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학교 시즌1] 데카르트 [성찰] 제1, 제2 성찰 요약과 질문

아렘
2023-03-22 02:11
759

제 2성찰 요약입니다. 

댓글 13
  • 2023-03-22 22:31

    제1성찰 요약입니다.

  • 2023-03-22 22:33

    1. (27쪽) <방법서설>에 대한 반박자의 말 중에는 내가 완전한 관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 관념이 나보다 완전하다는 것이 따라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이 말에 대한 비판을 위해 데카르트는 관념이라는 말 안에 두 개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질료적으로 지성의 작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표상적으로 이 작용을 통해 재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관념은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없고, 후자의 경우 표상적으로 재현된 것은 나보다 더 완전할 수 있다고 한다. 주석에 따르면 이 문제는 제3성찰에서 자세히 검토하게 된다고 하지만... 관념의 동음이의, 질료적인 것과 표상적인 것에 대해서 개념정리를 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2. 제2성찰에서 밀랍을 통해 정신의 본성을 논증해 가는 방식에 대하여: 밀랍의 냄새, 맛, 색깔, 형체, 크기는 계속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밀랍 자체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 판단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 감각이나 상상력으로 아는 밀랍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특수한 어떤 것이지, 밀랍 자체가 아니다. 밀랍자체는 뭐지?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밀랍인가, 아니면 연장실체로서의 밀랍인가?
    여기서 데카르트는 밀랍에 대한 지각은 정신의 통찰이고, 정신만의 판단이라고 귀결짓는다. 밀랍의 존재를 인식할 때 우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물체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따라 나온 추론을 통해 나의 현존을 아는 것이다. 앞서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의 현존을 아는 것(직관?)과 밀랍의 경우를 통해 나의 현존을 추론하는 것은 방법이 다르다.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3. 방법서설에 이어 성찰의 제2성찰까지 오니까 이제 슬슬 방법적 회의라는 방법에 대해 질문이 생긴다. 데카르트 자신이 말하듯이 방법적 회의는 철저하게 확실한 것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다. 방법적 회의는 확실한 것을 구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관점에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회의가 과연 철학의 제1원리를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정신이 근대를 지배해온 것은 아닌가, 토론해보고 싶다.

  • 2023-03-22 23:50

    범위 밖에서 하는 질문입니다.

    P17 & P25 먼저 유머 코드 한가지... 진심 데카르트가 학장님과 박사님들에게는 존댓말을, 독자들에게는 반말을 했을까요?
    P17~24 요약에도 올렸던 부분인데, 데카르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신학자들에게 아량을 구하고 있을까요? 그들에게 입닥치고 듣기나 하라고 하는걸까요? 제게는 무척이나 용감하면서 우아해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 2023-03-23 00:49

    (질문1)
    제1성찰에서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헌데, 신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것에 대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를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는 어떤 오래된 의견이 새겨져 있다.(p40). 신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p.41).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실 나는 이 논거들에 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중략) 내가 확실한 어떤 것을 찾아내기 원한다면, (중략) 이 논거들에 대해서도 신중히 동의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p.41) 확실하게 신존재를 의심하고 가지는 않는 것처럼 읽힌다. 더욱이 꿈, 화가 이야기를 하면서 꿈의 이미지, 혹은 화상들이 실재는 아니지만 모사했다는 측명에서의 일반적인 것은 참된 것으로 현존한다고 말한다(p39).
    신 존재에 관한 의심에 대하여 애매한 태도와 꿈의 논리이라면, ‘신’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은 참된 것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려는 포석을 깔아 놓는다는 ‘의심’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2)
    나는 존재한다. 내가 사유하는 ‘동안’. 어쩌면 내가 모든 사유를 그친다면, 나는 그 즉시 존재하기를 완전히 멈추는 일이 생갈 수도 있다. 사유는 정신,영혼,지성 혹은 이성이며,(p.48)......그런데, 인간이 존재하면서 이 네가지(사유)를 항시 유지하고 있을까? 예컨대, 잠을 자는 동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사유는 의심/이해하는 것, 긍정/부정하는 것, 원하는/원하지 않는 것, 상상하는 것 그리고 감각하는 것이다.(p50) 감각? 사유의 다른 것들과 결이 달라 보인다. p.51에서 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내가 빛을 보고, 소리를 듣고, 열을 느끼는 것은 거짓인데, 내가 본다고/듣는다고/따뜻해진다고 보이는 것은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째, 감각은 사유의 정의(위의 4가지)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넣은 느낌이다. 인간은 항시 감각하며 살고 있으니까. 이후 밀랍의 예를 가지고 나의 현존을 추론하기도 하는데, 존재를 감각처럼 즉각적으로 알 수도 있고 밀랍의 예처럼 추론하여 알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 되는지..... 두 경우 모두 사유하고 있으므로.

  • 2023-03-23 01:07

    40-41쪽 "그러나 내가 항상 속게끔 나를 창조한 것이 신의 신성과 상충한다면, 내가 가끔 속는 것을 허용하는 것 또한 그 신성에 걸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마지막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죠…?
    주석에서도 ‘신은 내가 가끔 속는 것을 허용한다’고 적혀있는데, 이게 신의 본성, ‘완전자’의 본성에 비춰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이 경우의 ‘신’은 ‘오류를 허용하는 신’인데, 이걸 ‘허용할 수 있음’이 이미 ‘완전성’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토론은 안 해도 됩니다 흑흑 4성찰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요...말 해질 수 없다 그래놓고...)

    48쪽 "나는 존재한다, 나는 현존한다.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 물론 내가 사유하는 동안. 왜냐하면 어쩌면 내가 모든 사유를 그친다면, 나는 그 즉시 존재하기를 완전히 멈추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세웠던 ‘철학의 제1원리’를 다시 복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텍스트를 계속 읽다보면 의문이 드는 것이, 데카르트는 열심히 타자의 현존을 의심하는데요. 오히려 명백히 실재한다고 하는 그 ‘사유’는 오히려 의심의 대상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생각하려면 그게 참이든 거짓이든 무언가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정하면, ‘사유’ 자체가 작동할 수 있는 근거를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가정을 끝까지 끌고 가면 어떨까요? 이번엔 ‘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흐릅니다. 왜냐하면 ‘사유’는 언제나 ‘-에 관한 사유’이므로, 사유하는 동안에는 ‘생각하는 나’에 관해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사유하는 나’에 관한 사유는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해서, 위에 인용한 데카르트의 말은, 스스로 세운 규칙을 위반하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유하는 동안 현존하는 나’는 ‘사유하는 동안’에는 생각할 수 없고, ‘사유하는 나에 관해 사유’할 떄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는 순간 ‘생각하는 나’는 ‘악령’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도록 ‘농락’ 당하는 중인 ‘나’의 ‘사유’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나’는 명석판명한 원리로 기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 2023-03-23 06:55

    1) p50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사유하는 것. 이것은 무엇인가? 의심하는 것, 이해하는 것, 긍정하는 것, 부정하는 것,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또한 상상하는 것 그리고 감각하는 것이다.”, p51 “적어도 본다고, 듣는다고, 따듯해진다고 보이는 것, 이것은 거짓일 수 없다. 이것이 본래 나에게 있어 감각하다로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렇게 정확히 취해질 경우, 사유하다와 다름없다.” 데카르트는 감각도 사유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감각자체가 아니라 감각하는 능력, sensibility로 보더라도, 이를 순수한 정신 작용으로 볼 수 있을까요? Sensibility는 감관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데카르트는 신체를 완전히 부정하고도 남는 나의 지성, 판단능력, 사유능력으로 존재를 입증하는데, 왜 굳이 감각을 사유로 분류했는지 궁금합니다.

    2) 내가 기만당하더라도 내가 사유하는 한, 그 기만자는 나를 무로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에게는, 나를 사유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자(질병일 수도 있겠지요)가 있어 내가 사유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건가요?

  • 2023-03-23 08:12

    p50
    "내가 지금 확실히 깨어 있고 참된 어떤 것을 보기는 하지만, 아직 충분히 명증하게 보는 것은 아니라서, 꿈이 나에게 그것을 보다 참되고 보다 명증하게 재현하도록 애써 잠을 청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꿈이라는 대목이 나오면 저는 데카르트가 '꿈'을 어떤 관념으로 쓰고 있고 자신의 주장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용도로 쓰는지 혼란스렵습니다. 오직 사유만이 있고 그래서 현존한다는 그의 이론에서 꿈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요?
    또 같은 페이지 아래부분에서 "...내가 항상 자고 있다고 해도, 심지어 나를 창조한 자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농락한다고 해도, 나는 존재한다는 것과 동등하게 참이 아닌 것이 그 가운데 무엇인가?"를 보면 '자는 것'과 '꿈꾸는 것'은 데카르트에게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건지...왜냐 하면 이 말은 '내가 자고 있는 것은 참'이라는 말이 되니까 말이죠.

  • 2023-03-23 10:19

    33쪽. 제3성찰에서 '신의 관념' 부분 질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신의 관념은 그 신 자신을 원인으로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한다는 의미일까요? 이 부분이 알듯 하면서도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39쪽에 보면 꿈꿀 때 우리가 아무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것을 상상한다고 해도, 그것을 단순하게 쪼개면 이미 존재하는 실재들 (기하학적 연장들)로 분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하는 말일까요?

  • 2023-03-23 11:59

    저는 이번주에는 짧습니다. 드디어 내가 짐작하던 데카르트가 나오는 느낌입니다. (신의 존재와 현존을 다루는 부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 좋을 듯하지만) 존재와 현존의 구분이 여전히 잡히지 않네요(45쪽).

  • 2023-03-23 12:16

    정신은 어떻게 신체보다 더 쉽게 알려진다는 것인가?

    이번에 읽은 분량은 짧지만, 데카르트의 생각의 여정을 따라가려면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제1성찰에서 데카르트는 감각을 의심함으로써, 나 자신으로부터 신체를 떼어냅니다.

    (42p) 나는 나 자신이 손도, 눈도, 살도, 피도, 어떤 감각기관도 갖지 않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그릇되게 믿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제2성찰에서는 지.금.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이라고 여겼는가?(46p)에 대해 답을 하며, 신체와 영혼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신체는 얼굴, 손, 팔 등 내가 가진 기계 전체이며, 이런 것은 시체에서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말합니다. 물체의 본성을 지각될 수 있고, 접촉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만에서 벗어나고 보니 "나"는 물체의 본성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식물혼의 영양섭취나 동물혼의 걷는 것, 감각하는 것 등은 신체 없이 행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제1성찰에서 이미 "나 자신"으로부터 신체를 뗴어냈기 때문에 이들 영혼들은 나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유뿐입니다. 사유=정신=영혼=지성 or 이성

    (56p) 그리고 보라. 마침내 나는 자연적으로 내가 원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물체 자체는 본래 감각들에 의해 혹은 상상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에 의해서만 지각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만져지거나 보여서가 아니라 이해되어서만 지각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나에 의해 내 정신보다 더 쉽게 그리고 더 명증하게 지각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명백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정신이 신체보다 더 쉽게 지각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지각작용을 지성과 이해, 즉 정신안의 판단능력(54p)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물체(신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서 감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유한다는 것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 감각한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 2023-03-23 12:23

    1.2 성찰이 제게는 우리 실체의 본성이 사유실체임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생각되는데요. 이 증명 과정은 경험적인 방법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데카르트에 의하면 '감각되어진 것'은 불확실한 것이므로 이 증명의 경험적 방법은 '감각하는 힘'이라고 봐야 하나요? 그런데 2성찰 말미에 가면 결국 감각력=사유이므로 이건 사유실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유하고 있다는 거죠. 이게 논리적으로 문제는 없는 건가요? 좀 헷갈립니다

  • 2023-03-23 13:26

    저는 제1성찰에서 꿈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제가 요약을 했음에도 잘 따라가지지 않습니다. 꿈이라도 "더더욱 단순하고 보편적인 다른 어떤 것들"은 참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듯말듯합니다.

  • 2023-03-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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