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론> 1부 후기-극과 극은 통한다?

여울아
2023-04-13 23:11
456

<정념론>을 아직 읽기도 전인데, 아렘님이 "재미없다"고 초를 뿌렸습니다!! 

그 카톡일 읽고나서인지,  정말 재미가 없더군요. 신경생리학적인 내용들이 읽어도 잘 들어오지도 않고, 각 항목들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세미나에서는 여러 사람이 <정념론>을 혁신적으로 읽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 요약을 맡기는 했지만, 방법서설과 성찰에 이어 <정념론>이 뭔가 아귀가 맞나 의문이 드는 정도로만 저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후기를 쓰려고 보니, 세미나에서 들은 얘기들 가운데, "극과 극은 통한다"는 정군 샘의 말에 더욱 깊은 공감이 됩니다. 

 

데카르트의 연장 실체는 물질에서, 사유 실체는 영혼에서 각각 배타적 독립성을 확보함으로써 이들은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이 각각은 필연적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체라는 "제3의 실체"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 전에 가졌던 문제의식은 "왜 몸과 영혼이 교류하는 장소가 필요한가?"입니다. 

송과선이라는 샘은 너무나 물질적인 장소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식물혼도 동물혼도 아닌, 오로지 인간의 영혼만을 인정하는 데카르트에게 뇌 안쪽 깊숙이 자리한 곳은 지나치게 옹색한 것 아닌가 싶었거든요. 물론 신경생리학적으로 인간을 읽어낸 것은 혁신적이었지만 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세미나를 마치고 나니, 데카르트의 <정념론>은 앞서 성찰까지 보여줬던 이성의 문제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운동)까지 설명해내면서 요요샘이 말한 데카르트 "인간론"을 완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으로써 데카르트가 의도했던 아니든 간에 이후 철학은 한편으로는 기계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으로 갈래(분열)지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에 대한 기존 비판 몇 가지에 대해서도 <정념론>은 생각해볼 거리가 많습니다.  

  • -심신이원론 맞나?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이 둘의 배타적 분리에만 머물면 안 되겠죠. 
  • -자유의지 맞나? 데카르트하면 스피노자와 대비해서 자유의지를 많이 거론했는데, 그는 의지가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점도 말하면서 자연과 습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고요.  
  • -동물기계론 맞나? 정념의 기계적(신경생리학적) 작동이 상세해질 수록 오히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세미나에서는 데카르트도 동물이 아픔을 느낀다(정념)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는 2부를 읽습니다. 숙제는 요약문 없이 각자 1p이내 메모글을 써오라는 군요. 각자 질문 올리는 것도 해야 합니다. 

 

또 다른 공지는 이번 시즌부터 마지막 한 주는 에세이발표를 하자고 정군샘이 주장하십니다. 저와 세션이 반대했지만 다른 분들의 반발이 크지 않은 관계로 통과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가 끝날 때마다 1주씩 에세이발표주간을 일정에 넣어주셔야겠습니다. 가령 이번엔 9주에서 10주로 한 주 늘고, 5월 4일에 에세이발표가 있겠습니다. 

(앗, 이때 1234 원고쓰려고 했는데...)

댓글 11
  • 2023-04-14 00:11

    에세이는 쓰시고 싶으신 분들만 쓰시는 걸로... 저는 아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아울러 저는 무언가 써서 내지 않을 것을 미리 밝힙니다.

  • 2023-04-14 08:27

    역쉬 아렘이 있어아....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그리워요.
    근데, 여울아님. 후기 올린 시간이 신기록 아닌감?
    월드컵에서 첫골 신기록이 8초인데...그에 버금가는..

    여울아님 후기처럼, 처음엔 이게 뭐야? 성찰에서 얘기햏던 것과 다르잖아? 하며 숨은 그림 찾기하다가, 그 당시로 돌아가 생각하니 왜 데카르트인지 조금 느끼겠더라고요.
    그 뒤 철학자들에게 항상 비판당하고 있지만, 그만큼 현대적 사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 2023-04-15 19:40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데카르트'만 가지고 글을 써보겠나.... 하는 생각에서 드렸던 말씀입니다만, 생각보다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파를 결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ㅎㅎㅎ. 안 하죠 뭐. 안 합니다. 대신에 연말 에세이에 대한 기대감을 드높여 보죠.

    저는 세미나 때도 누차 말씀드렸지만, <정념론>의 데카르트가 참 묘합니다. 일면 <성찰>의 데카르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가도, 완전히 다른 것 같은 느낌(삼원적 실체, 의지와 정념의 단일성, 인식에 있어 정념의 우선성 따위들)도 받고요. 말하자면, '우리가 알던 데카르트'와는 분명 다른 결을 갖는 데카르트를 만난 기분입니다. 왜 그렇게 다르게 읽히는 걸까.... 생각해보면 가장 간단하게는 '정념'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분법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정념'을 탐구하다보면 결국에는 <정념론>의 데카르트 같은 길, 좀 더 노골적으로 '정념의 철학자-스피노자'와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 역시 '현대'의 선구하고 하는 스피노자 못지 않게 '현대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세미나였습니다!

  • 2023-04-15 21:50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날리면 그저 이신론 또는 무신론에 기반한 기계론적 코스모스 세계관으로 바뀌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사유 실체를 날려 이원론을 버리고 연장 실체만으로 일원론을 만들면 정신을 따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사유 실체를 확장한다면, 그러니까 사유하는(=의식하는) 존재의 범위를 동물, 식물에서 급기야 무생물까지 만물에 적용하면 범심론(panpsychism)으로까지 변신이 가능한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말 그대로 '변신'일 뿐 데카르트의 <정념론>은 사유 실체이자 연장 실체인 인간의 조건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 조건에서 빚어진 정념들의 행렬을 한번 잘 따라가 보겠습니다.

  • 2023-04-15 22:05

    "데카르트의 철학에는 당대 과학에서 배운 내용과 라 플레슈에서 배운 스콜라 철학의 이원적 대립이 있다. 이것이 데카르트를 비일관성으로 이끌었지만, 완전히 논리적인 철학자보다 풍성한 사상을 형성하도록 자극했다. 데카르트가 일관성consistency을 유지했다면 단지 새로운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가 되었겠지만, 비일관성inconsistency 덕분에 데카르트의 철학은 두 갈래로 뻗어 나간 중요한 철학 학파의 원천이 되었다." 버트런드 러셀《서양철학사,데카르트》
    송과선이나 동물기계론을 보면 데카르트의 과감함이 느껴지는데, 저도 데카르트가 오류 가능성을 다 알면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을 것 같습니다~

  • 2023-04-16 02:09

    정념론의 1부는 생각보다 풍성했습니다. 참석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올린 요약문에서 '너무너무너무너무...' 를 남발한 이유는 결합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철학적 선택이었습니다. 영혼과 신체의 결합이란 말을 하는 순간 기계적으로 어떻게란 비난으로 떨어지기 쉬워서 그걸 피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울러 말만 안했지 '인간실체네' 이말을 하고 싶었지만 역시 조심스레 인간론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올려주신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여러샘들은 제 조심성을 훨씬 뛰어넘어 급진적으로 읽으시더라구요... 대단들 하십니다.

    아울러 원제는 '영혼의 정념들'이란 사실을 역자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관례에 따라 '정념론'이라고 옮겼다는군요... 원제가 훨씬 나아보이지만.... 뭐라뭐라 핑계를 대는데 많이 팔아야 하는 에세이나 소설도 아니고...철학책이 제목까지 바꿀 일인가 싶습니다. 아마 역자가 너무 정념에 휘둘려 알고도 바보짓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2023-04-16 12:32

    문탁 철학세미나에서 철학책 몇권 읽은 게 제 철학 공부의 전부인데.. 이번에 데카르트를 읽으면서 철학에 대한 무의식적인 선입견이 확실히 깨지는 걸 느낍니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세울 때 나름 완벽한 논리체계를 구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읽어본 철학책은 그렇지 않다는 걸 여지없이 보여주네요.
    체계를 세우려고 하든 체계를 부수려고 하든 어딘가 구멍이 있기 마련이고, 그 구멍이야말로 그 철학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라캉이 말한 빗금쳐진 주체처럼 말이에요. 주체는 텅빈 구멍이라고 했던가요?(제 맘대로 지어낸 것인지도..^^)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가 선배철학자들을 비판했던 것도 훨씬 더 납득이 가는 것 같아요.
    물론 들뢰즈에게도 그 자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구멍이 있겠지요.(지난 시즌 세미나에서 논란과 탄식을 야기한 곳들!!)
    스피노자로 가는 관문 쯤으로 생각하고 데카르트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기쁘고,
    데카르트로 인해 떠오르게 된 물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번 시즌에서 얻은 수확인 것 같아요.
    이제 슬슬 김상환샘이 데카르트의 초월론을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려고 하니.. 이것 참! 어쩌지요?^^ 대략난감입니다.ㅎㅎ

    • 2023-04-16 14:43

      네, 즐겁고 기쁩니다. 작년에 들뢰즈를 통해 철학자들을 대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도록 '강요'되었던 것도 같아요 ㅎㅎ 데카르트를 읽으니 이제껏 따로따로 떨어져 놀던 고대 철학자들과 중세철학 그리고 근대와 그 이후의 철학이 조금 더 이어지는 느낌이 들고요. 들뢰즈가 집중한 주제와 개념들, 그리고 그 개념들에 붙인 이름들을 생각할 때 철학사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 2023-04-16 14:49

    정념론을 펼쳤다가 문득 지난 시간에 passion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던 게 생각이 나서 어원을 찾아봤어요. 저는 스피노자 읽을 때 이게 passive와 연결해서 막연히 '수동'의 의미가 있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구글에서 어원을 찾아보니 라틴어 pátĭor(당하다)가 나오기는 하네요(출처 옥스퍼드 사전).

    다운로드.png

    • 2023-04-16 20:10

      번역하신 김선영샘 강의를 유툽에서 보니 정념, 'passion'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아홉가지 속성 중의 하나인 수동, 'pathos'에서 그 출발의 기원을 가진다고 하시네요~

  • 2023-04-16 21:52

    여울아샘, 후기 재밌어요. 갈수록 후기를 흥미진진하게 써주시는 듯. 우리가 몰랐던 데카르트를 알게 해주는 새로운 책인 건 맞는데, 와 전 읽기는 엄청 괴롭네요. 집중이 잘 안돼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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