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학교 시즌1] 데카르트 [성찰] 제5, 제6 성찰 요약과 질문

김재선
2023-04-04 23:51
590

제5성찰 요약 올립니다 

댓글 14
  • 2023-04-05 01:17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정념론은 스피노자로 가기위한 징검다리라고 하니 우리는 얼추 데카르트를 다 읽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은 누구나 데카르트를 읽는다기보다는 아무도 데카르트를 읽지 않는다에 가까울테니 이런 말이 지나친 허언은 아닐 것입니다. 제 질문은 데카르트 전반에 관한 질문입니다. 선생님들은 어디쯤 계십니까? 성찰을 요약을 좀 해보겠습니다. 의심합니다. 이 의심으로부터 사유하는 정신의 현존이 명석판명하다는 게 드러납니다.이어서 속이지 않는 신의 현존이 명석판명함이 참임을 보증해줍니다. 명석판명함이 참임이 드러나며 우리 밖에 있는 물체도 존재함이 드러났습니다.

    1.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기계론의 바탕이 되는 기획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영혼 불멸이니 신이니 이런 미망에 사로잡힌 데카르트 1이 있습니다. 데카르트2는 신이니 영혼불멸이니 이건 그냥 편의적 작위로 여겨보는 겁니다. 그는 기계론과 자연학의 진정한 구루입니다. 1은 지나친 폄훼고, 2는 좀 거시기한 상찬입니다. 샘들은 어느 데카르트에 꽂히셨습니까?

    2. 친절한 번역자 덕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세 번의 출간에서 매번 제목이 바뀐다는 겁니다. 매번 공통인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이란 말은 빼고 생각해보시지요. 제목은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 증명됨’-->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구별이 증명됨’ --> ‘여기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실재적 구별이 증명됨’ 으로 바뀝니다. 제목이 종교적 색채에서 철학적 색체로 변해갑니다. 전 이것을 데카르트의 생각이 변했다기보다 점점 하고 싶은 말쪽으로 제목이 변해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여러샘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데카르트1보다는 데카르트2에 가까워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 2023-04-05 02:21

    6성찰 요약입니다.

  • 2023-04-05 02:27

    118쪽 "만일 이 능력들이 현존한다면, 그것들은 지성적 실체가 아니라 물체적 즉 연장적 실체"라고 하는데요. 제가 뒤져봐도, 물체적 존재의 실체가 왜 '연장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정하자면, 물체의 '연장성'을 제외한 나머지 성질은 모두 가변적이어서, 그러니까 '판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오히려 '지성'이 판명하게 이해 가능한 것만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어떤 신적 지성이 있다면, 그에게는 '연장'만이 '판명'한게 아니라, 물체의 다른 성질들도 그럴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인간의 '사유(능력)'를 기준으로 '물체'의 '실체'의 실체를 '연장'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불경스럽게) 어쨌든, 아마도 이걸 '수학주의'로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6성찰에 이르러서 보면, 데카르트의 신은, ‘사유’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하고, 더불어 물질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드러납니다.그런데 신은 왜 그런 일들을 했던 걸까요? 지금까지 이야기를 놓고보면 우리는 신이 이 세계를 왜 창조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텍스트 어딘가에서 데카르트가 ‘왜’에 대해 답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세계창조의 목적’이라는 목적론의 함정에 걸리게 됩니다. 이는 '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미 '완전한 신'에게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은 그 '완전함'에 '결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듯 보입니다만, 어쨌든, 자기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 자체로 어떤 '제약'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신’이 이런 저런 ‘일’들을 의지적(목적의식적)으로 해서도 안 되고요. 심지어 ‘의지’는 ‘오류’의 근원이니까요. ‘신’이 인간에서 어떤 관념을 의지를 가지고 넣어줬다면, 신은 '오류'를 예비하고 있는 셈이고, 이는 신의 정의에 맞지 않습니다. 요컨대, 데카르트가 말하는 '완전자'로서의 '신'은 '의지'를 가져서도 않되고, 그런 이유로 '세계'를 '창조'해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2023-04-05 14:40

    1.(97쪽) 성찰5에서 '신의 완전성에 현존이 포함된다는 사유로부터 신이 현존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데카르트는 자유와 필연성의 구별을 통해 자기 주장의 정당성의 근거를 끌어냅니다. 데카르트의 주장을 봅시다. "내 사유가 사물에 어떤 필연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사물 자체의 필연성, 즉 신의 현존의 필연성이 나를 그렇게 사유하도록 결정한다. 왜냐하면 말을 날개와 함께, 아니면 날개 없이 상상하는 것은 내 자유이지만, 현존 없이 신을 사유하는 것은 내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본질에 현존이 속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이 주장에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 자유가 아니라 사물의 필연성에 따르는 것이 참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주291에서도 데카르트가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신증명과 자신의 증명은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안셀무스의 증명은 사유의 내용(자유)에서 출발하는 것(그래서 전제가 결론을 유도하는 결과)인 반면, 데카르트 자신의 증명은 사물의 필연성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에게서도 철학의 과제는 자연스럽게 사물의 필연성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정향되게 되는 것 아닐까요?

    2.(112쪽) 데카르트는 감각과 정념은 우리 사유의 수동적 능력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수동적 능력은 나의 바깥에 있는 능동적 능력을 가진 어떤 실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과법칙을 통해 데카르트는 물체적 사물들의 현존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각과 정념은 모호하고 혼동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물체적 사물들에 대한 명석판명한 인식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실험이나 관찰과 같은 경험이 아니라 명석판명한 것에서 시작하는 연역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3. 신존재 증명이 세심하게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마지막으로 제6성찰에서 '물질적 사물의 현존'과 '정신과 신체의 실재적 구별'이 다루어집니다. 신존재증명 없이는 이 두가지를 검토하는데 애로가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데카르트의 존재론이 신의 보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데카르트적 관념론과 심신이원론이 가진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4-05 15:55

    제5성찰
    (질문) 성찰의 흐름이 헷갈리면서도 암호를 넣은 것처럼 미묘하다. 계곡과 산의 관념에서 분리 불가능성한 물질의 본성에서 산/계곡의 현존을 논증하고, 같은 방법으로 신의 관념에서 상상력과는 다르게 신의 완전성(분리할 수 없음도 완정성의 속성)으로 현존을 인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의심한다. ‘내가 신의 현존을 상상으로 덧붙이고 있을지 모른다’(95-96). 그리고는 다시 증명한다. 신의 완전성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다. '최고 그리고 최고 존재자에 대해서 사유할 때마다, (중략) 끌어 낼 때마다, (중략) 최고 존재자가 현존한다고 결론짓는다‘.(p.98) 칸트는 소위 신의 개념안에 이미 완전성을 넣어 놓고는, ’신은 완전하다‘라는 분석명제로써 시작하였다고 데카르트의 (의심의)사유를 비판한다. 읽고 있는 데카르트를 옹호하자면, 그가 말하는 신 ’존재‘는 물질의 존재와는 다른 개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유하고 있을 때만 존재‘하고 있으므로, 신은 완전하다고 믿고 있는 나의 사유속에는 언제나 신은 현존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말이다. 저는 이렇게 읽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 시간 후기의 댓글에서 정군님이 데카르트의 강박증처럼 보이는 ‘확실성의 보증’에 대한 의심이 퍼뜩 따라온다. 왜 그렇게 신을, 신의 완전성을 가져오나? 혹시, 당시 근대철학의 태동기에서 특히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수학의 연역적인 사고를 매번 증명하며 추론할 수 없으므로, 수학적 공리 혹은 명제를 이것은 완전한 신으로부터 온 명석판명한 진리이다로 시작하려고 ?

    제6성찰 사물의 현존에 대하여 사유합니다. 이에 대하여 신을 통한 증명은 이제는 식상합니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의식하는 방식으로 증명하는 부분인데, 상상력이나 기억력을 동반한 상상력으로는 개연적으로만(우연, 착각일 수도 있다) 그 현존을 증명할 수 있어, 감각을 가지고 정확히는 감각과 신체와의 합성(p115)으로 논증해 나갑니다. 정신과 신체를 결합하려고 한 점에서는 놀랍습니다. 다만, 데카르트는 제2장, 정신이 신체보다 더 쉽게 알려진다는 제목에서 그랬고, 제6장에서도 물체의 현존을 신체와 정신의 합성(결합)된 감각으로 증명하지만, 신체를 ‘정돈된 기계’, ‘감각의 담지자’, 정신은 ‘나누어 질수 없는’ 등등 다소 정신보다 하위 개념에 둔 느낌입니다. 심하게는 신체는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기계 정도로만 설명되는 것으로 읽힙니다다. 좀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A와 B가 합성(결합)하려면 A속에는 B가, B속에는 A가 들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동일한 등급으로 그 속성이 녹아있는..... 생물학, 혹은 신경학(뉴런)이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일까요?

  • 2023-04-06 08:57

    지난 주에 제가 데카르트는 근대를 연 철학자가 아니라 중세의 마지막 수호자라고 말씀드렸는데 5성찰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현존하는 것들, 특히 수학과 과학에 대해 사유를 통해 명석판명한 참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신을 증명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여기서 데카르트가 수학이나 과학 그 자체보다는, 삼각형을 알면 천각형도 유추해 낼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 가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능력은 신이 주신 것이다…). 이 능력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과 추론일텐데, 이 두 단어에 대해 데카르트는 98쪽부터 102쪽까지 간간이 언급만 할 뿐, 이 둘에 대해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데카르트의 논리에 따르면 특히 기억이 중요해 보이는데, 기억의 토대 위에 모든 추론이 가능하므로 기억이 흔들리면 다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고, 그래서 “명석판명하게 통견했다는 것을 기억하기만 하면(101쪽)”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의 다른 저작에서 기억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지요?
    (참고: 98쪽 “내가 그 세 각은 두 직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정당하게 추론하게 해주는 것들을 그 도형에 귀속시키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100쪽 “실로, 비록 내가 어떤 것을 매우 명석판명하게 지각하는 동안 그것이 참임을 믿지 않을 수는 없는 그러한 본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만 나는 또한 어떤 것을 명석하게 지각하기 위해 정신의 시선을 줄곧 그것에 고정시킬 수 없는 그러한 본성도 갖고 있고, 또 내가 어떤 것을 그렇다고 판단하게 해준 근거들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는 이전에 내린 판단의 기억이 자주 되살아나는 그러한 본성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만일 내가 신을 모른다면, 내 의견을 쉽게 버리게 할 다른 근거들이 제시될 수 있으며, 그래서 나는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참되고 확실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그저 비항구적이고 가변적인 의견들만을 가질 것이다”, 101쪽 “그러므로 내가 비록 그것이 참이라고 판단하게 해준 근거들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들을 명석판명하게 통견했다는 것을 기억하기만 한다면, 나를 의심으로 몰아가는 반대 근거는 아무것도 제시될 수 없으며…”)

  • 2023-04-06 09:12

    99쪽. "다음으로, 둘 또는 그 이상의 많은 이런 유의 신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일단 내가 하나의 신이 지금 현존한다고 조정한다면, 나는 그가 영원으로부터 현존했고 영원을 향하여 존속할 것임이 필연적임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는 제일원인인 신이 '영원'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하는데요. 신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지금도 증명될 수 없는 불가지론의 영역 같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신의 존재 없이) 파괴 / 창조를 주기로 순환한다고 하면 이는 '영원히' 우주가 순환하는 것이고, 만약 제일원인으로서 빅뱅 이전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시공간의 차원을 벗어난 영원한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원함'이라는 관념은 '실재'한다고 보면 이는 순환논증일까요?

    112쪽. "그런데, 신은 속이지 않음으로, 그가 그 관념들을 나에게 그 스스로 직접 들여보내는 것도,그 관념들의 표상적 실재성을 형상적으로가 아니라 우월적으로만 포함하는 어떤 피조물을 매개로 들여보내는 것도 아님은 전적으로 명백하다."
    - 이 문장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석도 다시 찾아보고 시간이 지나면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물어본다면.. 여기서 표상적이라는 것은 재현(representation)된 관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상은 Form의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월적'의 의미는 '표상적'보다 표상적의 범위 안에서 더 넓고 포괄적인 차원이라는 건가요? 제3논증에서도 나왔던 부분인데 여전히 헷깔립니다. 어쨌든 이 이 문장이 주장하는 것은 형상을 갖고 있는, 실재하는 외부 물체를 통해 우리가 지각한다는 뜻이겠지요?

  • 2023-04-06 11:40

    p98 "그리고 그의 관념을 말하자면 내 정신의 보고에서 끌어낼 때마다 그에게 모든 완전성을 귀속시키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고, 또 이 필연성은 나중에 내가 현존이 완전성임을 깨달을 때 최초, 그리고 최고 존재자가 현존한다고 정당하게 결론짓게 하는 데 전적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이 문장으로 볼 때 현존은 완전성에 귀속됩니다. 그리고 완전성은 신의 속성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렇다면 '현존'도 일종의 신의 속성으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현존'이 과연 속성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현존은 양상이나 양태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어서요. 나아가 현존이 그저 양태에 불과하다면 그럴 때 개념상의 '현존'으로부터 추출된 실제 경험적인(?) '현존'은 뭔가 설명되지 않는 비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2023-04-06 11:56

    매시간 데카르트는 헷갈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은 심신이원론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6성찰에 이르면 그가 심신결합론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13p) 또한 자연은 이러한 고통, 허기, 갈증 등의 감각을 통해, 내가 단지 선원이 배에 있는 것처럼 내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신체와 극히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 흡사 혼합되어 있다는 것, 그런만큼 신체와 어떤 일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도 가르친다... 왜냐하면 확실히, 갈증, 허기, 고통 등의 이 감각들은 신체와 정신의 합일 그리고 흡사 혼합에서 발생하는 어떤 혼동된 사유 양태들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114p)그러나 자연이 가르친 것 같지만, 분별없이 판단하는 어떤 습관으로부터 받아들인 다른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 때문에 그것들은 쉽게 거짓일 수 있다.

    (115p)사실 나는 여기서 자연을 신이 나에게 부여한 모든 것의 결합체보다 더 좁게 취하고 있다... 내가 다른 것은 이런 것이 아니며, 오직 신이 정신과 신체로 합성된 한에서 나에게 부여한 것들만이다... 이 자연이 우리에게 그 외에도, 우리가 우리 외부에 위치한 것에 대해 지성의 사전 검토 없이 이 감각의 지각들로부터 무엇이든 결론짓도록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들에 대해 참을 아는 것은 정신에만 속하고, 합성된 것에 속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 나누고 이들이 서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나는 성찰 제1, 제2에서 정신으로부터 신체를 분리하는 그의 작업(노력)을 이해했다. 그러나 제6성찰에 와서는 왜 이 둘(정신과 신체)은 결합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고 말하고 있을까? 그가 철학자로서 사유에서 신체(감각)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이 성찰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봐선, 그 역시 이것을 경험적으로 부인하는 것 같지 않다. 성찰에 근거해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다시 얘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 2023-04-06 11:58

    휴...다들 질문들이 왜 이렇게 긴가요? 질문들 쫒아 읽는것도 힘듦..ㅠ
    단순한 저의 질문은요...
    97p
    “말을 날개와 함께, 아니면 날개없이 상상하는 것은 내 자유이지만, 현존없이 신을 사유하는 것은 내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그렇게 사유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요? 주석에 나와있는 ‘안셀무스의 신증명’과 데카르트의 신증명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요...앗, 그러고보니 요요샘의 질문에 나와있군요..

  • 2023-04-06 12:17

    데카르트에게 ‘존재’의 의미란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앞서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통해 우리는 데카르트에게 사유와 존재는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나보다 더 완전하고 궁극적으로 최고로 완전한 존재자를 떠올릴 때 이 ‘존재’도 사유와 같은 것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일련의 ‘증명’을 통해 연장적/물체적 사물들도 현존한다고 말합니다. 연장적 사물의 현존 방식은 사유하는 나의 현존 방식과 같은 방식일까요 다른 방식일까요. 아울러 관념의 존재 방식도 같은 것인지 아닌지 궁금합니다. 데카르트는 ‘존재/현존한다’와 ‘실재성이 있다’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을까요, 다른 것으로 보고 있을까요?

  • 2023-04-06 13:03

    끝까지 겨우 어째어째 읽었지만... 질문이라기 보다는 저도 97쪽의 "다시 말해 내 사유가 사물에 필연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 신의 현존의 필연성이 나를 그렇게 사유하도록 결정한다." 와 111쪽의 '왜냐면 신은 나에게 그 관념들이 물체적 사물들에서 내보내진다고 믿는 커다란 경향성을 주었으므로... 물체적 사물들은 현존한다."고 말하는 부분 등에서 필사적인 그의 신의 보증과 신증명사이의 순환적인 모순점이 문득문득 감지되었지만, 어쨋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성실한 그의 방법적 회의는 전체적으로 감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 2023-04-06 16:34

    질문들입니다

  • 2023-04-06 19:05

    죄송합니다. 질문을 못 올렸습니다. 뭘 질문해야 할지도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이번 주는 정군샘에게 나머지 공부를 조금 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09
[2024 철학학교 시즌2] 순수이성비판 : 선험적 변증학 읽기 모집 (2)
정군 | 2024.04.09 | 조회 110
정군 2024.04.09 110
808
[2024철학학교1] 시즌 1 마지막 시간, 방학이다! (3)
진달래 | 2024.04.09 | 조회 150
진달래 2024.04.09 150
807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8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4.02 | 조회 117
정군 2024.04.02 117
806
8주차 번외 질문 (3)
아렘 | 2024.04.02 | 조회 83
아렘 2024.04.02 83
805
[2024 철학학교1] 7주차 후기: 시즌 1이 거의 끝나갑니다. (7)
아렘 | 2024.03.29 | 조회 140
아렘 2024.03.29 140
804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27 | 조회 116
정군 2024.03.27 116
803
[2024 철학학교1] 6주차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0)
휴먼 | 2024.03.24 | 조회 164
휴먼 2024.03.24 164
802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6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20 | 조회 178
정군 2024.03.20 178
801
[2024 철학학교 1] 5주차 후기: 쪼그라든 상상력, 불어난 통각 (7)
세븐 | 2024.03.15 | 조회 217
세븐 2024.03.15 217
800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5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13 | 조회 162
정군 2024.03.13 162
799
<2024 철학학교1> 4주차 후기 (8)
세션 | 2024.03.10 | 조회 203
세션 2024.03.10 203
798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4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06 | 조회 262
정군 2024.03.06 26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