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3 5장 5절~6절 후기

요요
2022-11-05 11:09
310

드디어 결론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차이와 반복>의 대장정을 함께 한 동지들에게 감사를!! 그런데 결론만을 남겨둔 마지막 페이지를 덮어도 가슴이 시원하지는 않네요. 매번의 읽기가 마치 히말라야나 K2를 등반하는 것 같았을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봉우리에는 올라가지 못한 읽기라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고 나니, 그런들 뭐 어떠랴, 라고 생각하기로 합니다. <차이와 반복>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들뢰즈가 줄기차게 비판하는 사유의 이미지, 동일성의 철학의 공통감과 양식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차이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결론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더 <차이와 반복>을 차이나게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

 

후기는 개체화와 분화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4장에서 이념의 잠재력과 이념의 현실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미처 밝히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념의 잠재력 요소는 어떤 조건 하에서 현실화되는가, 양과 질 이전의 극화를 근거짓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4장의 말미에 이 질문이 던져졌는데  5장의 5절과 6절에 와서야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념은 전-개체적 장을 펼칩니다. 이념은 잠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념만으로는 개체가 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념이 현실화되려면, 물음이 현실의 해를 가지려면, 개체화의 장이 펼쳐져야 합니다. 개체화의 장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강도의 활동입니다. 양적 차이와 질적 차이를 구성하는 강도의 활동이 없다면 개체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현실화(분화)의 결과가 개체화가 아니고, 개체화가 권리상 분화에 선행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어떤 혼란을 느꼈습니다. 왜냐? 발생론적으로는 분화 다음에 분화의 결과로 개체화가 오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개체화가 분화에 권리상 선행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뢰즈는 개체화와 분화의 관계를 헷갈리는 것은 앞서 잠재적인 것과 가능한 것을 혼동할 때의 오류만큼 차이의 철학을 위험에 빠뜨리는 심각한 오류가 된다고 경고를 하니 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들뢰즈는 개체화가 분화보다 권리상 선행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증을 생물학의 이론들을 통해 전개합니다. 정확히 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들뢰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살아 있는 알은 이미 개체화의 장이고, 배아 자체는 여전히 순수한 개체이다. 또 알 속의 배아는 개체화가 현실화에 우선한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539쪽)" 알의 존재 자체가 개체화가 분화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증언한다고 하는군요. 나아가 들뢰즈는 "세계는 어떤 알(540쪽)"이라고 선언합니다. " 그 알은 우리에게 미분화-개체화-극화-분화(종별화)로 이어지는 이유들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이 말은 세계를 개체화의 장으로 본다는 이야기겠지요. 다시 말해 세계는 권리상 분화에 선행하는 생성의 장이고, 개체화의 장, 우글거리는 차이들의 서식처라는 말.

 

저는 개체화가 분화보다 권리상 선행한다는 주장 자체가 초월론적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개체적 장으로서의 이념과 개체화의 장으로서의 강도, 이 두가지가 들뢰즈 존재론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념과 강도는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과 과학의 근거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칸트의 범주가 그러하듯이. 개체화와 분화의 관계를 잘못 파악하면 차이의 철학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했는데요. 토론과정에서 몇 가지 답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분화가 먼저면 동일성의 철학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이념과 분화 사이에 강도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념의 운동으로부터 현실을 도출해내는 헤겔처럼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사유밖에 할 수 없는 이념과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강도가 초월론적 토대라면, 마땅히 미분화-개체화-극화-분화의 순서로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분화-개체화가 옳다고 한다면 이념과 강도를 근거로 하는 들뢰즈의 존재론 자체가 무너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생물학의 알과 배아를 통해 그 관계를 논증하려는 들뢰즈의 시도는 생물학을 통한 증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예시로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월론은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으로 현실을 해명할 수는 있는 것이니까요.

 

 

댓글 6
  • 2022-11-05 13:53

    생물학은 요요샘 말씀대로 하나의 예시인 건 맞겠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배아도 엄밀하게 말하면 태아가 되기 직전까지니까요. 수정란에서 태아가 되기 직전까지는 배아 형성과정, 즉 개체화고요, 배아가 태아가 되는 순간 분화가 되겠죠. 그러고 보면 개체화와 분화는 생물학적으로도 구별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 물론 이건 동물이야기고요, 안찾아봤지만 식물은 또 좀 다르겠죠. 어쨌든 또 뭔가가 생각나면 추가로 올리겠습니다.

  • 2022-11-06 09:30

    요요님, 내가 말한 책은 이것.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니 품절이군요. ㅋㅋ

    8989763525_1.jpg

    • 2022-11-06 09:32

      아시겠지만, 이런 책도...

      8976823265_1234.jpg

  • 2022-11-06 15:44

    저는 유성생식에서 알도 있지만 씨앗도 떠올렸어요. 떡갈나무가 되거나 되지 않은 도토리에 대해서도. 입안에서 달큰하게 부서지는 찐밤도요. ㅎㅎ 그리고 애벌레가 성체가 되기 전에 고치 속에서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해 궁금해 했던 것도.. 4장 들어가면서 우리 세미나를 포기할까라는 고민을 했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아 이거 안 읽었음 아까운 줄도 모르고 아까웠겠다, 그 어떤 때보다 명시적으로 (또 도식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는구나 어렴풋이 느꼈었어요. 5장에서 알과 배아를 통한 생물학적 설명은 들뢰즈가 그려서 보여주는 전체 구도를 꽤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여전히 의문투성입니다. 특히 나, 자아, 타인을 오늘 다시 읽어보니 그날 미처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들어오며 요요샘께서 하신 "표현한다"는게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을 그대로 다시 갖게 되네요. 구체적으로 눈이 빛을 표현한다는 말에서도요. 세미나를 마치고 본론이 끝났다는 생각에 아.. 이건 뒷풀이가 필요해.. 싶고 어쩐지 무척 허전했는데 (실은 정군샘도 그래서 밥을 드신 것 아닐까요? ㅎㅎ) 문득 저도 요요샘처럼 결론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시간은 제편이 아니지만 어쨌든 결론을 읽으며 계속 물어가야겠습니다.

  • 2022-11-08 16:53

    '개체화가 권리상 분화에 선행한다'는 말에서, 뭐랄까요 살짝 긴장이 걸리는 부분은 아마도 '권리상'이라는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올해 초부터 문제가 되었던 말이기도 하고요) 선생님 말씀처럼 그 문장이 어떤 '초월론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들뢰즈가 생물의 분화를 예로 든다고 할 때, 그 사태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테니까요. 여기서 어떤 '표현들'의 심층적인 관계들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강도는 이념을 표현하고, 개체는 강도를 표현하고, 분화된 것(현실적인 것)은 개체화된 것(잠재적인 것)을 표현'하는 어떻게 보면 스피노자적인 실체-속성-양태를 묶는 '표현'적 관계가 여기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게 들뢰즈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후기 마지막에 '초월론은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으로 현실을 해명할 수는 있는 것이니까요' 같은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과학은 사태를 실증하지만, 철학은 원리를 예증한다'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뢰즈가 그렇게나 많은 예들을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결론'만 남으니 참 조쿤요 ㅋㅋㅋ

  • 2022-11-09 14:35

    "<차이와 반복>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들뢰즈가 줄기차게 비판하는 사유의 이미지, 동일성의 철학의 공통감과 양식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차이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더 높은 곳에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요? 결론을 따박따박 읽다보면 들렀던 곳들 다시 돌아볼테니, 아마도 즐거운 마무리 혹은 의미 있는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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