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철학학교 시즌1] 1회차『근대적 세계관의 형성』 질문들

정군
2023-03-02 01:46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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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2023-03-02 02:07

    103쪽. (데카르트 실체론의 독창성은) "실체성을 기능적 속성으로 환원하는 가운데 경험적 현상을 정초하는 선험적 조건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있다" 고 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의 '그 실체성을 흡수하여 초월론적 차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속성'이라는 구절을 보면 '초월적'이게 되는 것은 오히려 '속성'이다. 요컨대 '환원'되고 있는 것은 속성이지 '실체'가 아니다. 물질의 본질적 속성은 '연장'이 되고, 정신의 본질적 속성은 '사유'가 되는데, 이것들은 모두 데카르트의 체계 안에서 연장실체, 사유실체로 호명된다는 점에서 앞의 실체-속성 관계는 뒤바뀐게 아닌가 생각한다. 뒤에 나올 '선험적 통각'과 관련해서 나올 칸트의 문제의식을 '데카르트의 연장선'으로 설명하기 위해 발생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110-111쪽 서너문단에 걸쳐 설명되고 있는 '코기토', '자아', '의식'은 비슷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다.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112쪽 간단히 살펴본 데카르트 철학의 내용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철학사의 '데카르트적인 길'과 '비-데카르트적인 길'이 나뉠 수 있다면, 두 길을 가르는 차이? 논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 2023-03-02 06:55

    70쪽 "무엇보다 지적해야 할 점은 살아 있는 자연의 변화를 죽어 있는 사물의 운동을 기준으로 풀어낸다는 사실이다. 이런 부조리는 특히 형상인 개념에 위험한 왜곡을 가져온다."
    자연의 변화를 운동을 기준으로 풀어낸다는 알겠는데 죽어있는 사물의 운동이란 표현은 왜 들어가는 건가요?

    사실 4장에서 실체의 표면화 (101쪽)부터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2023-03-02 09:44

    113쪽 "특히 결정적 계기는 칸트가 가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비판인데, 그 비판의 요지는 '사유하는 나'를 실체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경험적 현상의 차원에 있는 사유와 현상 배후의 물 자체(실체로서의 영혼)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이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칸트가 주장하는 '사유하는 나'는 무엇일까요?
    114쪽 "칸트의 비판은 데카르트적 코기토의 한계를 드러냈다기보다 그것이 감추고 있던 위상학적 특성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 감추고 있던 위상학적 특성이란 무엇인가요? 정신이 신체보다 우위에 있다는 건가요?
    114쪽 "즉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그 자체로 현존하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반면, 칸트의 코기토는 스스로 시간을 형성한다" - 칸트의 유심론인가요?

  • 2023-03-02 10:08

    111 페이지: 데카르트의 의식이 “자아에 의한, 자아를 위한, 자아의 의식”이라는 것이 궁금합니다. 왜 데카르트는 의식의 중심에 자아를 놓아야만 했을까요? 이것은 데카르트가 전복시킨 자연관 (영혼과 운동이 있는 자연에서 수리적으로 환원되는 자연으로)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연결고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14 페이지: 책에서는 데카르트와 칸트의 코기토가 시간의 문제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현존하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칸트의 코기토는 스스로 시간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이해가지 않아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 2023-03-02 11:06

    몇 달만에 철학학교 게시판에 질문을 올립니다.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질문하려니.. 어렵네요.ㅎㅎ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합니다. 위에 올라온 질문을 보니 제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다른 분들의 질문도 집중되어 있는 것 같군요. 비슷한 질문을 올려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숙제니까..하하하

    1. 데카르트의 물질 개념에 대한 질문입니다.
    78쪽에는 데카르트 자신이 쓴 물질개념에 대한 문장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갖는 물질 일반에 대한 관념은 우리가 공간에 대해 갖는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공간 또는 내면은 그 공간에 포함된 물체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을 저자는 물질이 공간개념으로 흡수, 환원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공간과 실재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물질은 그 자체가 공간적인 어떤 것이고 공간은 그 자체가 물질적인 것이라고 하고, 나아가 물질이 공간이고 공간이 물질이라고 요약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물질(물체)이 기하학적 좌표계 속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것(x, y 혹은 x, y, z)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의 특정 좌표로 표현되지 않는 사물은 물질(물체)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데카르트 식으로 생각한다면, '물질이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과 '물질이 공간이고 공간이 물질이다'는 두 개의 명제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공간이란 물질(물체)과 동의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공간 안에서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갖는 모든 것이 자연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만, 공간이 물질이라는 것이 이해가 잘 안되어서 데카르트의 연장실체에 대한 정의와 공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해 봅니다.

    2. 데카르트의 실체와 속성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자는 데카르트 실체론의 독창성은 실체가 자기원인적인 것이라는 실체의 정의가 아니라 실체의 속성 쪽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03쪽)
    즉, 연장속성은 물리적 현상 일체의 초월론적 토대이고, 사유속성은 심리적 현상 일체의 초월론적 토대라는 것이 데카르트 실체론의 독창성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게 되면 데카르트의 실체가 속성으로 환원되어 데카르트에게 실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앞에서는 데카르트 형이상학이 물질/정신 실체 이원론을 정초함으로써 기독교와 종교 사이의 화해와 공존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쓰고 있습니다.(98)
    그런데 그런 실체 이원론과, 물리현상/심리현상의 초월론적 토대로서의 속성 이원론의 사이에서 저는 좀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점을 부여하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실체와 속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 데카르트적 기획의 초역사성에 대하여
    저자는 데리다의 말을 인용하면서 바로 이런 점에서 코기토에 이르는 데카르트적 성찰의 궤적은 살아있는 철학의 모범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철학의 모범이라는데, 저는 대체 뭔 말이야, 이러고 있습니다. 근대 철학 초입부터 암초를 만났습니다.ㅎㅎ
    "무규정자, 무 혹은 무한자로 향한 초과의 기획, 사유가능한 전체, 존재자와 규정된 의미들의 전체, 사실적 역사의 전체를 넘어서려는 초과의 기획"(116) 저는 데리다가 했다는 이 말의 의미가 잘 파악되지 않습니다. 잘 이해해보고 싶군요.^^

    드디어 숙제 올렸으니.. 이제부터 편안하게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2023-03-02 12:02

    데카르트는 자신이 갈릴레오의 계승자임을 자처하지만, 수리자연학에서 이룬 갈릴레오의 성과를 뛰어넘어 멀리 이르고자 했다고 합니다. 갈릴레오가 걸었던 분석과 종합이 길을 걷되 '갈릴레오가 기피했던 마지막 일반원리를 찾아내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갈릴레오가 일반원리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원리에 머무른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데, 저는 이 '중간원리'라는 게 뭔지 궁금합니다. 특수원리와 일반원리처럼 대비되지 않은 그의 '중간원리'는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지요? (p64)

  • 2023-03-02 12:06

    전반적으로 어째서 사유와 의식이 데카르트 이후 “지성을 핵으로 하는 자아를 전제하고, 따라서 의식은 언제나 자기의식”(110)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무척 흥미롭게 제시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코기토는 이후 근대 사상사의 방향과 성격을 일관적으로 재편해가는 문제 제기적 이념으로 거듭난다’(111)는 말도 흥미로웠습니다. 제 질문은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다기보다는 앞으로의 읽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1) 데카르트에서는 실체가 ‘존재하기 위해 자기 이외의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되고 이 실체가 ‘자신의 주요 속성과 실질상 (실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양태적으로도) 구별되지 않는다’(102)고 했다는데 그렇게 본 이유가 궁금합니다(추후 원전에서 확인해볼 부분 같긴 합니다만, 아마도 스피노자가 지적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실체와 속성을 동일하게 둔 다음 신을 설정하는 것은 실체 위에 실체를 만드는 격이 되니 그 논리가 더 궁금합니다).

    2) 저자는 실체가 속성과 구별 불가능한 것이 되면서 실체=속성이 ‘경험적 현상을 정초하는 선험적 조건’으로 자리매김되고(103) 이어 ‘어떤 초월론적 평면’이 된다고 씁니다. 이 책에서는 어찌 보면 데카르트가 초월론적 철학을 개시한 것처럼 묘사되었는데(아니면 김상환 교수의 철학사 재해석으로 보아야 할까요?) 들뢰즈가 스피노자 철학에서 이 논리를 끌어낼 때보다 더 급작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사유 속성이 경험적 사유를 정초하는 초월론적 평면이 된다는 전개는 아마도 속성과 양태(=경험적 사유)의 관계로부터 끌어낸 것이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데카르트 역시 스피노자 못지않게 속성과 양태의 관계를 세세하게 정립했던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 2023-03-02 12:20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역시 어떤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것은 경험적 현상과 물자체 사이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이성과 광기 사이에 위치한다. 과장법적 회의의 길을 따라 등장하는 코기토는 꿈과 현실, 이성과 광기, 악한 신과 선한 신의 대립이 무력화되는 진공의 지점이다.(115p)

    =>저자는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과장법적 회의" 라는 방법론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초과적 기획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과장법적 회의란 뭘까요? 다음 단락을 보면 선악, 참과 거짓, 가상과 실재와 같은 대립항들이 만들어내는 회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데요. 이런 대립항들이 영점처럼 무력화되는 순간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어디에 이런 대립항들의 투쟁이 숨어있는 걸까요?

  • 2023-03-02 12:52

    P84. 고대의 생물학적 자연관이 17세기 기하학적 자연관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비로소 고대 인간중심주의의 이해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생깁니다.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이는 중세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전통에서 고대의 피타고라스/플라톤 전통 계열로의 회귀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베이컨의 ‘중간원리’(36)와 데카르트의 ‘방법’ 같은 것들이 이를 단순한 회귀 이상의 것임을 알게 해주지만요. 한편 이러한 생물학에서 기하학으로의 전환은 빈곤화/사막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쓰는 아렘식 표현으로는 앙상해진다쯤 되겠습니다. 아마도 고대피타고라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우리가 다룰 데카르트, 더 나아가 칸트, 베르그손, 그리고 작년에 읽은 들뢰즈를 사막화 과정에 따라 분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명료해 질 수록 빈곤해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그 명료화 과정이 없으면 빈곤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야만에 머물게 됩니다. 시인 심보선(슬픔이 없는 십오 초, 76)은 베르그손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아무리 상세히 설명하려 해도 소용없다. 발생하는 결과와 비교해볼 때 나의 표현은 얼마나 빈약하고 추상적이고 도식적인가.’

    최근 몇 년간 이런 저런 철학자들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얻은 잠정적인 결론은 ‘명료화는 불가피한 사막화다’, ‘우리는 확실하다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미끄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쯤 계십니까?

  • 2023-03-02 13:14

    p106~109 부분 정도. 경험적사유를 가능하게하는 초월론적 평면을 김상환 선생님은 결국 자기 의식이라고 정리하신듯 함. 그런데 이 의식이란게 자각과 비슷하게 느껴짐. 뭔가를 자각한다면 그건 이미 경험적 사유 양태일 것만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무엇일까? 이야기의 흐름상 이 초월론적 평면으로서의 의식은 무의식에 더 가까워보인다. 그런데도 이것을 의식이라고 이야기해도 될까?

  • 2023-03-02 15:25

    질문들입니다!

  • 2023-03-02 15:43

    데카르트의 보편수리학에서 감각적 질은 수학적 언어로 해독할 수 없는 것이므로 무의미한 것으로 배제되었다(85)고 했는데, 그런 이유라면 고대의 자연관보다 후퇴한 것이 아닌가? 설명할 수 없다고(기표할 수 없다고) 배제한다면 말입니다.
    라고 질문하려다가, 질문이 너-ㅁ 많아서 걍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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