들은 «방법서설»과 «성찰»보다 «정념론»이 재미(?)가 없다고 투덜(?)거리셨다. (속으로 하는 말이지만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소리였다.) 나로서는 어느 나라 말인지, 질문은커녕 알아듣기에도 벅찬 가독성이 너무 힘겨운 원문 텍스트들이었던터라 어찌되었건 정념론까지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견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테일하고 섬세한 독해와 질문들에 솔직히 '경이'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만땅 받은 것은 안비밀이지만, 어쨋건 철학의 무게와 지적인 열정과 '기쁨'의 현장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와의 만남은 방법적 회의와 코기토보다 더 멋진 동요적인(?) 만남이었던 건 사실이다. 

 

 다음 주 정념론 3부는 세션샘의 기막힌 제안(사랑해요 세션쌤)으로 메모는 생략하고 질문이나 전체적인 데카르트 감상을 적어주시면 된다. 그러나 벌써 동학쌤들의 눈은 데카르트를 지나 스피노자로 이글거리고 계신다.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건이지만) 시즌2,3 스피노자 읽기가 5월 11일 드디어 출정한다. 모든 것을 보편타당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테카르트와 끊임없는 변화를 가정한다는 스피노자! 중간 탑승을 열렬히 환영하는 철학 학교 열차에 탑승하시면, 말로만 듣던 차분하고 지적이신 호수샘과 예리하나 뭔가 따스하신 세션샘과 모르는게 뭘까 싶은 아렘샘과 감이당에서 오신 새로운 얼굴 형은샘과 재선샘, 그리고 기타(!) 공부방회원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8
  • 2023-04-21 09:31

    "예리하나 뭔가 따스하신 세션샘".......ㅋㅋ

  • 2023-04-21 14:05

    오잉…… ㅎㅎ 홍보멘트가 뭐랄까… 좋으네요 ㅋㅋㅋ 세션샘 수식어도 탐나는데요 ㅎㅎ

    정념론.. 참 오묘해요. 저는 데카르트식 블랙유머로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 혼자 이따금 웃었어요. 간지럼에 관한 고찰도 넘 진지하지 않나요? ㅎㅎ 안구에 습기 찬다는 말도 지상렬보다 데카르트가 먼저 했다니…

  • 2023-04-21 15:05

    작년부터 감정사회학을 열공하고 있는 스르륵샘에게 17세기 철학자들의 정념에 대한 탐구가 의미있을 거라고 어필했는데
    제 기대와 예상이 얼추 맞았나요?^^ (스륵샘, 저는 진심이었답니다.^^)
    호수샘이 몇몇 대목에서 가끔 웃었다는 것처럼 저 역시 사랑의 정의를 읽으면서 데카르트가 경험한 정념적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상상해보게 되더라고요.
    데카르트와 연인관계였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도,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는 것도 '사랑'을 읽으며 검색으로 알게되었죠.

    • 2023-04-23 07:03

      ㅎ 요요쌤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 2023-04-22 01:19

    아직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시간이 한차례 남았습니다. 평면적이고 표피적인 데카르트 그 아래를 같이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분위기는 작별 인사같은데, 그저 짧은 중간 방학을 너무너무 기다린다고 여겨주시길…

    참 스르륵샘 스피노자 저도 그저 그렇지만 데카르트 읽은 김에 한세트인 스피노자도 같이 하시지요. 스피노자를 특권화하는 시선에 맹렬하게 저항할 생각입니다. 구경하는 재미 보장합니다.

  • 2023-04-22 22:29

    저는 '아내의 죽음은 남편에게 슬픈 정념을 유발하지만 영혼 깊숙한 곳에서는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는 데카르트식 블랙 유머(?)가 뇌리에 남네요.. 물론 대부분은 정념에 관한 건전하고 좋은 내용이 많아 좋았습니다ㅎㅎ 따뜻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04-23 00:05

    정념론은 묘한 책인 것 같아요. 스르륵샘이 정리해주신 것처럼 한편으론 아주 철저한 기계론의 측면들을 보여주고,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영혼으로 환원하는 듯한 인상도 주니까요. 정군샘 말씀대로 재밌는 책이 아닌데 ㅋㅋ 맨날 그렇지만 셈나는 무지 웃겼습니다. 전 '그런데요'가 이렇게 웃긴 말인줄 철학학교에서 처음 알았죠. 기막힌 농담과 치열하고 진지한 논쟁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셈나죠. 그나저나 스르륵샘이 말씀하시니 다윈의 '동물과 인간의 감정표현'을 목차라도 찾아보게 되네요^^ 읽을 엄두는 안나지만. 전 왠지 16-18세기 박물학자들이 너무나 정겹더라구요. 이름만 들어도 반가웠습니다~

  • 2023-04-25 09:52

    댓글이 늦었습니다 ㅠ. 데카르트의 동요, 스르륵샘의 동요, 그리고 저의 동요까지, <정념론>은 그야말로 '동요' 대잔치군요. 사실 그 '기막힌 제안'의 놀라운 점은, '제안받은 자' 조차도 반가운 제안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맞은 격이랄까요 ㅎㅎㅎ.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저는 앞의 두 텍스트에 비해서 꽤나 지루한 <정념론>을 읽은 게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세미나 게릴라께서 저항을 선언한 '스피노자'에 대한 특권적 평가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ㅋㅋㅋ), 여느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 역시 사유의 측면에서 꽤나 다층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나 저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상식의 대부분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혼자서 <철학의 원리>를 조금씩 보고 있는데요, 세미나에서 읽은 것들과 함께 생각해 보면, 데카르트는 자기 이후의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상을 얻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모든 학문적 탐구의 근거를 새로 놓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피노자 빼고 데카르트 반년, 라이프니츠 반년 이렇게 세미나를 구성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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